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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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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 /도착하는 빛 /숨의 세계 /다이버 /바난Banan /세노테 /극야 /딸기잼이 있던 찬장 /앵속의 여름 /노크하는 물방울 /엘보 /개인적인 비 /밀가루의 맛 /간절 /잠든 물
2부
뜻밖의? 바닐라 /노팬티 /오를라와의 전희 /탑 속에서 /피의 절반 /금족령 /손차양 아래 /미기록의 날들 /상명(喪明) /자취 /날개의 맛 /목련이 자신의 극(極)을 모르듯이 /펄럭이는 홍백기 아래 /넝쿨 꿈을 꾸던 여름 /떠나는 나무 /해중림(海中林)
3부
별과 병 /불가촉 /꽃뿔 /순간의 손 /습기의 나날 /폭우 뒤편 /밤은 판화처럼 /풀비스 /눈송이의 감각 /당신 아내를 봤어요 /목요일의 오달리크 /불성실성의 별 /반려식물이 눈 뜨는 저녁 /수반 /생손 /붉고 무른 보석을 받고
4부
창문 뒤의 밤 /아목 /스프링클러 /라라라, 버찌 /두 겹의 물결 아래 /화어(火魚)가 담긴 어항 /잠의 검은 페이지를 건너는 /펨돔 /움트는 뼈 /초록의 쓰임새 /지워지는 씨앗 /근린 /알비노 /서쪽 물가의 사람 /물 발자국
해설 | 상징과 유비의 연금술ㆍ오형엽
저자 소개
저자 이혜미는 시인. 1988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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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타자의 세계로 거침없이 발을 들이는 힘
쉽게 지우지도, 쉽게 품을 수도 없는 ‘너’의 흔적
이혜미의 두번째 시집 『뜻밖의 바닐라』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첫 시집(『보라의 바깥』, 창비, 2011) 이후 5년 만이다. 시인은 2006년 19살의 나이로 문단에 나와 올해로 등단 10년째이며,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서 꾸준히 시작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시 세계를 밀어붙이는 힘은 더욱 강해졌고, 새로운 관계 앞에서의 주저함은 덜어냈다. 또한 화자가 타자를 만나, 한 몸이 된 듯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누구나 ...
타자의 세계로 거침없이 발을 들이는 힘
쉽게 지우지도, 쉽게 품을 수도 없는 ‘너’의 흔적
이혜미의 두번째 시집 『뜻밖의 바닐라』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첫 시집(『보라의 바깥』, 창비, 2011) 이후 5년 만이다. 시인은 2006년 19살의 나이로 문단에 나와 올해로 등단 10년째이며,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서 꾸준히 시작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시 세계를 밀어붙이는 힘은 더욱 강해졌고, 새로운 관계 앞에서의 주저함은 덜어냈다. 또한 화자가 타자를 만나, 한 몸이 된 듯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한 고백의 시어들은 더욱 과감해졌다. 안팎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썰물 밀려가듯 흘러가는 감정에 대한 높은 집중력은 그를 표현해내는 시어들을 만나 마치 그림을 그려내듯 시각화되어 드러난다.
서로에게로 흘러드는 감정의 물결
희미해지는 관계를 붙잡는 시인의 시선
몸속의 공기 방울들이 급격히 팽창하고 안팎이 서로를 침범하는 자리에 대하여. 사람의 몸이 견뎌내야 하는 색(色)과 압(壓)의 연합군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 있지. 우리는 낯선 수면으로 떠올라.
그건 오래 길러온 몸속 바다를 뒤집어 서로에게 내
어주는 일이었다고.
―「다이버」 부분
여기 ‘2인칭’의 세계로, ‘너’라고 부를 수 있는 타인의 세계로 흐르는 시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색(色)과 압(壓)”을 견뎌내야 하는 관계에 발을 디딘다. 몸속에서 출렁이는 물은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스며들고, 그렇게 서로에게 물든다.
멍든 자리를 들여다보면 몸의 내부로부터 캄캄한 조명이 비치는 것 같다. 달아나는 죄수를 겨누듯 부딪힌 자리마다 뒤늦게 어두워지고
[……]
식물이 흙의 신발을 벗는다면 제일 먼저 이 물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겠지. 비를 만드는 우산 속 동그랗게 모여드는 그늘 깊은 우울을
―「스프링클러」 부분
“몸의 내부로부터 캄캄한 조명이 비치는 것”처럼 화자의 안쪽에는 “멍”으로 상징되는 상처와 아픔이 남는다(문학평론가 오형엽). 발을 디뎠고 밀려드는 관계로서의 “물”을 존재의 안쪽으로 들였지만 화자에게 “멍”을 남긴 이 상황을 화자는 “물의 폭력”이라 칭한다. 때문에 이 감각과 기억 들은 이혜미의 시 세계에 있어 사라져야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사라지지 않아 천해지는 것들”이며, “익숙해진 감각들”은 “피와 뼈를 어둡게 채색”(「당신 아내를 봤어요」)할 뿐이다.
얼음을 핥으며 오래 말을 아꼈지
케이크를 자르고 낮술을 마시던 창가에서
[……]
왜 부서져 떠돌다 싫은 덩어리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입으로 불어도 손으로 쓸어도 자국을 남기던 눈송이들
얼어붙은 잔설이 회색으로 얼룩진 그 창가에서
흰 가루라면 무엇이든 슬프던 계절이 지나간다
눈처럼 녹아 사라질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 혀에 붙어 끈적이는
더럽고 슬프고 무거운
―「밀가루의 맛」 부분
차라리 화자의 안으로 들어온 물을 얼리는 것은 어떨까. 사라지지도 않고,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얼어버린 물, 즉 눈송이는 “입으로 불어도 손으로 쓸어도 자국을 남기”고, “얼어붙은 잔설”은 “회색으로 얼룩”진다. “끈질기게 혀에 붙어 끈적이는/더럽고 슬프고 무거운” 것으로 다시 화자 안에 흔적을 남긴다. “얼어가는 세계와 녹아가는 세계 중 어느 쪽이 더 슬플까”(「날개의 맛」)라는 시구처럼 얼어버린 관계와 녹아서 사라져가는 관계 중 어느 쪽이 더 슬플지 가늠할 수 없을 따름이다.
서로를 향한 물은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를 서로 침범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줬기 때문에, 서로를 견뎠기 때문에,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혔던 관계의 힘들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대한 집착은 이 시집을 하나로 잇는다. 한 몸이 된 듯 서로의 세계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발자국을 남기며 밖으로 빠져나가는 관계, “깊이 당겨 안는 마음”의 중력이 지닌 속도만큼, “사랑받았던 속도로 그만큼의 힘으로”(「엘보」) 멀어지는 것들의 흔적을 시인은 간절히 좇는다. 시집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집착, 그것들을 잡아두려는 시도, 그럼에도 꾸준히 작아지고, 작아져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내 안의 것을 그려내는 회화적 시 쓰기
이혜미의 시집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그것을 형상화하는 시적 형식과 기법”(오형엽)에 있다. 즉, 인간의 몸으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감각들을 시인은 식물이나 동물, 특히 물고기에 대입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와 감각을 상상해냄으로써 구현한다.
숲
이야기하는 물방울
사이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우리는 비늘을 튕기는 물고기
나무로 오르는 물고기
끈적이고 일렁이는 그늘을 거느리며
지느러미를 부비면
솟아나는 돌기들
두근거리는 혀
[……]
손가락 끝에서 돋아나는, 다시 손
―「해중림(海中林)」 부분
인용된 「해중림」을 비롯해서 「펨돔」 「알비노」 「물고기」 등의 시에서 이혜미는 물고기에 대해, 정확히는 물고기의 감각을 통해 인간의 몸으로 말하기 어려운 영역들에 관해 풀어놓는다. 빛을 튕겨내는 지느러미, 물속에서 뛰는 심장, 물고기의 호흡 등 물고기의 감각들은 “물”로써 관계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 시인에게 적확한 언어가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색의 이미지를 예민한 감각으로 그려내며, 텍스트로 회화를 그리는 듯한 시들을 선보인다. 여름이 오는 소리, 잎이 돋아나는 풍경은 “잎사귀들이 새로 돋은 앞니로 허공을 깨무는”(「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 것으로 묘사되고, 우리의 과거는 딸기잼의 “붉음”으로 그려지며 “반투명 젤리 속 일렁이는 둘만의 왕국”(「딸기잼이 있던 찬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만져서 알 수 없고, 인간이 쉬이 감각할 수 없는 것들을 풀어내는 데 성공한다는 점에서 이혜미의 시가 가지는 특징이 드러난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타인과의 관계에 성큼 발을 들여놓는 시인이 마련한 무한한 감각의 세계가 열린다.
기억해.
바닐라들의 세계를,
흘러들어와 곧 꿈이 되는
모르는 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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