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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에서
그때 나는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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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뫼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아다지오 아사이ADAGIO ASSAI

해설 | 소설-불가능-이야기_양순모
저자 소개
저자 : 남현정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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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마침내 생은 무한하게 펼쳐진다.
그 생에서 너는 예술가가 될까?”
우울한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불안을 홀로 견뎌내고 있는 존재를 향한
의심의 시선과 의지적 소망

그의 소설에는 ‘경험’이란 당최 존재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가 시체 안치소의 소설을 확인한 이후에도 여전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그런 소설가라 한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죽음과 경험. 남현정은 조금 다른 소설 쓰기를 통해 이를 실현코자 하는 그런 소설가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순모, 해설 「소설-불가능-이야기」(p. 299)에서

남현정에게 소설은 왜 불가능의 얼굴인가. 그럼에도 그 불가능을 마주하고 계속해서 쓰고자 하는 이 소설가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은 독자라면 『아다지오 아사이』가 그 답이 되어줄 것이다. 남현정은 데뷔 때부터 밝혀온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첫 소설집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남현정 소설에서 불가능의 얼굴은 우선 공간으로 나타난다. 있지만 동시에 없는 존재, 그러한 존재가 있는 공간은 있는 곳인가 없는 곳인가. 소설집 처음에 놓인 「없는」은 제목에서부터 남현정의 소설 세계에 들어가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마침표도 없이 독백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의 화자는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겨우 덩어리에 불과한 존재”이다. 그는 “나는 완성되지 못한 존재라서 이렇게 마음대로 중얼거릴 수 있는 거야 이 중얼거림이 곧 나야”라고 말한다. 자궁 안 태아를 떠올리게 하는 이 존재는 끝내 온전한 인간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태아를 품은 자궁, 이곳은 바로 이러한 불가능의 얼굴이 있는 장소일지 모른다. 제목은 ‘없는’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독자는 ‘있는’ 소설. 바로 남현정이 시체 안치소의 시트를 들치고 바라본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불가능의 얼굴이다.

「부용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삼촌을 만나러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부용’이라는 낯선 곳에 도착한 화자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무질서한 여행을 하는 이야기이다. 결국 “목적 없이 계속 걷다 보니 어느 때부터 나는 머릿속에 있는 공허한 미로 한가운데 던져져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 와중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이 용부대피소였다”라고 말하는 화자는 그곳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대피소일 리 없었고 차라리 감옥이자 무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021년 ‘이 계절의 소설’ 인터뷰에서 양순모는 ‘용부대피소’가 ‘없는 자리’를 주제화·형상화한 것이 하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남현정은 자신의 소설에서 ‘없는’이란 말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그럼에도 ‘없는’이란 말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패배적 상황을 ‘나’가 비극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요.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없는 자리’라면 ‘나’가 처한 패배적 상항이 달라지는 일은 없을 테고, 이를 ‘나’가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아픈 일이니까요. ‘용부대피소’는 대피소라는 말에 이끌려 상상해본 공간이었는데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곳에서 맞닥뜨리는 광경은 ‘나’가 처한 패배적 상황이 형상화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광경은 그곳을 대피소가 아닌 ‘나’의 감옥이자 무덤으로 전환시켰고 제 발로 자신의 감옥이자 무덤 속으로 들어간 ‘나’는 이런 패배적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해요.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신이 나가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지요.”
한편 작가는 “잘 씌어진 이야기보다 잘 씌어진 정확한 문장 하나에 더 이끌리는 편”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그의 작품이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져 마치 긴 시를 읽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특히 「나폴리」는 ‘나는 나폴리로 간다’와 ‘있는 그대로 나폴리를 받아들여야 했다’라는 두 문장에서 비롯된 소설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실패한 자의 예술과 죽음과 생에 대해 말하는 이 작품은 “너는 예술가가 될까?”라는 거듭된 자문 속에 의심의 마음과 의지적 소망을 드러낸다. 여기서 나폴리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유령처럼 ‘나’에게 다가온 존재. 구원이 될지 더 큰 시련을 줄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실패를 딛고 ‘나’가 일어설 수 있기를 작가는 바라는 듯하다. 이어지는 작품「하나가 아닌」「경뫼」도 이와 유사한 흐름으로 나아간다.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상실 이후 “타협할 수 없는 불행, 통제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화자 이야기를 담은 「하나가 아닌」에는 거대한 타자 ‘거티’가 등장한다. ‘나’의 삶과 정신을 무너뜨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공존하기 어려운 타자이지만 결국 ‘나’는 그 타자와의 도주, 삶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예술가가 되는(소설가가 되는) 길로 비쳐지기도 한다. ‘경뫼’의 뼛가루를 호주머니에 담아 혼자 갈산에 도착한 ‘이자’의 이야기 「경뫼」에서 역시 ‘거티’와 비슷한 타자로 ‘벨라콰’가 등장한다. 그러나 ‘벨라콰’는 앞서 ‘나폴리’와 ‘거티’와는 다르다. “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울고 있는 사람 옆에서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대신 오래 슬퍼”하고 “이자의 고통에 아주 오랫동안 함께 슬퍼”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작품 속에서 소설에 대한 오롯한 긍정과 옹호를 보여주기 시작한 작가는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에 이르러 타자와 서로 갈등하지 않고 함께 세상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각 작품 속에 나타난 타자들은 남현정에게 불가능의 얼굴이자 사랑하는 이의 얼굴, 바로 소설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표제작이자 이번 소설집에서 처음 독자와 만나는 작품 「아다지오 아사이」는 샌디와 그의 연인 로부르 그리고 샌디의 동생 자곤이 검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여정을 담고 있다. 매우 느리게 연주하라는 뜻의 제목처럼, 한 편의 긴 서사가 작품에 인물로서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로 천천히 진행된다. 그 목소리는 앞선 소설들에 등장하는 ‘거티’ ‘벨라콰’ ‘아니’(「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안과 밖 그 사이의 슬픔과 사랑을 오롯이 경험하며 무한한 우울의 세계로 나아가는 샌디와 로부르, 자곤의 이처럼 느린 여정이 남현정의 공들인 문장과 만나 더없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책장을 덮고 나면,『아다지오 아사이』 속 작품들은 기억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였더라, 기억 속을 헤매다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뚜렷한 사건 없이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는 자신의 사유 속에 깊이 잠길 것이다. 삶과 죽음, 안과 밖, 참과 거짓, 언어와 침묵 속의 무한한 슬픔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타자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책장을 펴면 거기 새로운 『아다지오 아사이』가 흐를 것이다. 그때와 다른 언어가, 울림이 다른 문장이 또 다른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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