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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역자 해설: 세상은 내가 아닌 우리가 있어 좀 더 따듯하다
카렐 차페크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카렐 차페크
체코의 대표적인 일간지 『리도베 노비니』에서 편집자 겸 기고가로서 평생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일생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철학적ㆍ풍자적인 작품들을 썼다. 일찍이 현대사회의 병폐에 눈을 돌렸던 그는,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1920)과 『곤충극장』(1921)을 통해 사회적 병폐를 통렬하게 풍자하였다. 『R.U.R』은 기술의 발달이 거꾸로 인간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고한 작품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봇’이라는 말은 이 작품에서 유래했다. 『곤충극장』은 화가이며 작가인 그의 형 요제프 차페크(1887~1945)와의 공동창작으로, 현대생활의 획일주의·물질주의를 풍자한 걸작이다. 같은 시기의 장편소설 『압솔루트노 공장』(1922)과 『크라카티트』(1924)는 후일의 『도롱뇽과의 전쟁』(1936)과 더불어 SF(과학소설)적 수법으로 현대를 비판하여, 사회적 SF의 선구적 작품이 되었다. 단편 소설집인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1929)은 추리소설 형식으로 쓰인 작품이다. 철학소설 3부작인 『호르두발』(1933),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 같은 철학적·신비적 작품과 『위경 이야기들』 같은 상상 저널리즘을 구현한 소설도 썼다. 1930년대 후기 작품에는 정체성, 자아, 인간 동기 등에 대한 탐구가 나타나 파시즘과 나치즘을 경고하는 『첫 번째 구조대』(1937), 『하얀 역병』(1937), 『어머니』(1938) 등을 썼다.

역자 : 송순섭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체코 문학을 전공했다.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슬로바키아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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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평범한 인생』은 차페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죽음 앞에서 자신의 〈평범한 인생〉을 돌아보며 새로운 〈자신들〉과 조우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망한 한 철도 공무원이 자신의 삶에 대해 남긴 기록을 통해, 한 개인의 삶 속에 숨겨진 다양한 자아들을 조명하며 정체성의 진실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소설 중 하나로, 세 소설은 각자 독립적인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평범한 인생』은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이며,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서술로 삶에 대한 물음을 진솔하게 녹여낸 걸작으로 평가된다.
주인공은 정년퇴직한 철도 공무원인 평범한 한 남자다. 그는 심장병이 악화되자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평소 주변을 완벽하게 정돈하는 습관이 있던 그가 자신의 삶을 마지막 정돈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자신이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은 영광스러울 수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소목장이의 아들로서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와 도시의 학창 시절,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하다가 중단하고 철도청에 입사한 일, 결혼하고 승진한 일 등이 차례로 기록된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평범하고 〈깨끗이 쓰인 듯한〉 삶이다.
그런데 회상의 기록이 전개되면서, 점차 서술이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인생사에서 작은 에피소드처럼 다뤘던 사건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탈들이 새로운 의미를 얻기 시작하고, 새로운 자아들이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영웅적인 자아, 낭만적인 자아, 우울증 환자 같은 자아 등등. 새로운 자아들은 각자 나름의 스토리로 인생을 재구성하고, 그는 자신이라 규정했던 〈평범한 자아〉는 유일한 나가 아닌 여러 자아 중의 하나일 뿐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나〉란 존재는 어쩌면 내가 관계 맺어 온 모든 사람, 나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 심지어 내가 관계 맺을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의 총합일지도 모른다는 혼란에 사로잡힌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처럼 이 작품은 일견 평범하고 단일해 보이는 하나의 삶에 숨겨져 있는 깊고 섬세한 면면들을 탐구한다. 죽음 앞에서 발굴되듯 떠오르는 낯선 자신들, 자신의 삶에 들어 있었거나 있을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마주하게 한다. 이를 통해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것이 특별한 누군가의 삶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의 이야기임을 보여 준다.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고,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임을 말한다. 회상의 각 장면들은 하나하나 치밀하면서도 간결한 구어체로 삶의 국면을 따뜻하고도 익살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삶의 소중한 순간순간들에 등장하는 부모, 친구, 동료 등 수많은 타인들, 그리고 그만큼 수많은 자신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그렇기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삶을 찬미하는 작가의 발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 책을 번역한 송순섭 씨는 우리나라에 몇 없는 체코 문학 전공자로서 카렐 차페크의 은유적이고 섬세한 문장들을 작가의 의도를 살리면서 유려하게 읽히는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 대본으로는 Karel Capek, Obycejny ?ivot, in Karel Capek: Spisy VIII (Praha: Ceskoslovensky spisovatel, 1985)를 사용했다.

옮긴이의 한마디
삶에 대한 해석과 예찬을 다루고 있는 차페크 소설 『평범한 인생』은 〈우리〉라는 범주 안에서 서로를 포용할 때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는 평범함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삶의 오마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나는 평생 동안 책을 읽었다. 얼마나 많은 신기한 모험 이야기를 읽고, 비극적인 인물들과 별난 성격들을 접했던가. 마치 비일상적, 예외적, 일회적 사건과 우연 외에 다른 이야깃거리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일까? 그 대신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했고, 소심하지만 목가적인 삶에서 발견한 조그맣고 규칙적인 행복은 부끄러울 게 없다.
- 본문 19~20쪽

인생은 아이의 상태에서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남자가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아이에게서 놀랍게도 완성되고 성숙한 인간의 면모가 나타난다. 그러한 면모는 서로 들어맞지도 조직적이지도 않으며, 아이의 내면에서 연관성이나 논리성 없이 상충되어 거의 광기처럼 나타난다. 다행히도 우리 어른들은 이 상태를 사려 깊게 관조하는 데 익숙하며, 인생을 대단히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소년들에게 그 시기는 지나가는 것이라며 위안을 준다.
- 본문 57쪽

처음에 나는 평범한 인생에 대한 변명 같은 글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유명하고 비범한 사람들이 회상록에다 자신의 비범하고 특출한 운명에 대한 변명을 적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 역시 어떻게든 자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꾸며 내어 그 이야기가 단일하고 사실에 가까운 그림이 되게 만든다. 그 이야기에 어떤 단일한 연결선이 생기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나는 가능성이란 게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 본문 213쪽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가능성이기만 했던 것은 현실이 된다. 나를 제한하는 이 자아가 내가 아니면 아닐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가 된다. 이 자아는 도둑이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처럼 그 불빛의 반경 안에 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 너, 그리고 너! 너희는 그렇게 많고, 우리는 그렇게 많아 교회 축일에 모인 사람들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이 세상은 얼마나 늘어나는가! 세상이 이렇게 커다란 공간이고, 이렇게 찬란한 곳인지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
- 본문 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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