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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의 방

작품 해설 - 배반의 입맞춤(전승민)
옮긴이의 말 - 이방인만이 목격할 수 있는 진실들
제임스 볼드윈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제임스 볼드윈
현대 미국 문학사의 한 축으로 남은 작가이자 민권 운동가. 글과 행동으로 미국 사회의 흑인과 성 소수자 집단에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1924년 8월 뉴욕 할렘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동생들을 도맡아 보살피는 한편 틈틈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1945년 잡지 『네이션』에 서평을 첫 게재하고, 이어 1948년 『코먼트리』에 첫 단편소설 「이전 상태」를 발표하며 데뷔했고, 1953년 첫 장편소설 『산 위에 올라 말하라』로 큰 호평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48년에 처음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뒤 파리로 옮겨 가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볼드윈은 여섯 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시, 에세이, 희곡 등을 남겼으며 그의 소설과 에세이 여럿이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인종과 계급, 성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그의 작품들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으며, 그의 대표작들은 오늘날 현대의 고전으로 남았다. 유진 F. 색스턴 기념 재단 펠로십, 로즌월드 재단 펠로십, 구겐하임 펠로십, 파르티잔 리뷰 펠로십에 선정되었고, 포드 재단 지원금을 받았다. 1963년 조지 포크 기념상을 받았고, 1978년에 마틴 루서 킹 기념 메달을, 1986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1987년 위암으로 사망했다. 뉴욕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이 운집했고, 토니 모리슨, 마야 앤젤루 등 많은 유명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볼드윈이 195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조반니의 방』은 1950년대 파리를 무대로 미국인 데이비드와 이탈리아인 조반니의 비극적인 관계를 그린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혼돈 속에 살아가는 데이비드는 조반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데이비드가 끝내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를 열망하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파국에 이르게 된다. 남성 성 소수자의 내면을 적나라하고 날카롭게 그려 내고,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동성애자들의 문화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이 소설은 20세기 성 소수자 문학과 미국 문학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역자 : 김지현(아밀)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본명으로 영미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단편소설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 청소년 문학상 동상을 수상했으며, 단편소설 「로드킬」로 2018년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우수상을, 중편소설 「라비」로 2020년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로드킬』, 장편소설 『너라는 이름의 숲』,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사랑, 편지』 등을 썼으며, 『프랭키스슈타인』, 『인센디어리스』,『그날 저녁의 불편함』, 『끝내주는 괴물들』, 『조반니의 방』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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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1957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

자신마저도 집어 삼키는 서글픈 수치심
사랑을 압도하는 경멸과 공포

〈그 방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후로 내가 들어가 본 방, 머물러 본 방은 모두 조반니의 방을 연상시키게 되었으니 말이다. (……) 그 방에서는 삶이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것 같았고, 산이 바다로 변하듯 급격한 변화가 내게 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131면)

데이비드는 동성에게 끌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한다. 파리의 게이들과 어울릴 때도 자신은 〈이쪽〉이 아니라고, 〈정상〉적인 남자라고 항변하며 그들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외면한다. 하지만 조반니를 만나면서, 그는 그들의 일부가 아닌 척 관망하던 입장에서 관망당하는 처지로 변화한다. 조반니의 방으로, 이들의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다는 두려움은 자신에 대한 경멸과 수치심을 동반한다. 데이비드는 조반니와 길에서 아이처럼 장난을 치다가도 문득 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실제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쳐다보는지는 상관없다. 그 시선은 자기 안에 이미 내재해 있고 그는 끝없이 그 눈길로 자신을 바라본다. 10대 시절, 친구인 조이와 충동적으로 섹스를 하고 난 아침에도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어떤 피조물보다도 아름다운〉 조이의 몸,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 몸 때문에 수치심과 공포로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느낀다. 그 이후로 데이비드는 끊임없이 도망친다. 조이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미국으로부터, 그리고 다시 조반니로부터, 파리로부터, 헬라로부터.
데이비드는 그러한 도피와 부정에서 아무 보상도 얻지 못한다. 그가 열망하는 안전한 세계, 남들처럼 살 수 있는 세계는 어디에도 없고, 그는 계속 방랑할 뿐이다. 이 우주에 수치심과 공포를 느낄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우주도 자신도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끊임없이 도망치듯 돌아다니지만 언제나 갇혀 있고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그가 외면하는 것들이 〈마음 밑바닥에서 썩어 가는 시체처럼 내내 고요히, 끔찍스럽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될 수 없음을, 내 것이 아닌 욕망을 갈망할 수는 없음을 그는 이미 안다.

아무도,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 비현실 속에서

〈그리고 끝난 후, 나는 어둠 속에 누워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손을 만지는 꿈을 꾸었다. 조반니의 손을, 또는 아무의 손이라도, 나를 으스러뜨리고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 줄 힘을 가진 사람의 손길을 꿈꿨다.〉(136면)

데이비드는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부정함으로써 온전한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는 끊임없이 감추고, 경멸하고, 저항하기에 늘 현실에서 약간 벗어난, 진실이 부재한 상태에 머문다. 그런 데이비드에게는 무엇도 실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헬라도 그에게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다시는 무엇도 진짜일 수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반니. 옆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 손을 만지는 꿈을 꾸게 만드는 조반니는 그에게 현실이 될 수 없다,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조반니를 떠나며 깨닫는다. 조반니의 몸으로부터 도망치더라도, 아니, 도망침으로써, 그 몸이 〈마음속에, 꿈속에 낙인처럼 깊이〉 새겨지리라는 것을. 이제 조반니는 없고, 조반니가 있던 자리에는 영영 아무것도 없을 것임을 깨닫는다. 육체도 사랑도 영원히 거듭날 가능성도 사라졌다. 뒤늦게 그는 모두가 떠난 텅 빈 방에서 홀로 거울을 응시하며 구원에 대해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타인의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넣지만 그 자신 또한 추락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조반니만의 비극이 아니라 데이비드의 비극이자 헬라의 비극이기도 하다. 자신을 부정하고 타인을 경멸하며 사람들이 진짜 삶이라고 하는 것에 진입하려 애써야 하는 데이비드의 비극 역시 조반니가 맞은 파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 사회가 공인하는 형식 속에서 사랑과 안정을 이뤄 내고자 한 헬라 역시 뼈아픈 배신을 겪어야 한다.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세계, 자신의 현실이 아닌 남들이 정해 둔 현실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하는 세계는 이렇게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진실은 사라지고 연극과 신기루와 어둠만이 남는다.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반니는 자신을 떠나려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이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때문에 그의 몸에서도 악취가 날까 봐 두려워서 떠나는 거라고 그를 비난한다. 어떤 사랑이 악취를 풍기는 건, 사랑하는 몸이 더러워지는 건 그 사랑을 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여길 때뿐이다. 내 몸에 묻을 사랑의 악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만, 사회가 마련해 둔 〈안전한 곳〉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온전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최소한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내 악취 나는 사랑과 이 더러운 몸을 구원하는 수밖에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욕망하는 것만이 경계의 바깥으로 내모는 이 세계에서의 끝없는 추락을 막으리라고 소설은 말한다.
『조반니의 방』은 발표 당시에 뜨거운 논란과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퀴어 혐오자들뿐 아니라, 인종 문제가 아닌 성 소수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을 많은 이들이 〈배신〉이라고 여겼다. 이 작품을 통해 볼드윈은 어떤 작가여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자기를 가두는 어떤 기준에도 불복하리라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 과감하게 확장한 이 작품을 통해 볼드윈은 성 소수자의 내면을 가감 없이 그려 내고 당시 퀴어 커뮤니티의 일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성 소수자의 현실과 고민을 다룬 책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던 때에 이 작품은 복잡한 문제를 예리하면서도 섬세하게 다뤄 낸다. 20세기 중반의 주제들을 여실하게 담아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문제의식과 문학적 성취에 다다름으로써 『조반니의 방』은 빛이 바래지 않는 퀴어 문학의 고전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옮긴이의 한마디
볼드윈은 1인칭의 고백적인 문체로 데이비드의 고통스러운 분열감을 섬세하게 써 내려간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백인 남성 주인공에게 동일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냉소하지도 않는다. 그 어디도 〈집〉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데이비드의 외떨어진 처지를 볼드윈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남성성의 신화와 이성애 중심주의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결국에는 한 사람을 얼마나 파멸시킬 수 있는지, 그런 거짓 규범들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얼마나 황폐화할 수 있는지까지도 볼드윈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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