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경제적인 이익 vs. 도덕적인 이익, 무엇이 우선할까?
사람들은 대개 다른 결정을 내릴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비용편익분석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생각한다. 애리얼리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부정행위를 둘러싼 인간 본성에 관해 통찰력 있는 주장을 내놓는다. 저자는 인간의 윤리적인 행동과 비윤리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요인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정직함과 부정직함에 대한 인간 능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지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경제학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사유와 논리를 펼쳐 보인다.
애리얼리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시카고대 경제학자인 개리 베커(Gary Becker)의 견해를 소개한다. 베커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합리적인 분석을 거친 뒤 부정행위를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오직 비용편익분석을 바탕으로 판단하며 도덕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베커의 이론처럼 우리의 행동이 늘 비용과 편익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이나 계산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부정행위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어떤 사람이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획적으로 덮치는 강도 타입,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사소하게 저지르는 범죄 타입이다. 현실에서는 소극적인 부정행위자들의 범죄 피해 규모가 적극적인 부정행위자들의 강도 피해 규모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정행위는 합리적인 비용편익분석이 아니라 한 개인이 가진 퍼지요인(fudge factor)으로 인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퍼지요인에 따라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자 할 때, 이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얘기다. 스스로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자기 자신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인물로 유지하려 노력한다. 애리얼리는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의 행위는 ‘경제적인 동기’보다 ‘도덕성’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표준적인 경제이론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착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퍼지요인을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을 덜 속이게 할 수 있을까?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이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애리얼리는 이따금씩 도덕성을 재는 저울의 영점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자기합리화에 익숙해질수록 사람들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럴 때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현재의 행동방식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권한다. 천주교의 고해성사와 유대교의 욤 키푸르(속죄일)가 바로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다. 어떤 것에 유혹을 느끼고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십계명’을 암송할 수도 있다. 유혹의 순간에 아주 작은 각성 장치 하나가 장황하고 거창한 설교보다 효과적이라고 애리얼리는 주장한다.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짓말쟁이?
애리얼리는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은 다이어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 사람들은 점심과 저녁으로 샐러드만 먹었으므로 쿠키 몇 조각은 먹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진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전반적인 삶을 돌아볼 때 스스로가 꽤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은 사소한 부정행위는 너그럽게 허용하고 만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한 기준을 한 번 깨고 나면 더 이상 자기 행동을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정행위의 유혹에 이전보다 훨씬 쉽게 넘어간다고 조언한다.
이런 현상을 입증하기 위해 애리얼리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명품과 짝퉁’ 실험을 제시한다. 명품은 20개의 ‘클로에’ 선글라스, 개당 가격은 40만 원 안팎이었다. 애리얼리 1연구팀은 ‘진품’ ‘짝퉁’ ‘진품 여부 설명 없음’의 세 가지 조건을 설정하고 모두에게 진품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선글라스를 쓰고 복도에 나가 벽에 붙은 포스터와 창밖 풍경을 보면서 착용감과 품질을 느껴보라고 지시했다. 이어 수학 문제 20개를 5분간 푸는 과제를 냈다. 정답을 맞힌 수에 따라 돈이 지급되는 과제였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속임수를 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답안지를 파쇄기에 넣은 뒤 자신의 정답 개수를 스스로 보고하게 한 것이다(이때 파쇄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 진품 집단에서 실제보다 많이 풀었다고 보고한 학생은 30퍼센트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짝퉁 집단에선 거짓 보고 비율이 74퍼센트에 이르렀다. ‘설명 없음’ 집단에선 42퍼센트였다. 이는 진품 집단에 가까운 수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진품의 정직성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반면 짝퉁을 사용하면 자아의 도덕적 제약이 느슨해져 부정행위의 길로 들어서기 쉽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짝퉁이 타인의 정직성을 의심하게 만드는지도 알아봤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진품이나 짝퉁(실제로는 진품)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설문에 응답하게 했다. 설문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마트에서 새치기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을 평가하라” “사람들이 ‘미안해, 차가 너무 밀려서’라는 변명을 할 때 이것이 거짓말일 가능성을 평가하라” 등이었다. 그 결과는 예상과 같다. 짝퉁 착용자는 지인이 새치기를 할 가능성이나 사람들이 흔히 하는 변명이 거짓말일 가능성을 진품 착용자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짝퉁 명품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 부정직해지며 남을 불신하는 경향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짝퉁 명품은 우리의 행동은 물론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 주변 사람들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짝퉁에 대한 대가를 도덕성이라는 화폐로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주변 사람까지 챙기는 착한 사람이기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우리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을 때 부정행위의 유혹을 더 많이 받을까, 아니면 더 적게 받을까? 집단이라는 사회적인 연결 상태에서 이타주의와 부정직함은 어떤 경향을 보일까? 정직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집단이라는 환경은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애리얼리는 “협력하는 환경에서 부정행위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답은 이렇다. 자신의 부정행위로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볼 때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더 많이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순수하게 이타적인 차원에서 하는 부정행위는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부정행위보다 합리화하기가 쉽기 때문에 도덕적인 금기의 벽이 더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타적인 부정행위의 경향성을 살펴보기 위해 부정행위로 얻는 이득을 실험 참가자의 짝이 챙기는 조건으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위해 부정직한 행동을 할 때, 즉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기 행위에 따른 이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정행위의 규모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온전히 이기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지만 때로 주변 사람이나 자신이 돌보는 누군가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감정 때문에 사람들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 난감해하는 사람을 돕고, 길거리에서 주운 지갑을 주인을 찾아 돌려주며, 노숙자 쉼터에 돈을 기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이런 이타적인 성향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직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 좀 더 부정직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까지 챙기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부정행위도 전염된다
부정행위는 일상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전염성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나쁜 행동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 애리얼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사회 규범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동을 할 때 자신의 도덕성 범주를 수정하며 그의 행동을 자신의 모델로 삼는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부모, 직장 상사, 교사 혹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의 행동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부정행위를 포함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결정할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애리얼리는 부정직함이 사회적인 전염을 통해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부정직함을 제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사소한 잘못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잘못들이 쌓이고 모이면 잘못된 행동을 대대적으로 해도 괜찮다는 신호로 인식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가듯 새롭게 탄생한 보다 덜 윤리적인 행동 양식도 사람들 사이에 전파해나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미묘하고 느리게 진행되지만 종국에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소한 부정행위에 대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며, 또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 해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저자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을 들어 개개인의 사소한 부정행위를 개선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이론은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상점 주인이 건물을 포기했거나 관심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돼 불량배들이 그 건물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결국 그 지역 전체가 슬럼화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소한 범죄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쉽게 용서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애리얼리는 이와 마찬가지로 부정행위의 사회적인 전염을 고려한다면 단 한 차례의 사소한 부정행위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되며, 비록 사회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더라도 도덕적인 행동을 고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도덕성을 회복할 것인가?
욕망이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욕망을 추구하며 따라서 부정행위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부정행위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행위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부정행위의 수준을 낮출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도덕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탐구하고 그에 대한 희망적인 대안을 찾아낸다. 저자의 연구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정행위의 추악함과 이것이 빚어내는 엄청난 결과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우리 안에 그리고 사회 도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부정직함의 마술을 벗겨내고 그 실체를 정확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현실적인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행동을 실제로 이끄는 요인들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나면 부정직함을 비롯해 인간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21쪽)
저자는 인간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의 잘못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사회적 차원에서 좀 더 폭넓게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사회가 아무리 추악하다 하더라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믿음 혹은 연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과 연민이 있기에 부정행위에 대한 저자의 혐오가 섬뜩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