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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29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설재인
1989년생. 한때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으나 인생이 요상하게 흘러가서, 이제는 하루 종일 소설을 쓰고 읽는 일을 한다. 근육이 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그래도 술을 오래 마시기 위해 매일 세 시간씩 체육관에 머무른다. 2019년 《내가 만든 여자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사뭇 강펀치》,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 《붉은 마스크》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우리의 질량》 《강한 견해》 《내가 너에게 가면》,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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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양로원에 억울하게 갇힌 할아버지를 구출하라!
혜인이와 여민이, 그리고 수향 씨의 무모한 구출 작전
그 뒤에 숨겨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

할아버지가 양로원에 갇혔다. 까다로운 입소 절차는 ‘노망이 났다’는 말 한마디에 너무나도 쉽게 해결됐다. 혜인이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늘 할아버지에게 화만 내고 아빠는 할아버지가 앞에 있어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엄마에게만 말을 걸곤 했다. 혜인이는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한다. 할아버지의 양로원 구출 작전을.

혜인이의 할아버지는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너무나도 양심적인 나머지 회사가 통협동에 오수를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그 이후로도 그들의 아픔을 되새기고자 다리 밑에서 불편하게 지낸다. 누구나 사용하는 방수 시스템인 ‘누비스’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통협동에 오수를 버리기 시작한 회사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혜인이는 다리 밑 강물이 불어날 때마다 이제는 희귀 아이템이 되어 버린 ‘우산’을 들고 할아버지를 맞이하러 가야 했다.

역시나, 할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부르자마자 원하던 대로 입을 뗐다. 실은 좀 과하게 뗐다. 수향 씨를 향해 냅다 주절거린 것이다. 맞아요, 내가 그래요, 사람이……. 그래서 가족들이 해 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속만 썩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할까 미안하긴 한데 내가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이 비를 이렇게 쉽게 안 맞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이 점점 많이 퍼지면 사람들은 점점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잊게 될 거예요, 비를 맞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믿지 않게 될 겁니다, 그래서 나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_p.39~40

한편, 통협동에서 살며 혜인이의 할아버지를 ‘서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친할아버지처럼 따르는 소년 여민이는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차분한 성격을 지녔다. 여민이는 자신을 포함한 통협동에 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통협동의 아이들이 태생부터 달고 태어나는 화상 같은 무늬, 가난하고 더러운 동네.

“서가 할아버지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서가 할아버지. 그 호칭이 너무 낯설어 눈만 굴리고 있는데 성여민이 다시 덧붙였다.
“할아버지 손녀라고 해서 꼭 할아버지처럼 나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날 혐오해도 돼. 많이들 그러니까.”
전혀 상상하지 못한 말이라서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_p.90

처음에 혜인이는 여민이를 보고 깜짝 놀라지만 점차 피부에 새겨진 무늬가 ‘살라맨더’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후로 혜인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억할 것.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릴 것. 그들을 위해 움직일 것.

“내게 이슬이란, 노망과 같은 층, 같은 자리에 위치하는 단어.”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조명하다

『범람주의보』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이타적인 마음’이다. 타인의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며 기억하는 것. 혜인이는 서울의 진실과 통협동의 모습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학교에서조차 배우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 ‘저런 사람들’이라며 늘 타자화되고 일반인들과 섞이지 못하는 이들.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었다. 혜인이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보이지 않도록 양로원에 가둔 ‘노망’난 이들,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는 새벽에만 볼 수 있는 ‘이슬’.

수향 씨가 흰 머리를 쓸어넘겼다. 손에 물기가 약간 남아 있어 머리에 방울방울 물이 맺혔다. 나처럼 검은 머리 위였다면 티도 안 났을 텐데, 새하얀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물방울들은 정말 잘 보였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물론 나는 이슬이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건 24시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야 관찰이 가능한 아름다움이니까. 문학 교과서에서나 본 그런 개념이다.
그러니 내게 이슬이란, 노망과 같은 층, 같은 자리에 위치하는 단어.
_p.57

『범람주의보』는 보이지 않는 이들을 잊지 말자며 따뜻한 손길을 건넨다. 우리가 이렇듯 아무 일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평범함’ 속에 가려진 이들은 어디든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혜인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여민이, 수향 씨는 기꺼이 타인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한다. 주변의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부조리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비록 작은 몸짓이라 순식간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양로원 탈출 대작전’은 하나의 큰 날갯짓이었다. 이 세상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자들이 있다는, 작은 나비의 큰 날갯짓.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비로소 조화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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