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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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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밥

라면을 끓이며 _11
광야를 달리는 말 _32
바다 _48
밥 1 _70
밥 2 _74
남태평양 _76
갯벌 _94
국경 _98
공 _122
목수 _127
줄 _131
목숨 1 _137
목숨 2 _142

2부 돈

세월호 _153
돈 1 _178
돈 2 _182
돈 3 _186
신호 _191
라파엘의 집 _195
서민 _197
러브 _201
불자동차 _205
소방관의 죽음 _215

3부 몸

바다의 기별 _223
여자 1 _232
여자 2 _238
여자 3 _243
여자 4 _247
여자 5 _251
여자 6 _256
여자 7 _262
손 1 _267
손 2 _278
발 1 _283
발 2 _289
평발 _293

4부 길

길 _299
바퀴 _303
고향 1 _307
고향 2 _317
고향 3 _327
쇠 _332
가마 _343
셋 _349
까치 _353
꽃 _357
잎 _361
수박 _365
11월 _370
바람 _374

5부 글

칠장사_ 임꺽정 379
연어_ 고형렬 391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397

작가의 말 410
저자 소개

저자 : 김훈

1948년 서울 출생.
2000년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
소설 『칼의 노래』, 산문 『풍경과 상처』 외 여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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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_본문에서

김훈의 밥 . 돈 . 몸 . 길 . 글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밥, 돈, 몸, 길, 글. 이 다섯 개의 주제는 그의 문체처럼 간명하고 정직하다. 그 무엇도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는 이 단독한 세계 안에 김훈이 있다.

그는 「손1」에서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라고 썼다.
이 책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드는 안쓰러운 손으로 현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겨우 버티어내는 그와, 홀로 집필실에서 연필 쥔 손에 힘을 준 채 글을 써내려가는 그가 느껍게 만나는 자리이다.

지난날 한 인터뷰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들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들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근의 글들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엔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고압전류가 흐른다.
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 이 책은 김훈이 축적해온 삶 위에, 가차 없이 버리고 벼린 그의 문장의 힘이 더해져, ‘김훈 산문의 정수’를 읽는 희열과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2015년 여름은 화탕지옥 속의 아비규환이었다. 덥고 또 더워서 나는 나무그늘에서 겨우 견디었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와서 숙살肅殺의 서늘함이 칼처럼 무섭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몇 편의 글을 겨우 추려서 이 책을 엮는데, 또하나의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를 나는 걱정한다.
_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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