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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금을 간직한 채 나아가는 일

1 다른 사람
도착
도착 ̄당주에게

2 씨앗으로 견디기
아욱국을 끓이는 가을 아침
나의 첫 책 이야기
고양이 발톱 깎기
예술을 가질 수 있어?
‘나’라는 안식처
구름은 균형을 몰라도 아름답다
연두의 노력
보여도 될 것만 올립니다
나무는 푸르렀고, 그저 나무였다
어른의 공부법
눌린 돌, 작은 돌, 튕겨져 나간 돌
밤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람
소비의 기쁨과 슬픔

3 열리고 닫히는 마음들
추억의 비용
초보 운전자를 사랑합시다
귀 얇은 노인이 되고 싶다
술이라는 열쇠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를 만드는 것들
은둔자
괴팍한 디제이의 음악 일기
내 사랑은 작은 조약돌 같아서
집이라는 우주

4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간직할 수 있다
기다림의 순정에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간직할 수 있다
나오고 싶지 않은 방
호의
언니들의 시
미친 말들의 슬픈 속도
저자 소개
저자 : 박연준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동화 『정말인데 모른대요』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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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신이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

포옹은 애정과 격려의 몸짓이다. 상대를 맞아들이는 행위이자 마음을 나누고 지지하는 소통의 방식이다. 책의 첫 번째 글 「도착」에서 시인은 남편과 상의하지 않은 채 반려동물을 집에 들인다. 파양과 임시 보호 상태를 전전하는 고양이를 차마 모른 체할 수 없었던 탓이다. 남편은 의논도 없이 입양을 결정한 시인에게 화가 나 고양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룻밤 만에 장난감 낚싯대를 흔들며 새로운 식구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간식을 챙기며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용과 이해의 과정은 「추억의 비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시인의 남편은 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집에만 8천 권 정도를 들여놓는다. 다른 2만여 권은 파주에 사무실을 임대해 따로 보관한다. 책을 위한 월세를 지불해야 할 때마다 남편은 시인의 눈치를 본다. 매번 시인은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당신을 이룬 한 세월이라면 같이 품어요. 일단 품어봅시다” 하며 수긍한다. 무릇 사랑이란 “도를 벗어난 것, 선을 넘는 것”이고 상대가 “사랑하는 걸 참고 품어주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요한 포옹』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에만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간혹 상대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그 곁을 지키며 ‘우리’가 되는 일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기를 독려한다.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없다는 말은 타인의 고통을 ‘그처럼’은 알 수 없다는 말일 게다. 당장은 늙은 사람의 마음을 ‘늙은 사람처럼’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다음에 올 말을 찾기 위해 애쓰고 싶다. _143~144쪽

“괜찮아, 정말 괜찮아”
실패를 무릅쓰며 살아가는 일

『고요한 포옹』에는 시인이 겪은 곤경과 그것을 감내하며 얻은 사유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눌린 돌, 작은 돌, 튕겨져 나간 돌」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멩이처럼 지냈던 시기로 털어놓는 대목이 그렇다. 시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와 학교의 강압적 통제를 견디며 “내 처지의 비루함, 모멸감, 부당함”에 대해 오랫동안 저항하지 못했던 나날을 상기한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면 조심스레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고 쓴다.

어른들이 오랫동안 수갑처럼 채워놓은 죄의식을 풀어버리렴. ‘마땅히’라는 말을 바다에 던져버리렴. 걱정과 불안 때문에 현재를 달달 볶는 일은 그만두렴. 나아갈 때는 전진만 있는 게 아니란다. 지그재그로 춤추듯 깡충거리며 나아가도 되고, 멀리 돌아가도 괜찮아. 시간은 얼마든지 많단다. 후진했다 다시 나아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부디 나처럼 걱정이 많은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_106쪽

시인의 깊고 원숙한 시선은 마흔이 되어서야 운전대를 잡게 된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초보 운전자를 사랑합시다」에는 여성 운전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 좌충우돌하는 시인의 분투가 자못 경쾌한 어조로 그려져 있다. 주차를 순전히 운에 맡기던 시기에 시인은 차로 기둥을 들이받거나 단골 카페의 유리창을 깨는 등의 사고를 겪는다. 그럼에도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도로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 운전자가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여성 운전자의 실력을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남아 있다. 세상에 위험을 수반하지 않고 성취할 수 있는 가치가 있던가? 처음부터 운전에 능숙한 사람은 없다. 수많은 위험과 크고 작은 사고를 겪어내며, 모르던 감각을 익히고, 시행착오를 경험한 뒤에야 능숙한 운전자가 된다. _136쪽

이렇듯 시인은 실패를 품은 채로만 성장할 수 있다는 생의 진리를 몸소 실천한다. “못하는 건 잘할 때까지 계속하면 된다”는 다짐으로 새로이 시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불안과 위기를 딛고 나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독자들에게 뭉근한 위로를 준다. 살아가는 데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님을, 얼마든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박연준(지은이)의 말

이제 나는 열정적 포개짐보다 고요한 포옹이 좋다. 당신이 간직한 금이 혹시 나로 인해 부서지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가서는 포옹이 좋다. 등과 등에 서로의 손바닥이 닿을 때, 가벼운 포개짐이 좋다. 고양이처럼 코끝으로 인사하며 시작하고 싶다. 끔찍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금 간 것을 계속 살피고 보호하려는 마음을 키우고 싶다. 어렵더라도.

책 속에서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태어난 후에도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내 앞의 나, 그 앞의 나…… 수많은 자신이 일렬로 서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남의 몸을 빌려 사는 듯, 그렇게 산다. 방법은 없다. 본인이 스스로를 알아봐야 한다. 이게 나구나, 이렇게 태어난 게 나구나, 받아들여야 한다.
--- pp.43~44

냇물이 흘러 강으로 가려는 속성,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려는 속성에는 치우침이나 비틀린 노력이 없다. 무얼 하고 싶은 마음, 어떻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레 태어나도록 이끄는 게 좋다.
--- pp.69~70

만개하기 전 꽃망울이 맺힌 벚나무를 열 걸음 떨어져서 본 적 있는가? 그때 벚나무는 간질간질, 분홍 재채기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서 벚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다면! 분홍을 밀어낸 흰빛이 화사하게 터져 나올 게다.
--- p.90

세상을 향해 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쉽게 답을 찾고 싶지 않다. 세상에 숙련되고 싶지 않다. 단련할 수 있을 뿐. 더듬더듬 쓰고 천천히 생각해보겠다.
--- p.99

그땐 우리의 찬란함을 몰랐다. 술과의 거래에서 매일 살아 돌아오며, 읽고 쓰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우리의 싱그러움을 몰랐다. 우리는 스스로를 ‘창피함과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자주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괴물이라니, 그런 건 이미 괴물일 리 없는데 자책으로 낮과 밤을 보냈다.
--- p.147

밤에 혼자 깨어 있다는 건 세상에 혼자 남아 있는 일과 비슷하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어딘가에는 이렇게 혼자 남아, 밤을 지키는 자가 많을 테다. 옆에 식구들의 평온한 잠이 있기에 안도할 수 있는 밤. 밤의 문지기를 자처하여, 고독과 고요를 곁에 앉히는 시간이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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