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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글픈 자의식
몸에 묶인
간지러운 비명
시(달리는)
종이무덤

부록
저자 소개
저자 : 박참새
집필 노동자. 주로 시를 쓴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정신머리』,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과 『시인들』, 그리고 산문집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이 있다.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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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손이 떨릴 때도, 너무 많이 떨려서 도무지 이것이 글자인지 글자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쓰이는 그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었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모두 여기 쌓여 있다. (…) 요동치는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큼의 무게를 견디며 썼는지. 견디면서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얼마나 써 내려가고 싶었는지. 글자는 많은 것을 말한다. 어렵게 쓰인 글자들은 더욱 많은 것을 말한다. 필요 이상으로. _본문에서

거침없이 투명하게 이어가는 글들은 때로 광폭한 외침으로도 들린다. 시인은 일견 세상과, 나아가 자기 자신과 불화하는 듯 보이지만 계속해서 골몰하고 쓰고 읽는 행위는 외려 불화와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몸짓에 다름 아니다.

책 안으로 숨어 낡아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신만의 빗금이 가진 무늬를 말하기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이라는 제목에서 바로 보이듯 박참새는 첫 산문집에서 서글픔을 양분 삼아 시를 짓는 시인의 정체성을 기입해나간다. “내가 나를 허락하잔 마음으로” 시인이라 자칭하던 시절을 거쳐 마침내 ‘제도권의 승인’을 얻었음에도 애매한 존재에 머물러 있다는 감각은 떨쳐지지 않는다. 항상 바쁠 것 같다는 오해, 예전처럼 쓰이지 않는 시, 생존과 벌이라는 문제는 등단과 상관없이 늘 발목을 잡는다. 시인은 그렇게 웅크림을 고수하면서도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고 시도 더 많이 쓰고 싶다”라는 희망 어린 다짐을 조그맣게 읊조린다.

내가 기어코 무언가를 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이런 기분이 든다. 내 몸은 텅 비었고, 나는 그저 받아 적었을 뿐이다, 성실히 남의 것이 되어서. 그러면 그 글은 나의 갑옷이 된다. 튼튼하고 남다른. 그 어떤 공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다. _본문에서

문학적 레퍼런스가 풍부하기로 정평 난 이답게 쓰는 사람 이전에 읽는 사람으로서의 박참새를 엿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으면서 그의 양면성과,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그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는지 분석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는 “관찰의 미학과 도식화할 수 없는 화자가 여럿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설이 아닌 장시로 읽힌다는 독창적인 관점도 내비친다. 특히 다와다 요코의 『글자를 옮기는 사람들』을 통해 ‘번역’이라는 행위를 항해와 선적에 비유한 대목에서는 시인 특유의 기민한 통찰력이 느껴진다.

언어는 머무르지 않는다. 영원히 떠다닌다. 항해하고 선적된다. 여행하며 옮겨진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를 횡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_본문에서

시인이 놓은 낱말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멍든 마음에 위안을 얻다

“내용과 형식을 구분 짓고 싶지 않”다던 인터뷰처럼 박참새는 이번 산문집에서도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다. 시인은 책을 크게 다섯 개 장으로 구획한 뒤, 각 장 안에서 글을 쪼개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듯 잇대어간다. 긴 호흡으로 배치된 글은 각각의 덩어리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한편으로 읽는 이의 여운과 쉼을 위해 글쓴이가 마련해둔 장치와 마주치는 것 또한 톡톡한 재미다.
인간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늘 타자와의 이격을 가늠하며 만사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시인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시인의 문장을 찾아 읽는 이유는 모종의 동질감을 자신만의 언어로 꿰어낸 글에서 안심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아슬한 균열을 나날이 감지하면서도 오로지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는 젊은 시인의 바람은 창작의 곤경을 아는 이들에게 자못 미덥다. 끝끝내 “넘실대는 서글픔”을 기꺼이 끌어안는 시인의 품에서 쏟아져 나온 문장들이 독자에게 진득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의 말

나는 슬픈 사람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이다. 그 어떤 시절도 사람도 내가 슬픈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아주 많은 슬픔이 이유 없는 채로 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슬픔들이 매일매일 산책한다.

그리고 당신 또한 슬픈 사람일 것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일 것이다. 우리 바깥세상의 가깝고 먼 일들을 보면서 자주 퇴출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고, 그리하여 모두와 영원히 불화할 것만 같단 생각에 또 괴로워하는. 나로 인해 울다가도 세상의 울분 소리가 들려오면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삶이, 삶이 너무 길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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