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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희, 지퍼 내려갔어
박애진, 알 카이 로한
듀나, 자코메티
달리, 기억의 기적

엮은이의 말: 모두가 ‘나 자신’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저자 소개
저자 : 달리
환상문학웹진 거울 필진. 단편소설 「세 번째 도약」으로 제5회 황금드래곤문학상 본심에 올랐다. 단편소설 「끈벌레」 「검은새」 등을 썼다.

저자 : 듀나
1994년부터 SF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집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 『구부전』 『두 번째 유모』, 장편소설 『민트의 세계』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평형추』 등을 썼다.

저자 : 박애진
2022년 『명월비선가』로 SF어워드 장편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우리의 파동이 교차할 때』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장편소설 『히아킨토스』 『라비헴 폴리스 2049』 등을 썼다.

저자 : 최영희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2016년 SF어워드 중단편부문 우수상, 제5회 황금드래곤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구달』 『이끼밭의 가이아』 『유니시티 보안관 디어루』 등을 썼다.

엮음 : 송수연
2014년 『창비어린이』 신인평론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우리에게 우주가 필요한 이유』를 썼다. 계간 『작가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어린이청소년SF연구공동체플러스알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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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수많은 다름의 당연함을 가장 낯설고 새롭게,
네 편의 SF 소설

수많은 다름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 있음을 드러내는 ‘문학동네청소년 ex’ 소설, 그 첫 번째 책은 SF 소설집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이다.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에는 달리, 듀나, 박애진, 최영희 작가의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낯설고 새롭게 보여 주는 단편소설 네 편을 담았다. 제5회 황금드래곤문학상 본심에 올라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마주하는 태도”로 미래를 그렸다는 평을 받은 작가 달리, ‘한국 SF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하며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듀나, SF부터 판타지, 스릴러, 청소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은 박애진,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하며 그만의 색깔로 청소년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해 온 최영희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이 풀어놓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의 감춰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고등학교 진학까지 함께해 온 친구의 진짜 얼굴, 지구인과 신호 체계가 달라 오해를 받는 외계인과 무성한 소문에 휩싸인 성소수자 친구,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 인해 실체와 달리 끊임없이 존재의 정의가 달라지는 외계 생명체, 지난 삶을 제3자의 눈으로 다시 관찰하기 위해 떠나는 시간 여행 등 네 편의 소설에서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며 기존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리하여 익숙한 대상을 다른 각도로 조명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발을 뻗게 한다.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은 청소년의 욕망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며 차곡차곡 쌓아 왔던 청소년들의 욕망과 분노가 “왜 결정권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순식간에 폭발한다. 오빠만 알아주는 차별적인 가정환경에 분노하고,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어 전전긍긍하며, 남들과 다른 외모를 향한 따가운 외부 시선에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규정한 보편과 정상의 범주에 맞춤하지 않기”에(송수연) 중심에서 배제된 채 한 발 뒤로 물러난 존재들이다. 달리, 듀나, 박애진, 최영희 작가는 청소년들의 억눌린 마음을 투명하게 비추며 더 넓은 우주를 선물한다.

오빠에게 닭다리를 빼앗긴 지리멸렬한 지난 삶이 떠올라
내 안의 묵은 욕망이 폭발했다.
_최영희, 「지퍼 내려갔어」

‘청소년 감시단’ 모집 영상 속 찬란한 배지를 보는 순간, 채이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오빠한테만 닭다리를 몰아주는 차별과 핍박 속에 자란 채이에게 드디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청소년 감시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빛나는 배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불량 청소년을 감시하는 줄 알았건만, 순혈인류를 위협하는 파충류 외계인을 잡아오라니. 채이는 역경의 구린내가 감지되는 렙틸리언 색출 작전에 뛰어든다. 그런 와중에 렙틸리언처럼 두피를 위아래로 마구 움직이는 전학생 도챈스가 등장하는데. 말랑말랑하고 보송보송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도챈스가 정말 순혈인류를 위협하는 외계인일까, 자꾸만 의문이 든다.

『지퍼 내려갔어』의 주인공 채이를 따라 렙틸리언의 정체를 파헤치다 보면 “우리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순혈주의’의” 면면을 목격하게 된다. 정상 속에 스며든 비정상을 색출하는 과정은 사이비 집단의 광적인 집회를 연상시킬 만큼 기괴하다. 낯선 존재를 색출의 대상이 아닌 존중과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에게 더 깊고 넓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사람에게는 비밀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야.”
내게도 그런, 아주 특별한 비밀이 있기를 갈망했다.
_박애진, 「알 카이 로한」

할머니는 증조할아버지가 여기서 103만 광년 떨어진 ‘알 카이 로한’ 행성 출신이라고 했다. 정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랍에서 파란색 다이어리를 발견하고 작은 가능성을 품는다. 매달 할머니 통장에 삼백만 원을 입금하는 의문의 이름, 흑백사진 속 늙지 않는 남자, 우연히 홍대에서 마주친 수상한 행동의 아저씨까지. 정윤은 종잡을 수 없는 일들과 맞닥뜨리며 자신이 정말 외계인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특별함에 이끌린다. 아주 친한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이 있기를, 친구들이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서 앞다퉈 경쟁하기를 갈망한 정윤에게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각별하게 만들어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진짜 외계인은 엉뚱한 곳에서 등장하는데.

『알 카이 로한』은 특별한 외계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 정윤과 평범한 지구인처럼 보여야 하는 외계인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안전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로, 사회가 규정한 표준과 보편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 준다. 스스로를 존재감이 없다고 여기는 정윤을 이해하고 위로해 준 이들은 소위 정상의 범주에서 밀려난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걔를 좋아했거든.”
목사님 딸 찬미의 고백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_듀나, 「자코메티」

2009년 우주선을 타고 온 외계 로봇들이 지구를 침공했다. 안양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이들은 자동차와 쌍안경, 밥그릇 그리고 사람까지 모조리 분해해 부품으로 삼았다. 노인정 할머니들은 민정에게 “며칠 전부터 이상한 남자와 다니는 것 같은 목사님 딸”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저 생사만 확인하려 했던 민정은 예상치 못한 고백을 듣고 찬미와 동행하기로 한다. 민정은 전쟁터가 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기계의 흐름을 읽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찬미는 식당에서 묵은지를 꺼내 먹고 신선한 제철 과일을 구하는 등의 식량 네트워크 구축에 한창이다. 두 사람이 점차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며 아슬아슬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 부패의 냄새로 가득한 안양에는 인간과 비슷한 형체의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익숙한 도시였던 안양을 한순간에 낯선 공간으로 바꿔 놓으며 ‘불쾌한 골짜기’의 정수를 보여 준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을 연출하다가도 극한의 상황에 내몰렸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위기의 순간 찬미와 민정을 건져 올린 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두 사람의 시선이었다. 『자코메티』는 새로운 삶의 방향은 타자의 다름을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그곳에서 민하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없는 우주에서 비로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_달리, 「기억의 기적」

누구나 원하는 시간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 열다섯 살 수우는 시간 여행사 ‘기억의 기적’의 문을 두드린다. 열네 살 겨울에 갑작스레 자신을 떠난 민하와의 깨진 우정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수우는 민하와 처음 만난 아홉 살, 서로에게 접근 금지 통보를 받은 열 살, 영원히 친구로 지내자고 우정을 다지던 열세 살 무렵으로 돌아간다. 수우와 민하가 서로 의지하고 서운해하고 오해하던 복잡한 감정들은 열네 살 졸업식에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다. 그리고 진눈깨비가 떨어지던 열네 살 마지막 만남으로 돌아간 수우 앞에 뜻밖의 시간 여행자가 나타난다.

『기억의 기적』은 “타자가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우리는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헤매지만, 진실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며 당연함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전의 나와 거리를 확보하고 늘 신중한 태도로 타인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작가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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