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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엄마와 나는 물에서 새롭게 만났다

오춘실의 봄
2020년 종로 “독하니까 먹고 살았쟈!”
2020년 종로 “내가 알아.”
1978년 영등포 “두근두근해.”
2021년 마포 “오춘실의 세상이네.”
2021년 마포 “추워서 허리가 땡겨.”
2021년 마포 “처음 들어왔을 땐 여기가 뛰었어.”
1984년 안양 “좋으니까 살았겠지.”

오춘실의 여름
2021년 마포 “어디가 아프셔?”
2021년 마포 “요즘은 수영하는 게 제일 즐거와.”
1985년 안양 “내가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쪽이 못 난 거야.”
1985년 안양 “우리 딸은 아버지 없이 키우고 싶지 않았지.”
2022년 마포 “그거 하기 싫여.”
2022년 마포 “이미 먹은 물은 어쩔 수 없어!”
2022년 마포 “몰라. 저절로 됐어.”
1993년 안산 “그 인간도 곱게 죽진 못했을 거야.”
2022년 종로 “평발이라고 못 한 거 없어!”
1998년 안산 “40대 땐 샛노랬어.”
1998년 안산 “그때 그 냄새가 나.”

오춘실의 가을
2023년 마포 “사람 없어 좋다.”
2023년 마포 “행복이 별건가요.”
2002년 안산 “자존심으로 산 거야.”
2023년 송파 “원래 첫술에 배부른 거 아닌겨.”
2005년 안산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오춘실의 겨울
2024년 마포 “물에 떠다니면서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좋잖어.”
2024년 중구 “재밌게 살아. 인생은 재밌게 사는겨.”
2015년 안산 “걔도 사정은 있어.”
2024년 마포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거야.”
2024년 마포 “오늘도 시간 잘 갔다.”
2024년 종로 “나 가면 하나님이 그럴까. 우리 춘실이 잘 왔다.”
2024년 마포 “예전의 춘실이가 아니야.”

에필로그 먼 곳을 돌아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저자 소개
저자 : 김효선
소설 읽고 수영하는 사람.
스트로크 9년 차,
소설책 판매직 16년 차,
폐지 수집 보조 4년 차,
오춘실 쫓아다니는 사람.
장래 희망은 자원 재생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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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소설적 부양 없이도 얼마든지 헤엄쳐 나갈 수 있는
‘사실 세계’의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나는 경이롭게 깨달았다.”
_ 김금희 소설가

김금희, 장일호, 조해진 강력 추천!
16년 차 온라인서점 문학 MD의 범상치 않은 데뷔작
중력의 세계에서 부력의 세계로 독자를 이끄는 이야기

“우리는 수영장에서 지친 몸을 헹구고 다친 마음을 닦으며 나날이 새로워졌다.”

16년째 국내 문학을 열정적으로 소개해온 온라인서점 MD 김효선은 작가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김금희 소설가는 그가 쓴 “편집장의 선택” 코멘트를 읽을 때면 “언제나 울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며 “소설이 가고자 애쓴 바로 그 지점을 짚어 주기 때문에 정확히 격려받는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타인의 책이 제대로 대접받기를 꿈꾸며 추천평을 써 온” 그가 이제는 작가의 자리에서 독자를 만난다.
《오춘실의 사계절》은 엄마 오춘실과 함께 헤엄치며 성실하게 귀 기울인 한 사람의 일대기를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풍경에 담아낸 에세이이다. 50년을 쉼 없이 일하다 은퇴한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시간 위로 “억세게 고생”한 오춘실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닿으려 애쓴 마음이 빈틈없이 배어 있는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다정하게 물들인다. 일과 인간관계에 붙들린 중력의 세계에서 지친 몸과 다친 마음을 닦아 주는 부력의 세계로 이끄는 이야기의 신비가 갈피마다 작동한다. 매 글 첫머리를 포함해 본문 곳곳에는 작가의 독서 내력이 드러나는 다양한 책들이 등장하는데, 인용된 구절이 마치 글의 일부인 듯 절묘하게 녹아들며 문학적 향취를 돋운다. “어리둥절한 삶을 소화하”기 위해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소설책을 읽던 어린이는 “소설에서 엄마를 읽”는 어른이 되어 엄마 인생을 첫 책으로 쓰게 되었다. 살면서 그를 위로하고 구했던 좋은 이야기들이 작가의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어느새 그 자신을 좋은 이야기꾼으로 만들었음을 증명하는 범상치 않은 데뷔작이다.

엄마와 나는 물에서 새롭게 만났다. 일하는 여자라는 공통점으로 말문을 텄다. 165개월을 근속한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엄마는 43개월째 헤엄치고 있다. 엄마가 물을 잡았다 놓으며 이야기처럼 졸졸 흘러가면 나는 그 말을 좇아 엄마를 따라갔다.

“사는 거 힘들었어?”

“힘들어도 할 수 없지 뭐.”

좋아도 할 수 없고, 싫어도 할 수 없고.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엄마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은 지나가길 기다리며 살았다. 자주 엎어지던 엄마는 넘어져서 된통 깨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다. 땅 짚고 헤엄치는 것 같은 행운이 엄마에게 허락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비바람이 불어도 엄마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 복스러운 얼굴을 기록하고 싶다. _〈프롤로그〉에서

‘우리 모두의 오춘실’에게 바치는 가슴 벅찬 찬가
“당신은 위대한 삶을 살아왔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장으로 나뉜다. 오춘실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수영장에서의 여러 해가 흘러가는 한편, “중학교에 가는 대신 산골 집에 혼자 남아” 집안일을 돕다 상경해 결혼하기까지(봄), 출산 후 공장, 식당, 병원, 과수원 등을 옮겨 가며 본격적으로 밑바닥 노동을 하는 고난의 시절(여름), 청소부로 일하던 중년(가을), 폐지를 수집하며 수영과 함께 맞이한 노년(겨울)에 이르기까지의 긴 세월이 맞물려 돌아간다. 좀체 늘지 않는 수영처럼, 오춘실의 인생엔 대단한 반전도 발전도 없다. 그저 “굽이굽이 삶의 곡절을 통과해 수영장까지 도착”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보잘것없는 여정이 “사실 세계”에서 놀랍도록 선명하게 생동한다. 작가는 엄마의 인생을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불행”으로 간단히 요약하는 대신, 더없이 풍성하고 디테일한 드라마로 복원해 낸다. 월남하며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노순일의 “분하고 억울한” 화를 물벼락처럼 맞으며 자란 오춘실은 무뚝뚝하지만 세심한 구석이 있던 “까맣고 반질반질한” 남자와 만나, 주례 목사가 신랑 이름을 내내 잘못 부르던 결혼식을 마치고 부부가 된다. “메리야스를 새하얗게 삶아” 놓고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는 “흡족한 시절”이 잠깐 이어지지만, 곧 도박에 빠져 한 직장에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하는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맵고 신 진짜 삶”이 시작된다. 하지만, 오춘실은 미끄러지는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커다란 하수구 관이 집 안을 관통하던 지하방,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연필이 저절로 굴러가고 자연 전집에서나 보았던 지렁이가 갈라진 벽 틈으로 기어 나오던 단칸방을 전전하면서도 불평하기보다는 남들보다 한참 늦게 갖게 된 세탁기에 감동하고, 가정부로 일하던 집에서 “자기네 치과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칫솔에 손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땐 급여를 올려 준다는 제안에도 미련 없이 때려치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아내고, 아무리 궁해도 자존심만은 내려놓지 않았던 엄마에게서 작가는 실패 대신 “생의 의지”를 읽어낸다. “삶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그 삶을 손에 쥐는 법”을 “유산 대신 받아 적는다”. 그저 누군가의 엄마일 뿐인 오춘실이 우리에게 깊은 존재감과 뭉클한 감동을 남기는 것은 ‘보통 사람의 비범함’을 새롭게 환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위대하다고, 위대한 삶을 살아왔다고.”

엄마는 복수를 바라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삶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그 삶을 손에 쥐는 법을 알아 나갔다. 엄마의 비법, 나는 그것을 오래 두고 배울 참이다. _217쪽

“괜찮아. 언젠가 상처로 숨을 쉴 수 있으니까.”
“우리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도 헤엄칠 수 있다.”

오춘실이 육체노동을 하다 몸을 다칠 때, 작가는 책상노동을 하며 마음을 다쳤다. “일주일에 일곱 번 술을 마셨고, 새벽 5시까지 술을 먹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출근이었다”. 가방 속에 소주병을 넣고 다니며 인두처럼 달아오른 마음을 수영장에서 식혔다. 정신과를 다닌다는 말에 엄마는 “내 딸 착한 건 내가 알아”라고 말한다. 그 말이 작가를 살린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 주자 내가 미련하게 버티며 증명하고 싶었던 게 뭔지 알게 되었다. 남이 나를 싫어하든 말든 나 자신만은 그런 말들에 속아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고약하면 고약한 대로 나를 덜 미워하며 살고 싶었다. _32쪽

엄마 말에 귀 기울이자 눈이 트였고, 엄마가 보는 풍경이 보였다. 거기엔 가지각색의 사연과 사정을 품은 연약하고 상한 몸들이 있었다. 각자의 산전수전이 허물없이 섞이고 “어디가 아프셔?”라는 물음이 인사인 나이 든 여자들의 세계에서 작가는 상처 난 틈으로 숨을 쉬고, 벌어진 자리로 말할 수 있음을 알아 간다. 독자들은 먼 곳을 돌고 돌아 “갈라진 마음을 항불안제로 메”운 딸과 “금 간 뼈를 공구리로 붙인” 엄마가 물 위에 나란히 누운 수영장 풍경을 떠올리며 “우리는 회복되지 않은 채로 헤엄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게 된다. 회복되지 않은 채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회복할 수 있다는 말보다 더 큰 위로를 주며 누구의 삶도 녹록지 않다는 단순한 진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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