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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얹으며
미래에 꺼내 쓸 빛을 품은 소설 김혼비 4

1부 동지 冬至 11

2부 대한 大寒 57

3부 우수 雨水 101

독자에게 쓰는 편지
겨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135
저자 소개
저자 :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를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무영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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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둠 속을 차근차근 더듬어
미래에 꺼내 쓸 빛을 품고 있는 이야기

작년 늦봄, 엄마는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했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올해 9월에는 급기야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J읍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엄마. 이제 남은 시간은 석 달 정도라니, 그런 엄마를 ‘나’도, 동생 미연도 만류할 수는 없었다. 영상 편집기사인 ‘나’는 작업에서 모두 하차하겠다는 뜻을 회사에 전하고,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엄마를 돌보며 임종을 지킨다.
일사불란하게 장례를 치르고, 소란한 말들과 풍경들이 지나간다. 효녀라고, 요즘 시대에 이런 딸이 어디 있느냐고 누군가 내뱉는 말들은 지나가지 못한다. 발화하지 못한 항변으로 가슴속을 맴돈다. 엄마를 간호한 시간은 고작 두 달이고 그마저도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근심하느라 “엄마가 직면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자꾸만 잊었다”고, 실은 “엄마를 회피한 날이 더, 더 많았다”고. 그리고 ‘나’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 엄마 집에 남기로 결심한다.

모든 건 잊힌다고,
세상에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밤,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달콤하고 긴 잠을 잤다

엄마는 자신의 골분을 납골당이 아니라 집 마당에 묻어달라고 말해왔다.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되면 좋겠다고, “이 세상엔 두 딸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면서. 하지만 묘비도 관도 없이 엄마의 골분 전부를 마당에 묻을 수 없었던 ‘나’는 일부는 엄마 뜻대로 마당에 묻되, 나머지는 동생과 나누어 각자의 공간에 두기로 한다. 미연이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서울로 돌아가자 이제 ‘나’는 홀로 남게 되고,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털신을 신는다. 거기에 더해 엄마가 쓰던 비누와 로션을 바르고, 엄마가 생전에 운영하던 식당의 문을 열어 칼국수를 만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엄마에게 보호받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J시의 적요한 안개와 새들의 울음소리,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아직은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그리고 그 힘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얻는다.
주인공에게는 엄마를 잃은 제 몫의 슬픔을 나눠 갖는 동생 미연이 있었다. 조심스레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 목공소 남자 영준도 만났다. 절망에만 웅크려 있지 않게 하라고, 엄마의 유언이라도 받은 듯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끄는 강아지 정미도 내내 곁을 지켰다. 엄마와 친분을 쌓았던 미용실 혜란 아주머니와 살뜰히 챙겨주었던 이웃 노파가, 엄마의 칼국수를 찾는 외지 손님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정성을 다해 따듯한 음식을 내어준다. 마치 엄마의 삶을 차지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천천히 복기하듯이. 엄마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만큼 더 선명해지는 엄마의 흔적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다는 걸 느끼며. 엄마를 중심으로 한 애도의 마음들은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아픔을 돌보려는 마음들로, 부드러운 온기를 품고 겹쳐 있었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

칼국수처럼 “담백한 포만감”으로 채워져가는 엄마의 ‘빈집’은 이제 곤충의 탈각과도 같이 허물을 벗는 공간, 주인공이 용기를 내어 또 다른 세상 밖으로 걸음을 내딛게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와의 작별을 마주할 “마음의 근육과 뼈가 만들어질 만큼의 시간”이. 혹독한 추위를 견딘 후 “살아 있고, 살아갈 것임을 알리는” 여린 싹의 출현처럼, ‘나’는 “닫혀가는 겨울과 열리는 봄의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쉼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 책 말미의 독자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겨울은 통로”라면서,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통로 끝은 어둡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눈과 얼음이 녹아 다시 비로 내리고, 비가 내린 땅 위에 싹이 틔고 꽃이 피어오르듯, 세상은 순환과 반복을 거듭할 것이기에. 조해진이 마련해둔 상실과 애도의 계절을 함께 지나가며, 우리는 또 그렇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소설을 읽어주어 고맙고
이런 시대에 여전히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다는 게 미안합니다.
한 가지, 기억해주시겠어요?
겨울은 누구에게나 오고,
기필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_조해진(「겨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중에서)

▶ 추천사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젠가 크게 발을 헛디뎌 무너져 내렸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비축해두는 일이고,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불쑥 나타난 타인 앞에 잠시 멈춰 그가 나쁜 건지 아픈 건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숨을 준비해두는 일이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두는 일이다.
『겨울을 지나가다』를 읽으면서는 이미 아프게 겪었던 죽음들을 다시 제대로 애도할 기회를 갖는 동시에, 언젠가 이런 커다란 상실을 마주했을 때, 시간을 들여 요리한 칼국수를 맛보고 씹고 삼키는 행위에만 온전히 몰두하며 추상적인 고통이 마음에 그어놓은 어지러운 선들을 지워내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삶을 채워가기 시작했던 정연을 떠올리며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쌓아둔다.
_김혼비(에세이스트)

사랑은 허름하고 이별은 거대합니다. 이를 깨닫는 순간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세상 가장 연하고 짧은 것들만이 영원을 부른다는 것. 내가 너의 마음을 넘었듯이 상대도 나의 마음을 넘어왔다는 것. 별 기대 없이 돌보던 것들이 실은 나를 보살펴주고 있었다는 것. 이토록 작은 사실들을 그러쥐고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다시 허름한 사랑을 시작합니다.
_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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