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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의 제국 20년 후 6
서문 - 새로운 언어로 사건을 말하다 1 8

1부 진실의 반전
1장 이중의 계보 ··························· 53
논란의 의의 | 트라우마의 탄생 | 노동법

2장 오랜 추적 · ···························· 76
겁쟁이냐 죽음이냐 | 잔혹한 치료법 | 전쟁이 끝난 후 | 프랑스의 역사

3장 모두 고백하라, 내밀한 것까지 · ············102
전쟁정신분석 | 돈벌이 신경증 | ‘전쟁영웅’의 진실 |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4장 의심의 시대는 끝났는가 ··················131
여성운동, 아동보호운동, 따로 또 같이 | 비정상적인 사건을 원인으로 봉헌하다
마지막 증인, 전쟁범죄 가해자 | 베이비킬러도 휴머니티를 가지고 있다!

2부 배상의 정치
5장 피해정신의학 · ·························174
피해자 권리운동 | 프랑스 정신의학계의 무관심 | 피해학, 태생적 모호함
피해학은 독립된 분야인가

6장 툴루즈 ································203
모든 일이 트라우마로 귀결되다 | 응급심리지원은 꼭 필요한가
불평등과 배제 | 위로와 보상

3부 증언의 정치
7장 인도주의 정신의학 · ·····················255
하나의 기원, 두 개의 설명 | 시작은 정신의학이 아니라 인도주의였다
전쟁의 경계선에서 | 인도주의 실천의 선구자들

8장 팔레스타인 · ···························293
증언의 필요성 | 고통의 연대기 | 팔레스타인인이든 이스라엘인이든 피해자는 피해자이다
역사성 없는 역사들

4부 입증의 정치
9장 추방자의 심리외상학 · ···················347
이민자의 위치, 원주민과 외국인 사이 | 수용소의 진료관행
패러다임의 변화 | 몸이 보여주는 증거

10장 난민 ·································383
난민 | 트라우마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 진단서는 진실을 말하는가
언어의 무게에 관하여

결론 - 트라우마의 도덕경제 421
옮긴이의 말 437
참고문헌 449
찾아보기: 인명 및 지명 469
찾아보기: 주제 47
저자 소개
저자 : 디디에 파생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내과의사. 파리13대학교 교수이자 사회과학고등연구원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 겸직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인도주의적 이성》(2010),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경계들》(2010), 《사회적 질문에서 급진적 질문까지》(2007), 《몸이 기억할 때》(2006), 《몸의 통치》(2004),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들》(2004) 등이 있다.

저자 : 리샤르 레스만
프랑스 정신과의사이자 인류학자. 마르셀 리비에르 연구소Institut Marcel Riviere 의료국장이다. 디디에 파생과 함께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생양: 트라우마, 인도주의 정신의학, 그리고 인간의 권리》(2002)가 있다.

역자 : 최보문
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옮긴 책으로 《정신의학의 역사》(제28회 과학기술도서상 번역 부문 수상), 《트라우마의 제국》 《나의 죽음은 나의 것》 《문화, 건강과 질병》 《더러운 손의 의사들》 《미치광이 여행자》《영혼 다시 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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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트라우마는 어떻게 고통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나
오늘날 테러 현장에서 정신과의사를 보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자연재해 전쟁, 사고 등의 사건현장에서 그들이 피해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여겨지고 있으나 과거에도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정신적 트라우마라는 개념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나타났고, 오랫동안 의심의 시선을 받아왔다. 《트라우마의 제국》은 피해자가 어떻게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존중받게 되었는지, 또 트라우마가 어떻게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도덕적 범주가 되었는지를 짚는 책이다.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과 리샤르 레스만(Richard Rechtman)은 두 가지 계보를 따라 전 세계의 다양한 예시를 제시하며 트라우마 개념을 면밀히 살핀다. 하나는 정신분석을 거쳐 정신의학에서 트라우마를 정의해나간 지식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를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사회적 계보이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입증하는 개념으로 대두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누가 드러나고 누가 은폐되었는가? 피해자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가? 트라우마는 그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하는가?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트라우마로 재난과 고통을 말할 때 그 결과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귀결되는지, 이때 문제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짚으며 트라우마의 현대적 정치성과 피해자 의식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트라우마를 치유하거나 그것에서 해방하자고 말하는 대중서적과 교과서적인 정신의학 이론서, 그도 아니면 트라우마의 타당성에 대한 비판 일색의 소수의 책 사이에서 이 책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시대적 구성물인 트라우마의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귀중한 업적이다.

정신적 고통은 어떻게 정치화되는가
트라우마라는 질병의 정치학
2014년 4월 6일,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는 장면을 본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무능력한 해경과 지휘체계, 비윤리적인 선원을 비난함과 동시에 피해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했다. 정부에서는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마련하여 피해자들에게 심리적 지원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과적 진단은 공식 대표만이 말할 자격을 지닌 듯해 보였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트라우마’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이후 정치적 이념이 덧씌워지면서 문제는 처음의 애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피해자 개개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정치 구호만 남은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함께 울고 걱정하며 어린 싹들을 위한 새 질서와 안전한 ‘우리나라’의 재건을 기대하던 대중은 왜 극심한 피로를 느끼게 되었을까?

이 과정은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사고 당시와 흡사하다. 사고 직후 국가는 테러범을 추적하는 한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의료적, 물질적, 법적 혜택을 제공했다. 국가는 ‘트라우마’라는 말로 피해자들의 정신 상태를 규정짓고, 치유자를 자처했다. 피해자는 규격화된 ‘치료받을 환자’가 되었고, 피해자들을 애도하는 사람들 역시 보편적이고 단일한 ‘병적 정신상태’로 규정되었다. 미국은 한동안 ‘트라우마의 나라’가 된 듯했다. 테러를 가한 절대악과 피해를 입은 선한 시민이라는 구도로 사건이 재편되었고, 세상은 전쟁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두 사건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까닭은 트라우마의 제국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트라우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선과 악의 구도를 세운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앓게 된 사람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이 질서에 따른다. 무엇을 내세우고 무엇을 숨길지,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고 어떤 정체성을 포기할지 결정한다. 이때 개인의 개별성은 트라우마의 기표에 가려진다. 이 책의 제목은 이렇게 고통의 세계를 독점하고 점차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트라우마의 특성을 의미심장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무엇이 드러나고 무엇이 은폐되었는가
트라우마,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진단명이 ‘발명’된 이후, 피해자는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지위를 보장받게 되었다. PTSD라고 진단받음으로써 정부나 보험회사 측에 보상을 요청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위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 전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자들은 ‘보상금이나 노리는 꾀병 환자’ 혹은 ‘사기꾼’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그들의 고통은 대중에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겁쟁이로,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무의식적 자기애 환자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던 환자들은 홀로코스트와 베트남 전쟁 패전을 계기로 PTSD 환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PTSD가 공식적으로 처음 DSM-III에 등재된 1980년 직후만 해도 학계에서는 이 개념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과연 이 증상이 실재하는지 여부, 누구에게까지 이 진단을 내려야 하는지 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영화 <배트맨>을 보고 난 이후 방에 혼자 있기를 무서워하게 된 어린 아이에게까지 이 진단명을 내려야 하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9.11 사건을 기점으로 트라우마는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일상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이 개념이 알려졌고, 세월호 침몰사고를 기점으로 일상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들의 비판적 분석에 따르면, PTSD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트라우마는 경험의 본질을 말소시킨다. 일어난 사건과 경험한 사건 사이를 일련의 증상으로 연결 지음으로써 경험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은폐해버린다. 툴루즈 폭발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 팔레스타인 폭격으로 집이 파괴된 사람, 혹은 다른 어떤 사건을 겪은 사람이든 그 경험은 그 사건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은 생생한 삶의 순간에 다양한 의미를 지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들에 의해 ‘피해자’라고 규정되고 나면 이 표식에 최대한 자신을 맞춘다.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부여한 질서 속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이런 인증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

트라우마는 객관적이고 정치와는 무관해 보이는 그저 하나의 진단명처럼 보이지만, 트라우마는 사실상 피해자를 ‘선택’한다. 누군가는 선택되고 누군가는 배제된다. 고문과 박해 피해자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단체는 국적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대하고자 하나, 고문 가해자와 공범자들이 망명을 원할 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 환자가 팔레스타인 사람인지 이스라엘 사람인지에 따라 단체의 성향에 따라 피해자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또 파키스탄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보다 태국에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국제적 지원활동이 더 활발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태국에는 서구 여행객이 있었던 반면, 파키스탄 지진현장에는 서구인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처럼 피해자와의 거리감, 피해자의 정치색 등에 따라 트라우마는 ‘선한’ 피해자와 ‘악한’ 피해자를 재발명하고, 피해자들 사이에 합법성의 순위를 매긴다.

또 트라우마는 너무 많은 대상을 포괄한다는 특징이 있다. 사고 피해 당사자는 물론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 대중매체를 통해 현장의 모습을 본 사람까지 모두 특정 증상을 보이면 PTSD 진단명을 받을 수 있다. 쓰나미나 지진 등 자연재해 피해자는 물론, 성폭행 피해자, 전쟁 피해자까지 정신적 고통은 하나의 진단명으로 통하는 셈이다. 심지어 전쟁범죄자가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라 주장해도 PTSD를 진단받을 수 있다. 저자들은 묻는다. 이들을 하나의 진단명 아래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과학자로서 직무유기는 아닌가?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정치화를 위하여
그럼에도 트라우마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트라우마가 개인과 집단 사이를 미묘하게 구별하여 개인에게는 통제를, 집단에게는 응집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경제적 권리를 보장받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의심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테러가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에게 보상이 보장되므로 집단 전체가 위로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 개념은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분열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거의 보이지 않게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다. 저자들은 현대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문제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를 연구했다. 1995년 파리 테러공격과 2001년 툴루즈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정신의학이 활용된 방식, 제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에 인도주의 정신의학이 관여한 방식, 박해와 고문을 피해 망명처를 구하는 난민에게 추방자의 심리외상학이 적용되는 방식을 조사했다.

이를 통해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인증해주는지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피해자가 소외된 현재의 트라우마의 정치성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정치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 그것이 외상 후 성장과 화해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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