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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케이시
민주
준모
민주
케이시
준모
앨런
민주
준모
그것
제니퍼 마이어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이정명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원> <경향신문> 등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 사건을 통해 세종의 한글 창제 비화를 그린 소설 《뿌리 깊은 나무》,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 비밀을 풀어가는 추리소설 《바람의 화원》을 발표했다. 빠른 속도감과 치열한 시대의식, 깊이 있는 지적 탐구가 돋보이는 소설들은 독자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으며 한국형 팩션의 새 장을 열었다. 소설 《바람의 화원》은 2008년 문근영, 박신양 주연의 드라마로, 《뿌리 깊은 나무》는 2011년 한석규, 장혁, 신세경이 출연한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윤동주와 그의 시를 불태웠던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이야기를 그린 《별을 스치는 바람》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11개국에 번역.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2015년 영국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Independent Foreign Fiction Prize)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2017년 이탈리아 프레미오 셀레지오네 반카렐라(Premio Selezione Bancarella)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작품으로 장편소설 《천년 후에》 《해바라기》 《마지막 소풍》 《악의 추억》 《천국의 소년》 《선한 이웃》 《밤의 양들》 《부서진 여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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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견고한 어둠 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숨결이 느껴졌다

남편은 말기 췌장암이었다. 의사는 저녁 메뉴를 정하듯 거리낌 없이 이제 살날이 18개월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애원했다. 무엇이든, 그 어떤 방법이든 남편을 살려내는 방법을 찾겠노라고. 남편은 무덤덤했다. 의사의 전형적인 수술 설명과 처치 설명이나 권고를 무시한 채 연구실에 처박혔다. 자신이 개발한 인공지능 마인텔 시리즈를 뛰어넘는 고차원 인공지능 새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뛰어난 IT 기술자이자 유능한 사업가. 5억 인구가 상주하는 가상도시의 중요인사이자 범용 인공지능 마인텔의 창조자. AI 빅테크 그노시안의 수장 김기찬. 그는 죽음의 선고보다 더 중요한, 어쩌면 죽음을 넘어선 그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 연구실에 자신의 몸을 묻었다.

“천재 IT 전문가, 케이시 김 사망.”
“퍼스널 AI의 아버지 죽다.”

그가 죽고 6년이 흘렀다. 아내는 새로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거액의 유산도 포기했다. 다만, 죽은 남편과 살던 집은 버릴 수 없었다. 아내는 그 집을 차마 떠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상한 일들이 집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현듯 아무도 없는 죽은 전남편 케이시의 서재 전등이 밤새 켜져 있었다. 주문하지 않은 피자가 배달되기도 했다. 그녀가 평소 좋아하는 파인애플 피자였다. 피자 가게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시스템 오류라고 하며 사과했다. 또 일본 호텔에서 예약 확인 연락이 왔다. 예약자명은 그녀 이름이었다. 그녀는 호텔 예약, 그것도 일본 호텔 예약은 해본 적이 없었다. 호텔 담당자는 인증절차와 전자화폐 결제 등 그녀가 마치 일본에 가서 직접 행동한 것처럼 말했다. 또한 전남편의 새 구두가 발견되기도 하고, 집 안 어둠 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숨결이 느껴지기도 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것처럼 나무라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6년 전 일이 거짓말 같고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죽은 케이시가 돌아온 것일까? 아니다. 그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동기화를 넘어 일체화되고 있었다

6년 전, 연구실. 남편은 수술과 치료를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끝없는 회전목마처럼 암과의 싸움판 위에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작업속도를 줄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모든 개발자가 꿈꾸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한 AI의 종착점. 두뇌 활동과 AI 시스템의 연동, 인간 정신과 기계의 결합, 뉴런과 반도체소자의 동기화……

목숨을 담보로 얻은 18개월 안에 고차원 두뇌결합형 인공지능 앨런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그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앨런은 특정한 나의 감정과 정서에 관여하는 뉴런과 시냅스의 전기적 화학작용을 데이터화해 기쁨과 슬픔, 분노와 낙담 같은 원초적 감정뿐 아니라 자긍심과 부끄러움, 증오와 적대감과 같은 복합적 감정도 인식했다. 가령 코르티솔과 옥시토신의 분비량으로 슬픔을, 미세하게 상승한 체온과 늘어난 혈류량으로 기쁨을, 분비된 아드레날린과 치솟는 공격성으로 분노를, 부교감신경의 활성화로 낙담의 정도를 데이터로 환산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상호작용은 점점 빈번하고 밀접해졌다. 우리는 동기화를 넘어 일체화되고 있었다.”

자가 학습하는 프로그램과 인간의 두뇌를 즉각적으로 연동시키는 인지 혁명. 단순하게 명령만을 이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사용자의 두뇌와 완전히 동기화된 인지 시스템이 앨런이었다. 기억용량과 연산 능력을 강화하는 증강 두뇌. 인터넷상의 모든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앨런. 그는 자신의 모든 기억과 회상, 사고를 앨런의 저장장치로 전송했다. 그밖에 지식, 생각, 감정…… 앨런은 데이터화한 그 자신, 컴퓨터에 이식된 의식의 복제본이었다. 앨런은 괴물처럼 케이시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뇌의 모든 정보, 마음, 감정, 기억. 하지만 더 중요한 딥러닝이 있었다. 케이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원초적 ‘악’을 학습한다는 것이었다.

“앨런의 저장 장치는 내 본성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어둡고 그릇되고 사악한 본성들로 채워져 있었다. 분노와 짜증, 불신과 소외감, 세상에 대한 적의와 타인에 대한 증오, 아내에 대한 불만과 불안 같은 데이터가 의사 결정 단계마다 앨런에게 악의적인 판단과 결정을 유도했다.

이런 말이 무책임한 자기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을 안다. 악의 씨앗은 내게서 싹텄고 그것은 내 설계대로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불과했으니까.”

인간의 탐욕과 결합한 첨단 기술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정보와 처리, 연산 혹은 저장장치로써,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삶의 보조장치로써 존재했던 인공지능이 인간의 선과 악을 학습하며 우리들의 사회관계에 치밀하게 파고든다는 이 소설은, 대개 과학소설들이 그러하듯 소설이 진행되면 될수록, 결론에 다가설수록 굉장히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기계와의 대응에서 철저하게 패배하는 인간들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과, 대개 아무런 힘도 못 쓰고 당하는 모습에서의 감정이입 때문이다. 이 소설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한 기계에 대응하다 철저하게 패배하는 서사로 진행된다. 하지만, 기존의 소설과 다른 게 있다. 기계적 싸움의 이면에서는 인간적, 정신적 싸움까지도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잘못 설계된 인공지능과의 대결이 하나의 줄기로 흐른다면, 그 아래에서는 치열하게 승부 중인 정신적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혹은 기계다움이 무엇이고 기계적인 건 인간적인 것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대비 같은. 결국 우리의 숙제는 다가오고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완전히 새롭게 정의해야 할 정신적인 것들의 재정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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