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우리말을 갈고닦거나 다루거나 가꾸거나 일구는 길을 걸어온 옛어른은 으레 “어려우면 우리말이 아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어려우면 우리말이 아니다”라면 “우리말은 쉽다”란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어른이 어깨동무하면서 쓰기에 ‘우리말’입니다. (5쪽)
마음을 담아내기에 말이고, 이 말을 담아내기에 글입니다. 그런데 글이며 말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살림이며 숨결이며 풀꽃나무이며 들숲바다를 가리키는 이름이니, 글하고 말을 짓는 바탕은 늘 ‘삶’입니다. (12쪽)
‘우리말’이라고 할 적에는 “남이 쓰라고 시키거나 내모는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쓰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 쓸 만하구나 싶어서 맞아들이면 우리말 품으로 담아요. 새살림이나 새길을 밝히는 새말이라고 여기면 기꺼이 받아들여서 ‘우리말’로 삼습니다. (19쪽)
우리가 ‘국민학교’라는 이름에서 ‘국민’을 떼어내기는 했지만, 아직 “국민 여러분”이라든지 “국민 오빠”나 “국민 가수” 같은 데에서 철없이 쓴답니다. 앞으로는 이런 슬프고 아픈 말씨를 씻어낼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우리로서는 ‘우리말’이라 하면 되고, ‘한겨레말’이라 할 수 있고, ‘한글’하고 짝을 맺어 ‘한말’처럼 새 이름을 지을 수 있어요. (26쪽)
삶·살림이 다르기에 저마다 다르게 말글을 쓴다는 대목을 조금 더 헤아려 보기를 바라요. 우리말 ‘벙어리·귀머거리·장님’은 낮춤말로 여기면서 한자말 ‘농인·청각장애인·시각장애인’은 낮춤말이 아니라고 여겨 버릇합니다만, 왜 우리말만 낮춤말로 여겨야 할까요? 뜻이 같아도 우리말로 나타낼 적에는 왜 낮춤말로 삼으려고 할까요? (35쪽)
남한테 기대지 않고서 스스로 삶을 헤아려서 가꾸기에 사투리가 태어납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보다는, 손수 살림을 짓고 스스로 할 일을 스스로 생각해서 펴기에 사투리가 자라나요. (40쪽)
한글날도 한글하고 마찬가지로 퍽 오래도록 짓눌려야 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우리글을 마음껏 배워서 생각을 담아낼 수 있어요. 우리글을 기리는 자리도 즐겁고 넉넉히 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생각·뜻·삶·살림·사랑을 한글이라는 그릇에 알뜰살뜰 담아서 서로 아름다이 나누는 글빛을 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글 이름을 새롭게 ‘한글’로 붙인 주시경 님은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61쪽)
총칼에 눌려 일본말을 배운 사람도 많고, 돈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일본말을 배운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를 거스르고서 조용히 흙살림을 지으면서 우리말을 지킨 사람도 많았기에 우리말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65쪽)
영어나 일본말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웃나라가 쓰는 말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슬기롭게 짓고 가꾸며 북돋울 우리말이 있어요. 이 우리말을 우리 나름대로 빛내고 밝히면서 넉넉히 나누는 새길을 차근차근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른이 가꾸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소매를 걷어붙이기로 해요. 차근차근 즐겁게 씩씩하게 한 걸음씩 내딛어 봐요. (69쪽)
우리글에 ‘한글’이란 이름을 붙인 분인 주시경 님은 스스로 ‘한힌샘’이라는 글이름을 지어서 쓰기도 했습니다. “한 + 힌(흰) + 샘(샘물)”인 얼개입니다. 우리 글이름을 ‘한글’로 지었듯, 이 한글을 널리 펴는 징검다리 노릇을 “하나이고 크며 하늘이자 해 같은, 하얗고 맑고 밝은 마음으로, 샘물처럼 싱그럽고 줄기차게 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글이름이라 할 만합니다. (72쪽)
낱말책은 외워야 하지 않습니다. 낱말책을 읽으면서 ‘생각·삶·이야기를 단출하고 가볍게 엮어서 이름을 붙이는 길’을 헤아릴 만합니다. 낱말책은 우리가 ‘바르거나 옳게 쓰는 틀을 가르치는 책’은 아닙니다. 낱말책을 펴면서 ‘생각을 말로 어떻게 펴는가 하는 실마리나 수수께끼를 찾는다’고 하겠습니다. (86쪽)
우리말이란 우리 삶을 담아내고 우리 살림을 그리니, 우리말을 쓸 적에는 우리가 스스로 삶·살림을 가꾸는 길을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얘기입니다. 중국말·일본말인 한자말을 쓰기에 나쁘거나 잘못이지 않습니다. 그저 한자말을 쓰면 쓸수록 우리 삶·살림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손길로 가꾸거나 짓는 길하고는 멀어질 뿐입니다. (99쪽)
말을 잇기에 ‘이야기’랍니다. 텃말은 우리가 먼먼 옛날부터 살고 살림하고 사랑한 자취를 돌아보면서 헤아리도록 살그머니 수수께끼처럼 이끄는 말이면서 이야기를 북돋우는 빛살이기도 합니다. (109쪽)
높임말이란 먼저 우리 스스로 높이면서 우리를 둘러싼 이웃이며 다른 사람을 높여 줍니다. 막말이란 먼저 우리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아먹으면서 우리를 둘러싼 이웃하고 다른 사람도 깎아내리거나 갉아먹는 길로 가요. 나이 많은 사람 앞이라서 높임말을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착한 마음이 되어 착한빛을 둘레에 퍼뜨리는 실마리 가운데 하나인 높임말입니다. (144쪽)
살림말을 혀에 얹으면서 쓰기에 스스로 살림을 가꿉니다. 숲말을 마음에 담으면서 나누기에 스스로 숲으로 피어나며 싱그럽습니다. 꽃말을 고이 돌아보며 펴기에 스스로 곱게 피어납니다. 사랑말을 생각하고 그리기에 반짝이는 별과 함께 사랑하는 길을 엽니다. (1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