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내 안의 진정한 소리를 만나는 순간”
처음 판소리를 만났을 때, 저는 그저 하나의 오래된 노래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잊혀지기를 수년, 어느새 지치고 힘들어 그저 힘없이 앉아 있던 저에게 방 한 켠에서 다시 만난 그 소리는 그 무엇보다도 생생했고, 숨 쉬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치 먼 옛날, 누군가가 남겨놓은 편지를 열어보듯, 한 대목 한 대목을 따라가며 저는 우리의 이야기,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나의 감정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구석 판소리》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되찾기 위한 여정의 기록입니다.
심청의 바다에서 우리는 헌신과 기적의 깊이를 알았고, 박 씨네 집에서는 희망이 다시 피어나는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달 아래 춘향과 이몽룡의 맹세는 우리 마음속 설렘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수궁 깊은 곳에서는 꾀와 용기가 만들어내는 교향곡에 숨을 죽였습니다. 운명의 강가에서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시간과 불꽃처럼 타오른 사랑을 마주했죠.
그리고 그 너머로―옹고집의 변화, 장끼의 희생, 강쇠의 비극, 숙영의 사랑―이 모든 이야기는 단지 전설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도솔가의 하늘, 서동요의 지혜, 헌화가의 꽃, 처용의 용서, 이생규장전의 영혼, 옥단춘의 전설, 금방울전의 희생, 정수정의 운명… 그 이름 하나하나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듯 느껴지지 않았나요?
이 책은 단지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감정, 이야기, 그리고 정서를 다시 깨우는 일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나'를 되찾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지금, 어쩌면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가 마음 속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리’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이자, 나의 목소리이며, 우리 모두의 서사입니다.
판소리는 이제 더 이상 먼 옛날의 유산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것을 듣는 순간, 그 소리는 당신의 서사와 함께 현재가 되고, 살아 숨 쉬는 오늘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 방구석이라는 작은 무대를 떠나, 삶이라는 더 넓은 무대 위로 걸어가 보세요. 판소리는 언제나 그 길 위에 함께 걸을 것입니다.
책 속에서
1-1
심청의 바다:
헌신과 기적의 오페라
심청가
한 발만 더 내디디면 허공입니다. 집요하게 출렁이는 거대 한 파도 위에서 배 한 척이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배 위에 열다섯 살 소녀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습니다. 소녀는 떨 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에 빠지면 그 이후의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심 청은 그렇게 한 발자국, 눈을 감고 천천히 발을 움직입니다.
이 모든 비극은 심봉사, 즉 심학규의 삶으로부터 비롯됩니 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를 사람들은 심봉사라고 불렀습니다. 심봉사는 어여쁜 아내 곽씨 부인과 그녀의 뱃속에 있는 곧 태 어날 아이와 함께 사랑으로 가득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급작스럽기 마련이지요. 아이를 가진 몸으로 과로를 한 아내는 그만 출산 중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도 건강하게 태어난 심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는 젖동냥으로 무럭무럭 자라나지요. 그렇게 자 라 열다섯 살이 된 심청은 도청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죽은 어 머니를 닮은 미색은 어떠하고, 지금 홀로 남은 눈먼 아버지를 모시는 효심은 또 어떠한지요. 그런 가설항담을 들은 승상 부 인은 심청을 불러 양딸로 들어올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심 청은 홀로 남게 될 아버지가 걱정되어 수차례 거절을 하고, 승 상 부인은 그 효심을 높이 사 모녀의 의를 맺게 되지요.
심청이 승상 부인을 만나고 있을 때, 심봉사는 걱정이 되 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청이 어딜 간단 말도 없이 사라진 지 한 시진이나 지났기 때문입니다. 동네로 오는 길목 에서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딸을 기다리던 심봉사는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맙니다. 깜짝 놀란 심봉사를 순간적으로 덮치는 건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입니다. 사람 살려! 소리치는 심봉사에 게 어느 순간 갑자기 딱딱한 나뭇가지가 와 닿습니다. “이것을 잡으시오!” 심봉사가 물을 꼴깍꼴깍 마시며 기다시피 나뭇가 지를 잡고 나오자, 부드러운 사람의 손이 심봉사를 토닥입니 다. “몽은사 화주승입니다. 지나는 길에 당신이 물에 빠진 것 을 보고 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