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대를 초월한 베토벤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와 루소, 바흐는 베토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베토벤은 괴테, 나폴레옹, 헤겔과 같은 동시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리하르트 바그너와 글렌 굴드, 올더스 헉슬리에게 베토벤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이런 수용의 관계망을 탐색하면서 베토벤 음악의 풍부함에 한 획을 그은 발상과 동기를 찾아 나선다. 그것은 베토벤 음악이 지닌 역동성의 한 정점을 이루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를 베토벤 음악의 권위를 내세우는 전문가이기보다는 독특한 견해와 다양한 작품으로 베토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목소리로 이루어진 합창단의 한 일원으로서 베토벤에 대해 써야 할 시간이 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토벤 음악을 둘러싼 수용의 관계망들은 베토벤하면 회자되는 열두 개의 주제로 엮였다. 이를테면 교향곡 3번은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한 곡이었다는 담론을 두고는 베토벤 음악의 충실한 제사장이었던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토벤 해석에 신선한 시각을 던진 ‘베토벤 패러다임’의 리디아 고어로 이어지는 흐름을 잡아 “거인주의”로 묶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베토벤 음악에서 ‘그들 나름대로’ 무엇을 들었는지 염두에 두고 듣는다면 베토벤을 듣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의 흐름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베토벤’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유산 ‘담론’
“거인주의”가 조금 낯설다면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 ‘불멸의 연인’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 불멸의 연인 다음으로 유명한 조카 카를 판 베토벤과 함께 신학자 요한 미하엘 자일러를 이야기한다. 언뜻 이상한 조합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베토벤은 삶의 위기에서 요한 미하엘 자일러 같은 현인들의 교훈을 찾았다. 이런 현인들은 베토벤에게 위로가 되었고 신앙심을 북돋아 주었다. 베토벤은 이 현인에게서 조카 카를과 ‘불멸의 연인’에 대한 행동 지침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관한 저자의 사려 깊은 설명과 함께 이야기된다.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과 풍부한 담론들은 베토벤 음악이 낳은 또 다른 유산이라 하겠다.
탄생 250주년, 베토벤은 오늘도 새로 태어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관을 맺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 작품도 시대적 특성과 관련 있다. 베토벤이 활동한 19세기 초부터 예술적 주체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한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술적 주체는 경험적 주체와 떼려야 뗄 수 없지만 우리가 위대한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서로 연관시킨다고 해서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단지 작품과의 소통이 조금 수월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이 책은 베토벤 전기나 평전과 방향을 달리하면서 읽는 우리들에게 베토벤 음악과의 소통을 좀 더 수월하게 해주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삶의 운명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음악 작품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 안의 어떤 사회적 특성 때문에 베토벤 음악에 심취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사람들 자신만의 베토벤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이 해를 목전에 두고 이 책의 저자 마르틴 게크가 작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울림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