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수년간의 취재 끝에 집대성한 박종인표 역사 전쟁 ‘결정판’!
박종인은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내린 ‘가짜 역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3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땅의 역사 1~7≫, ≪대한민국 징비록≫, ≪매국노 고종≫, ≪광화문 괴담≫ 등을 통해 끈질기게 역사의 진실을 밝혀왔다.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에서는 한국사 중 가장 은폐가 심한 ‘근대사’를 양지로 끌어올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100개의 결정적 장면을 다룬다. 왜 500년 조선은 근대화 대열에서 낙오되어 하루아침에 멸망했을까? 이 책은 조선을 감싸는 미화된 괴담부터 조작과 날조까지 진실이 돼버린 ‘거짓’을 광범위한 사료와 취재, 철저한 고증을 통해 파헤친다. 한 장면 한 장면 펼치다 보면 이제껏 철석같이 믿어왔던 역사가 뿌리부터 부정당한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직시하는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제는 잘못 쓰인 역사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다.
우리가 아는 근대사는 가짜다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되었다. 1권 ‘몰락의 시대’는 영정조 시대부터 고종-민씨 시대까지 근대를 향해 돌진하는 세계 속에서 조선이 그 근대에 대처했던 구체적인 장면을 모았다. 정조의 사상 검열에 충격받아 죽고만 ‘책 바보’ 이덕무, 인재가 사라진 이유를 ‘소금으로 만든 산’ 때문이라며 그 소금산을 찾아내라고 억지 부리는 정조, 배 속 아이까지 패키지로 팔려나가는 노비들, 갓 쓴 조선 노인 그림을 보고 껄껄 웃는 나폴레옹, 시아버지 대원군 귀국길에 역적 시신을 토막 내 뿌려버린 민비…. 2권 ‘반동의 시대’에서는 개혁 시대(동학과 갑오개혁)부터 식민과 해방까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철수하겠다는 일본군을 “너희가 가면 나라가 망한다”며 부여잡은 고종, 러시아 차르에게 스스로 보호국이 되겠다고 애원한 또 그 고종, 개혁을 꿈꾼 젊은 인사들의 끔찍한 최후, 상고물 화물선을 군함이랍시고 수입해 망신당한 대한제국 정부, 그리고 나라를 천황에게 헌납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재산과 신분을 식민시대 내내 향유했던 전주 이씨 왕족들까지. 포장을 벗기고 날것 그대로 펼쳐지는 장면들은 소름 끼칠 만큼 잔인하고 때로는 질식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제 후퇴와 몰락, 혼돈과 해방을 숨 가쁘게 이어온 근대사의 큰 그림을 ≪사라진 근대사 100장면≫과 함께 완성해 보자.
책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될 놈은 안된다. 미안하지만 세상은 그렇다. 착한 사람이 항상 잘산다면 왜 도덕을 배우는가. 잘사는 놈들 가운데 나쁜 놈들이 부지기수니까 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친다. 하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나쁜 놈은 줄어들지 않고 착한 사람은 대개 손해를 본다. 반복하지만, 미안하게도 세상은 그렇다.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은 지성이다. 지성이 시대를 만든다. ‘지성이면 감천’ 할 때 그 지성至誠이 아니라 ‘지성知性’이다. 지식과 이성이다. 정성을 다한다고 하늘이 감동하지 않는다. 머리를 써서 문제 해결에 성공해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하늘이 감동한다. 지성至誠이 아니라 지성知性이 하늘을 감동시킨다. 이 말이 중요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에는 도덕률적인 기대가 숨어 있다. 무능력해도 착하게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니 성공해야 한다는 비과학적인 명제다. 세상에, 착한 나라가 승리하던 그런 역사를 본 적이 있는가.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바로 그 희망적 역사관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 역사는 도덕과 상관없다.
- 「서문」 중에서
뉴턴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유럽에 불씨를 던진 과학혁명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과학혁명에는 이성이라는 근대정신이 엔진으로 작용했습니다. 1687년 〈프린키피아Principia〉라는 논문을 통해 뉴턴이 발표한 중력, 즉 만유인력의 법칙은 이후 유럽인들이 산업혁명을 이뤄내는 데 큰 공헌을 합니다. 뉴턴은 영조가 3대 국정지표를 발표하고 4개월이 지난 1726년 3월 20일 죽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함께 뉴턴이 발견한 법칙이 또 있습니다. ‘3대 운동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모든 기계와 과학도구는 이 세 가지 자연법칙을 이용해 만들어진 생활용품들입니다. 여기에는 도덕이나 철학이나 윤리 같은 형이상학적인 율법이 끼어들 구멍이 없습니다. 깡패도 자동차를 타고 신부, 목사, 스님도 자동차를 탑니다. 법칙과 자연과 기계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습니다.
- 1장. 「영정조 시대」 중에서
고종은 풍양 조씨 대왕대비와 세도가문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선택된 왕족입니다. 제왕 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철종이 죽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다 죽었을 사내지요. 그런 소년이 구체제 대파멸의 시대, 천하가 붕괴되던 시점에 왕이 됐습니다. (…)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사람들은 ‘냉혹한 근대’를 목격한 근대인들이었습니다. 흔히 이들을 유신지사維新志士라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입니다. 고종의 시대를 맞아 이제 조선은 일본 아니 세계와 본격적으로 충돌합니다. 이 책에 일관되게 말씀드렸던 ‘교류’와 ‘지성’이 이제 근대를 만납니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정체가 발각되고 다윈에 의해 합리화된 이 근대를 조선은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조선에는 근대인이 없었습니다. 일본을 개조했던 유신지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근대가 왔습니다. 이 뒤쪽 몇 장면은 고종 등극 초기 10년 동안 그 근대에 대처했던 한 사내 이야기입니다. 조선을 개조하려다 실패한 사내 이하응, 바로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야기입니다.
- 2장. 「대원군 시대」 중에서
모든 실패한 혁명은 역모가 되고 주동자는 역적이 됩니다.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은 거리에서 살해되거나 망명합니다. 가족도 자살하거나 처형됩니다. (…) 9월 24일 고종은 무악재에 있는 모화관에서 황제를 대리한 이들에게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병인양요는 그저 서양 오랑캐가 벌인 ‘소동’, 양요洋擾일 뿐. 그 사대事大에 반발해 엘리트들이 일으킨 사건이 갑신정변입니다. 정변은 실패했고 사대는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가족까지 연좌돼 처형되고 이름마저 청산당하는 참극으로 끝나버렸지요.
- 3장. 「고종-민씨 시대」 중에서
1권 처음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장면들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근대라는 시대를 두고 세계와 조선이 걸어간 방향이 많이 달랐다는 사실입니다. 지성과 교류를 통해 근대를 맞이한 공동체들이 있었고 지성과 교류를 거부하고 근대를 거부한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조선은 대개 근대를 거부한 쪽입니다. 그런데 1894년을 맞아 조선에서 근대가 폭발합니다. 분노를 참고 있던 농민이 죽창을 들고, 왕실에 고개를 숙이던 관료들이 전제왕권을 제한하겠다고 고함을 지릅니다. 아무리 일본이 무력으로 강요한 근대라고 해도,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뒤를 돌아보면 보입니다. 서원 철폐(1871), 종두법(1879), 갑신정변(1884), 동학(1894).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숨죽이며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 왔습니다. 정신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그때마다 근대를 찾는 사람들이 누적되면서 마침내 1894년이라는 거대한 변혁의 시간을 맞게 된 거지요.
- 4장. 「개혁 시대」 중에서
1894년 동학 발생 직후 조병갑은 물론 제1타깃이던 민영준을 비롯해 민형식, 민응식, 민치헌 따위 부패한 민씨들은 모조리 유배형을 받고 서울을 떠났습니다. 목은 달아나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사망선고였지요. 그 귀신들을 고종이 현세로 재소환한 겁니다. 그러고 보니 닷새 전 고종이 ‘제외하라’고 명령한 ‘죄목罪目’에는 이들에게 걸려 있던 ‘백성 재물로 자기 배를 살찌워 원망을 산(聚斂歸怨肥己, 취렴귀원비기)’ 죄가 없습니다. 고종은 자기 주변을 이 귀신들로 채웁니다. 12월 16일 민영준이 궁내부 특진관으로 복귀합니다. 장관급입니다. 이듬해 2월 16일 민병석이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됩니다. 다른 모든 민씨들이 장관급으로 속속 복귀합니다. 1898년 1월 2일 대한제국 법부 민사국장으로 동학 원흉 조병갑이 복귀합니다. 결기 가득한 김홍집이 팔이 천 개라고 해도 저 콘크리트 장벽을 뚫고 원하는 개혁을 할 수 있을까요. 500년 모순을 붕괴시키기에는 저항이 너무도 거셉니다.
- 5장. 「반동의 시대」 중에서
총 한번 쏘지 않고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수용돼버리는 인류 사상 유례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러시아로 미국으로 의지할 국가를 옮겨가며 권력을 유지해 온 지도자, 위기 때마다 일본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제 나라 이권을 떼준 지도자로부터 신하들은 충성심을 거둬들였습니다. 성리학적 도리를 지키던 많은 사람들이 고종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고함을 질렀지만 고종은 귀 또한 닫아버렸습니다. 독립협회가 내놓았던 개혁안들이 거부되고 대한제국은 결정적으로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는 물론 5대조까지 황제로 만들고 통치하는 국가 대신 자기 전주 이씨 가문을 격상시키고 성균관을 부활시키고 주자 후손을 중용하며 나라를 가난한 전 근대로 회귀시키는 모습을 보며 일본은 그물 칠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물을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든 겁니다.
- 6장. 「제국 시대」 중에서
지성과 교류라는 관점에 한정한다면, 대한민국은 아직 근대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효율과 원칙보다는 도덕률과 선악이 사회의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대의명분이 있다면 용서가 되고, 결과가 좋더라도 동기가 불순하다면 비난을 받습니다. 그 어떤 진영도 민족과 민족주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입니다. ‘단일민족’과 ‘배달민족’이라는 신화는 교과서에서 지워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는’을 외치며 삽니다. 저들이 옳더라도 ‘저들이니까’ 틀렸다고 몰려갑니다. 지성을 탄압한 정조를 문예부흥의 군주라고 찬양하고 식민시대를 초래한 이기적 군주 고종을 개명군주라고 찬양하고 허무맹랑한 조선 잔당 북한 김씨네를 자주적 평등주의자라 찬양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틈에 활개를 칩니다.
- 7장. 「식민과 해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