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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이솝우화가 우리에게 묻는 것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어떻게 다른가: 「꼬리 잘린 여우」
고통의 역설: 「노인과 죽음」
합리적 형벌: 「개미에 물린 남자와 헤르메스」
부러움인가 시샘인가: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와 모모스」
지배에 관한 우화: 「말과 당나귀」
지독한 사랑: 「사랑에 빠진 사자와 농부」
인간과 옷: 「도둑과 여관 주인」
빚이란 무엇인가: 「아테나이의 채무자」
재현의 정치: 「함께 길을 간 사람과 사자」
꾀의 영웅: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아름다운 것과 유용한 것: 「샘물가의 사슴과 사자」
현재와 미래: 「어부와 멸치」
믿음을 상실한 세계: 「불가능한 일을 약속한 남자」
자유와 생존: 「야생 당나귀와 집 당나귀」
나르시시즘의 위험: 「키타라 연주자」
면피의 정치학: 「여우와 나무꾼」
갈등 해결법: 「여주인과 하녀들」
자연과 문화: 「늑대와 노파」
환멸의 정치학: 「여우와 고슴도치」
내로남불의 기원: 「두 자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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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김태환
서울대학교에서 법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고 카프카와 소설이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대학교에서 그레마스 기호학에 관한 연구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실제 저자와 가상 저자』(2020), 『우화의 서사학』(2016), 『미로의 구조』(2008), 『문학의 질서』(2007), 『푸른 장미를 찾아서』(200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피로사회』(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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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이솝우화가 촉발한 질문과 해답 >>>

우화는 동물이나 식물, 혹은 사물을 인격화하여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이다. 특히 우화의 대명사인 이솝우화의 풍자는 플롯이 익살맞아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주고, 이솝우화의 교훈은 사건의 결말을 알려주어 독자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준다. 그래서 독자는 이솝우화를 읽으며 즐거움과 유익함을 만날 수 있다. 그게 다일까? 더 있다. 이 책의 저자처럼 곰곰이 꼼꼼히 생각하면 이솝우화가 촉발한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 발견한다. 예컨대, 이 책의 저자는 「꼬리 잘린 여우」 이야기에서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의 차이를 따져보고,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와 모모스」 이야기에서는 ‘부러움’과 ‘시샘’은 어떻게 다른지를 찾아낸다. 또한 저자는 「샘물가의 사슴과 사자」 이야기에서는 ‘아름다움’과 ‘유용함’은 배치되는지를 생각하고, 「야생 당나귀와 집 당나귀」 이야기에서는 ‘자유’와 ‘생존’은 서로를 위협하는 관계인지를 살핀다.

책 속에서

이솝우화에서 내게 각별한 인상을 불러일으킨 것은 깜짝 놀랄 반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야기도 도덕적 원칙을 선명하게 예증해주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어떤 불일치와 모순,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이야기, 그리하여 의문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나의 지식과 세계상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를 의식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우선적으로 나의 마음을 끌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마음에 창(窓)을 내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모스는 ‘왜 인간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가능하게 했고, 사자에게서 달아나다가 아름다운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죽게 된 사슴 이야기는 과연 아름다움과 삶의 필요(유용성)가 상충 관계에 있는 가치인지를 묻게 했다. 질문이 생겼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인식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9~10쪽)

창피함은 일종의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창피함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부끄러움’의 감정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부끄러움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부끄러움의 감정은 나의 부족함, 나의 결함이 타인에게 노출될 때 발생한다. 그런데 나의 부족함이 타인에게 인식되려면, 그 타인이 나에 대해 일정한 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대하는 바가 있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 타인의 실망스러운 눈빛에 나타날 때, 나는 그 시선의 함의를 알아차리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16~17쪽)

그렇다고 해서 이솝우화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큐피드와 죽음」이라는 이야기에서 사랑의 신인 큐피드는 더운 여름날 지친 몸을 이끌고 서늘한 동굴에 찾아들었다가 그만 화살 통을 바닥에 쏟는다. 그런데 그 동굴은 죽음의 거처였고, 큐피드가 쏟아진 화살을 주워 담았을 때 그의 화살 통에는 죽음의 화살들이 섞여 들었다. 반대로 동굴에는 죽음의 화살 사이에 큐피드가 흘린 사랑의 화살이 남겨졌다. 그래서 간혹 사랑에 빠져야 할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죽을 때가 다 된 노인들이 사랑에 빠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68쪽)

인간과 옷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는 창세기 낙원 추방의 신화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의 무구함을 상실하면서 그 타락의 결과로 비로소 옷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는 이와 동시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이 옷의 출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게 된 최초의 징표는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이는 옷이 사후적으로 인간에게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에 속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벌거벗음이라는 관념은 옷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옷이란 것이 존재하기도 전에 옷에 대한 관념을 얻은 것일
까? 아마도 태초의 인간이 이미 신의 옷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창세기의 신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인간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신을 닮은 존재라는 것, 그런데도 신과 달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옷을 입고자 하는 욕망은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신에 더 접근하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86~87쪽)

이솝우화에서 야생의 삶과 인간에게 예속된 삶의 대비는 동물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원예사에게 잡초는 잘 자라고 생기가 있는데, 가꾼 채소는 왜 아무리 물을 주고 돌봐주어도 약하고 잘 시드는지 물었다. 원예사는 놀라운 답을 준다. 대지의 여신에게 잡초는 친자식이고, 인간이 심은 채소는 의붓자식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생명력은 인간의 손길에서 벗어난 야생 속에 있다는 것을 우화는 말하고 있다.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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