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자본주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자본주의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입체적 역사 독법, 지리
이 책은 총 10개 국가(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미국, 중국, 베트남, 한국)를 꼽아 지형ㆍ자원ㆍ기후 등 지리적 측면을 톺아보면서, 분절된 것으로 보이던 역사적 사건들의 연결고리와 흐름을 추적한다. 과거를 추적하다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이 마주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경제를 훑는다고 하면 대부분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15세기 에스파냐를 시작점으로 잡는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초석을 마련한 나라는 사실상 에스파냐이기 때문이다. 15세기 유럽 서쪽의 이베리아반도에 있던 에스파냐는 대륙 동쪽의 무역로가 오스만제국에 가로막히자 서쪽 대양으로 이어지는 신항로 개척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로 삼은 아메리카대륙에서 고품질의 막대한 양의 은이 발굴되었고, 그 은으로 제작한 화폐 페소 데 오초는 오늘날 달러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 덕분에 에스파냐는 16세기 세계 해상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지이자 패권국가로 군림한다. 에스파냐의 항해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잇는 해상무역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이 네트워크를 따라 대륙 간 인력·상품, 자원 등이 더욱 활발하게 이동했으며, 무역에서 페소 데 오초가 통용되면서 본격 세계화 시대가 열린다.
하지만 에스파냐는 해상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고, 왕실과 귀족층의 사치, 잦은 전쟁 등으로 국가재정을 소진하며 16세기 중후반에는 제노바의 은행들로부터 전체 GDP의 60퍼센트에 달하는 빚을 끌어 쓴 끝에 네 번이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결국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획득하고도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몰락한 에스파냐를 대신하며 17세기의 네덜란드가 새로운 해양 대국으로 두각을 드러낸다. 그 성장 배경에도 ‘무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인의 주식이었던 청어 산업으로 큰 부를 마련한 네덜란드는 원양 무역을 통해 더 큰 부를 획득하고자 한다. 문제는 원양 무역은 막대한 초기비용이 드는 데다 위험부담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자본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민간 자본을 출자하는 주식회사가 탄생하고 증권은 부가가치가 높은 교환수단으로 떠오른다. 오늘날 경제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주식회사·증권·보험 등 자본주의 신용의 기틀이 이때 마련된 셈이다. 이때의 경제적 변화를 ‘재정혁명’이라고 한다.
재정혁명의 바람은 섬나라 영국에까지 불어닥쳤고 현금과 현물 중심의 경제는 금융과 신용 중심의 경제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상업자본주의’의 신호탄이었다. 재정혁명으로 재정이 건전한 데다 다른 유럽 국가보다 신용도가 훨씬 높았던 영국은 비교적 적은 이자만 내고 막대한 전비를 빌려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당시 최강국이자 국력 면에서 월등했던 프랑스와의 칠년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현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신용등급이 18세기에도 국력 차이를 뒤집을 만큼 영향력이 컸던 것이다. 한편 칠년전쟁 패배와 무리한 영토 팽창 등이 빚어낸 뿌리 깊은 프랑스의 재정난은 18세기에 불어닥친 소빙하기와 맞물리며 더욱 악화된다. 결국 상업자본주의 발전에 힘입어 경제적 부와 전문 경제 지식을 갖춘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시민혁명, 즉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킨다. 그들은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보장을 법제화했고, 자본주의의 뿌리를 더더욱 공고히 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과 맞물리며 19세기에 경제와 시장의 규모를 대대적으로 키웠고 자본주의는 본격적인 ‘산업자본주의’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이때 자본주의가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가 마련되었다.
이처럼 저자는 산맥·하천·지형·자원·기후·교통·산업·인구·도시 같은 지리 요소를 통해 자본주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서, 기존 역사책을 읽으며 물음표로 가득했던 경제사의 행간을 꼼꼼히 채워준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전 지구적 질서로 자리매김했을까?”
세계를 통합했다가 또 분열시키며 변신을 거듭해 온 자본주의
유럽에서 싹을 틔워낸 자본주의는 대서양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만개한다.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의 지정학적 질서를 이용해 영토 매입과 병합에 성공한 미국은 대서양 동부 13개 주에서 출발해 태평양에 연한 캘리포니아를 손에 넣는 데까지 성공한다. 이로써 태평양과 대서양에 동시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다시피 한 지정학적·경제지리적 이점을 획득한다. 이는 러시아나 중국·인도의 통일왕조, 그리고 영국(대영제국)과 같은 다른 대제국조차도 갖지 못한 미국만의 독보적인 이점이었다. 게다가 당시 부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거대한 미국 국토를 단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통합해 주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지속해서 부설된 대륙횡단철도는 서부와 태평양 연안, 중동부를 경제적으로 통합했다. 또한 파나마운하 건설로 세계의 해운과 해상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지리적 힘을 확실하게 얻은 미국은 북아메리카의 대국 수준을 넘어 자본주의 세계의 새로운 종주국 자리를 확고히 해나간다. 이러한 산업자본주의는 19세기 미국의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지리적으로 세력을 넓혀가며 질적으로도 확장을 꾀하면서 더욱더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경제를 통합하는 듯 보였던 산업자본주의는 크나큰 위기를 마주한다. 우랄산맥을 넘어 러시아로 이식된 자본주의가 시민계급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러시아의 국내 스케일과 맞물리며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져 유럽을 반토막 낸다.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부상한 러시아는 미국과의 힘겨루기로 전 지구를 분열시킨 냉전체제를 가져온다.
한편 독일로 이식된 자본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극심한 초인플레이션과 맞물리며 파시즘으로 치닫는다. 독일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던 제국주의·산업혁명의 후발주자인 이탈리아와 일본 또한 레벤스라움 지정학(국가나 민족의 번영이 인구 부양과 산업 발전에 필요한 지리적 영역인 레벤스라움Lebensraum의 확보 여부와 직결된다는 이론)에 영향을 받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자본주의 세계는 물론 공산국가 소련마저도 완전히 집어삼킬 듯 보였던 파시즘 국가의 연승 행진은 1942년 후반에서 1943년을 기점으로 꺾인다. 이 시기부터 패색이 짙어지더니 1945년 모조리 패망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난다. 이로써 자본주의를 위협하던 파시즘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2부에서는 이처럼 산업자본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변천사를 러시아,독일, 미국의 지정학적·경제적 층위들의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자본주의는 기후위기와 세계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자본주의가 그려낸 새로운 세계지도 읽는 법
승승장구하던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던 사상이나 국가가 아니었다. 첫 번째 위기는 1929년 미국발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으로 GDP의 30~40퍼센트가 증발한 미국 경제는 파탄 났고, 그 여파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미국이 이 지경에 빠지니, 다른 자본주의국가들 역시 또다시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공황이 불거지기 전부터 경제학자들은 이미 산업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이때 탄생한 자본주의가 바로 ‘수정자본주의’다.
수정자본주의 노선을 달리던 자본주의는 1970년대 들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한다. OPEC의 중심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서방 세계를 압박하기 위해 석유 감산을 단행하면서 석유 공급을 교란당한 자본주의 세계는 치명타를 입는다. 석탄을 대신해 새로운 자원으로 떠오른 석유를 통해 외적으로 팽창해 가던 자본주의 세계는 자원전쟁으로 치명타를 얻어맞고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좌초할 위기에 처한다. 이에 서방 경제학계에서는 자본주의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경제질서로 자리 잡는다.
1990년대에는 소련 몰락과 사회주의권 붕괴로 미국 주도의 단극 패권 구도로 나아가는 양상 속에서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장악하면서, 사회주의를 채택한 중국과 베트남조차 경제구조를 자본주의적으로 개혁하며 신자유주의 물결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자본주의국가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장으로 변모한다. 이른바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후진국으로 이전되고 선진국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고부가가치산업만을 담당하는 형태로 경제 분업 구조, 즉 신국제분업 질서가 마련된 것이다. 3부에서는 이처럼 신국제분업의 파트너로 주요한 역할을 한 국가들, 즉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베트남의 도이머이 정책, 한국의 토건주의 같은 지리적 프레임으로 자본주의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선진국들이 성장만을 추구하면서 자연환경을 훼손했고,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재앙을 불러왔다. 문제는 이러한 재앙이 이제 막 발전을 꾀하는 나라들을 덮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이 아프리카 등지 저소득국가에 유독성 폐기물을 헐값에 투기함으로써, 가뜩이나 환경문제에 취약한 이들 지역의 경제·사회 지속가능성을 더한층 퇴보하게 만들고 있다.(268쪽)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 국가들조차 거스를 수 없는 세계경제의 지향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본주의 위기론이 부상한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가 이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경제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이에 많은 사람이 신자유주의는 생명력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그로부터 15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으며,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문제를 유발시킴으로써 인류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의미 있게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되거나 악화한다면, 자본주의는 파시즘과 공산주의와도 차원이 다른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며 사상 최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신국제분업 체제와 글로벌 가치사슬은 얼핏 보면 개발도상국 경제에 도움을 주는 듯하나, 실제로는 개발도상국의 자본과 기술 축적을 저해하고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를 유지·확대하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남반구의 옛 식민지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식민제국이었던 북반구의 미국과 유럽 열강들은 선진국의 위상을 고수하는 남북격차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한층 심해지고 있다. (…) 개발도상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선진국에서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며 빈민가나 슬럼가로 내몰리는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누적되면서 이주자에 의한 일탈 행위나 범죄행위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선진국에서 반이민 정서나 제노포비아, 다시 말해 외국인 혐오가 확산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261~263쪽)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전 지구적 경제·환경 불평등은 자원의 불공정한 배분과 사용을 촉진함으로써 기후위기와 같은 환경문제를 범지구적 스케일로 더욱 악화시켜 놓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수십 년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메소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반자본주의ㆍ반세계화 운동은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에 봉착했고, 탈신자유주의 성향이던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주면서 이는 2024년 트럼프 재집권의 역풍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거대하고 복잡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직시해 이와 같은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절실한 이유를 많은 독자가 이 책에서 발견해 주기를 기대한다.
신자유주의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외형상으로만 성장을 이어갈 뿐 다중스케일적 불평등을 계속해서 확대·재생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선진국 스케일의 경제와 환경마저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위험성이 크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지리적 다중스케일적 안목과 이해를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세계경제에 대한 지속가능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