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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공놀이
거북과 용과 새
항상성
아발론
불가사리를 위하여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듀나
소설가이자 영화비평가. 1990년대 초,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 짧은 단편들을 올리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로 각종 매체에 소설과 영화평론을 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평형추》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민트의 세계》 《대리전》 《태평양 횡단 특급》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등의 소설을 썼으며,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가능한 꿈의 공간들》 등의 논픽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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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도대체 순수한 인간이 뭔가요?
왜 우리가 그런 게 되어야 하는데요?”

“도대체 순수한 인간이 뭔가요? 왜 우리가 그런 게 되어야 하는데요?” SF 소설집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의 다섯 번째 소설 〈불가사리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성초’의 대사다. 이 두 문장이 듀나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이유는 ‘인간’의 자리에 ‘문학’ ‘SF’ ‘한국인’ ‘인종’ ‘성별’ 등을 넣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듀나는 ‘어떤 것’으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움켜쥔다. 이게 바로 듀나가 장르와 소재, 세계를 향유하는 방식이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 아니게 된,
혹은 인간을 뛰어넘은 새로운 지성체를 상상하다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의 모든 작품에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그러나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지성체’가 등장한다. 이 새로운 지성체는 평범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느껴왔던 ‘화자-독자’로 하여금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도록 이끈다.

……라리사 진의 정신과 니콜라옌코 선장의 정신 찌꺼기가 하나로 합쳐져……정신 백업용 안드로이드에 옮겨졌고…… / 20세기 할리우드 영화에서라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타이밍이었겠지만 그런 고민은 이 기술이 나오기 전에 그 영화들이 미리 다 해버려서 나에게 남은 게 별로 없다.
─ 13쪽, 〈그깟 공놀이〉

〈그깟 공놀이〉의 도입부에서 화자인 라리사 진은 모종의 사고 때문에 안드로이드로 정신이 옮겨진 ‘라리사 진-a’가 된다. 외계 생명체인 ‘튜바’는 두 존재를 구분하며 “당신도 (더이상) 지구인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소설의 화자에게 이는 무의미한 질문이며 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 취급을 받는다. 이렇듯 듀나는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는 인간이 아닌지 고민하기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 연연하지 않는 세계를 그린다.

듀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지성체는 말하자면 ‘타인’이다. 독자의 기존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한 ‘타자’인 것이다. 듀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존재가 ‘타인’이라고 규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존재가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얼마나 뒤흔드는가인 셈이다.

‘세상을 부수고 나아가는 강하고 현명한 소녀들’

세계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는 모양새는 흔들리는 당사자가 결정한다. 그리고 듀나의 소설에는 그 ‘흔들리는 주체’의 역할을 대부분 여성 청소년이 맡고 있다. 추천사에서 김보영 소설가는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의 소설들을 ‘세상을 부수고 나아가는 강하고 현명한 소녀들을 향한 갈채’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듀나의 작품세계에서 ‘소녀’의 위치는 특별하다.

표제작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의 주역 여화공주와 〈불가사리를 위하여〉의 화자인 말순은 각각 고려와 조선의 인물로 시간 여행의 간섭을 받아 기존의 세계에서는 가지지 못했을 새로운 가능성에 눈뜬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 서로의 세계 인식을 뒤흔든다. 한편 〈항상성〉은 소녀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청소년’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에 주목하는 소설이다. 저자가 직접 작가의 말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그 책들(청소년 문학)을 읽기를 멈춘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청소년 주체를 사유하는 깊이 있는 접근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신인류를 향한 듀나의 끊임없는 상상과도 맞닿아 있을 터다.

낯설고 매력적인 ‘세 번째 주체’로
더욱 풍성해지는 듀나의 세계관

소설 속에 영향을 ‘받는 사람(화자)’과 ‘주는 사람(새로운 지성체)’만 있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듀나는 제삼자를 이야기 속에 집어넣는다. 이 ‘세 번째 주체’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흔들리는 과정, 즉 ‘나’와 ‘타인’이 충돌하는 과정을 유도하거나 평가하고, 때로는 강제하기도 한다.

〈아발론〉의 ‘여희’는 ‘아발론’이라는 안전지대에서 아발론 밖의 척박한 환경에 맞게 진화한 신인류인 ‘무색인’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여희에게 무색인은 만날 일도 없고 소통할 일도 없는, 그리고 가급적 회피하고 싶은 ‘멀었으면 하는’ 존재다. 〈아발론〉의 세 번째 주체는 ‘자영’이다. 무색인에 대해 여희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영은 무색인 ‘자할’을 여희와 만나게 함으로써 여희가 유지하고 있던 무색인에 대한 거리감을 단번에 무너뜨린다. 자영은 둘을 만나게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희가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항상성〉의 동성부부 ‘조박 영감들’은 수양딸 ‘서시나’와 AI 의원 ‘채잎새’와 소통하며 얻어낸 사유에 대해 의견을 내며 논의에 입체성을 부여하고, 〈불가사리를 위하여〉의 ‘지호’는 직접 ‘불가사리’와 인간 사이의 존재가 되어 화자 ‘말순’이 불가사리를 이해하도록 만든다.

낯설고도 매력적인 ‘세 번째 주체’는 듀나의 소설들에서 놀라운 가변성과 다채로움을 만들어 낸다. 독자는 한 가지 역할에만 이입하면서 비슷비슷한 감정만을 느낄 수 없다.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에서 듀나의 독자는, 계속해서 다른 위치에 서보게 된다.

오직 듀나이기에 가능한
대환장 멀티버스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집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듀나의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듀나는 화자가 비인간 지성체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을 그들이 독자적인 예술성을 지녔다는 것을 인식할 때로 설정한다. 〈그깟 공놀이〉의 튜바가 얼음에 새겨넣는 문양이나 〈거북과 용과 새〉의 융족이 부르는 노래에 관한 서술에서 듀나가 예술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아발론〉과 〈불가사리를 위하여〉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가 주인공을 통해 ‘세계를 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주체’로서의 소설가에 관한 메타적인 인식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저 밑에서 아직도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봐. 다들 역사의 역류에 맞서는 싸움을 하고 있어. …… 저 사람들에게 그 싸움은 의미가 있어. 결국 저 사람들이 겪는 역사는 하나뿐이니까.”
─ 179쪽,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특히 표제작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현실을 통해 듀나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담고 있다. 시간 여행을 이용해 인민 해방에 복무하는 시간인 집단에서 자란 주인공 무리는, 2024년 탄핵 시위가 한창인 서울과 1980년 부마항쟁이 독재자의 학살로 마무리된 시간선을 오가며 활약하는 가운데 ‘공화정의 길’을 걷는 ‘인민의 의지’를 사유한다. 실명인 듯 실명 아닌 존재들이 얽히고설킨 시간 타래에서 벌이는 대소동이 지난 겨울의 초현실적 순간들과 겹치며 웃프고도 유례없는 스페이스 오페라가 탄생했다.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은 ‘올바른 시간선’을 언급하지만 ‘듀나’스럽게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빈자리로 남겨둔다. ‘파란 캐리어’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찾아가는 독창적 미스터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책을 덮으면서 다시 시작되는 듯하다.

수록작 줄거리

그깟 공놀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사관생도 라리사 진의 정신이 이식된 안드로이드 ‘라리사 진-a’. 미숙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외계 종족 ‘튜바’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태양계의 명운을 건 미션을 시작하다!

거북과 용과 새
집채만 한 거북이가 돌아다니는 거북땅. 거북땅에는 공룡의 후손으로 짐작되는 융족이 살고 있다. 고려공화국의 대신 ‘민수련’이 융족의 ‘숭웅 3세’와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

항상성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는 AI 위원 ‘채잎새’는 일정 기간동안 청소년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그들로부터 자아를 구축한다. ‘채잎새 팀’에 들어가게 된 여성 청소년 서시나는 채잎새의 정체성과 청소년의 구분에 대해 생각한다.

아발론
‘묵시록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지구.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아발론’이라 불리는 도시에 모여 살고 있다. 아발론의 교사 여희는 ‘우나이아이’라는 필명으로 아발론의 밖, 척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무색인’들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는데…

불가사리를 위하여
조선에 정착해 비인간 생명체 ‘불가사리’를 연구하는 시간여행자 성초와 지호는 스토킹 피해를 당하고 있던 조선의 ‘말순’을 구출한다. 말순은 성초와 지호, 그리고 불가사리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인민 해방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는 집단에서 자란 ‘나’는 해방된 고려의 공주 ‘여화’와 함께 ‘파란 캐리어’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2억 년 뒤의 지구를 살아가는 종족 ‘갈람’, 시간 여행을 통해 수없이 생겨난 도플갱어, ‘공포’ 외의 감정은 학습하지 못한 AI 등 수많은 지성체들과 1980년의 부산-마산, 2024년 겨울의 서울을 오가며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

저자의 말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전 SF 장르의 가장 뻔한 클리셰들을 모은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씩 깨보겠다고요. (…) 전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 이야기도 썼고 인공지능과 연애하는 사람 이야기도 썼고 인공지능에 의해 멸망한 인류 문명에 대해서도 썼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썼고 낯선 행성을 탐사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썼습니다. 진부한 재료들을 하나 이상 넣으려 노력하면서요. 이런 게임이 독창적이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장르 일을 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저와 같은 욕망을 품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가장 진부한 게임을 해보는 것. 그러는 동안 독창적인 것이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습니다. 옛날에 봤던 것과 비슷한 걸 만드는 것 자체가 좋으니까요.

(…) 전 종종 제가 SF/판타지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현재성에 민감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작업에서는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어디에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현재 배경’의 이야기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상에 ’막연한 현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 단 한 번도 그런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조금만 지나도 그 ’현재’는 지금과 다른 구체적인 과거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전 그 시대가 정확히 언제였고 그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구체적인 과거를 사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비정치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달 동안 겪은 일이 그렇게 완벽한 중립을 취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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