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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_불꽃과 얼음 _7
2부_함정 _141
3부_질문들 _255

작가의 말 _346
저자 소개
저자 :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선릉 산책》, 중편소설 《유령》, 《세계의 호수》,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문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소나기마을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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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몸속에서 불꽃이 일어 스스로 불탄 사람이 있다지
지독한 감정에 장기가 녹아 죽음에 이른 사람도 있다지

화기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재화된 고통, 상처, 슬픔을 꺼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행해진 폭력으로 인해 씻어낼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덮고 있는 상흔을 버겁게 그러안고 간신히 살아내더라도 그 화기가 더 큰 불길로 번지는 순간, 너무나 연약한 존재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타인의 고통을 목도하는 바로 그 순간 다시 한번 폭력에 노출된다. 그리하여 어떤 삶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걸게 되고 또 누군가는 결국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증오는 사라지지 않고 마음 벽에 조용히 맺혀” 있기에 단죄하지 않고는 생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죄인을 단죄하는 집행관이 되거나 혹은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팔과 다리가 저릴 정도로 두려움에 떨”게 될 때 “이유를 모르겠는 희열”을 느끼며 “편해지지 않”고 잠들지 못하며 “한순간도 안락을 누리지 못”한 채 “매 순간 죽음 곁을 배회하는” 삶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도 조금이라도 더 편한 삶이 아니기에 두 인물을 만나는 동안 독자들은 이들의 고통을 함께 앓게 되고 이들의 이후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폭력을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 폭력은 누구에게도 가능한 것이 되어 그 몸집을 부풀릴 수 있다. 그리하여 폭력을 폭력으로 똑바로 직시하는 일이 바로 그 폭력을 멈출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 어렵고 묵직한 발걸음이 시작이 이 소설과 함께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기를 작가는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살아내는지, 묻고 싶었다

작가는 고통에 처한 인물들을 형상화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일도 사람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음을 고한다. 뜨거운 사랑, 사람의 몸에 상흔을 남기는 사랑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기뻐도 웃지 못하고 슬퍼도 울지 못하는 아픈 사람들은 자력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인간이 세상에 살아남는 방식은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제도와 기관을 동원해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시스템은 ‘이래되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작가는 모든 전쟁이 정의의 이름으로, 모든 폭력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이 이상하기만 했던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를 그만 듣고 싶기에, 좀더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기에 이어나가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일.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시도해보지 않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폭력을 폭력인지도 모르는 채 휘두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질문을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던지며 작가는 어떻게 견뎌내고, 어떻게 살아내는지 묻고 답하는 가운데 우리가 처한 위험한 순간들을 모두가 함께 버텨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소설은 이러한 마음을 지켜내기 위한 첫 물음이자, 갖은 폭력이 도사리는 우리 시대를 견뎌 나가기 위한 기도문이 되어줄 것이다.

책 속에서

“시청자를 자극해서 분노를 일으키는 대본은 많이 봤는데 토기장이 에피소드는 달랐어요. 뭐랄까, 분노는 분노인데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분노가 아닌 사적인 것으로 다가왔달까. 격한 감정에 휩싸여 있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말하려 꾹꾹 누르는 게 느껴지더군요. 불꽃을 감싸고 있는 얼음이랄까.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무튼 좋았습니다.” (24쪽)

생물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토할 것 같은 심정. 약하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해한 것 같은 모종의 죄책감. 그 끔찍함. 가만히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몸속에서 불꽃이 일어 스스로 불탄 사람이 있다지. 지독한 감정에 장기가 녹아 죽음에 이른 사람도 있다지. 이 느낌을 견딜 수 없어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주고 화를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지. 유희진은 몸속에서 정말 화기를 느꼈다. (55쪽)

“우리가 신뢰하고 있는 법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이 막연하게 생각했을 땐 권위 있고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껏 박준수 같은 사람이 이 판례 저 판례 뒤지며 내리는 판단에 불과합니다. 법은 법이 아닙니다. 사람일 뿐이죠. 경찰의 발과 변호사의 입. 검사의 손과 판사의 머리. 그렇게 조립된 인간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명하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불기소와 불구속. 들어갈 땐 떠들썩해도 결국 집행유예로 조용히 풀려나는 죄인. 아무도 모르게 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는 악인. 무수히 봤습니다. 법이라는 이름의 인간은 인간에 대해 몰라요. 관심도 없고요. 그런데 그가 판단한 것이 정의라고요? 그가 곧 법이니까?” (90~91쪽)

유희진은 불을 끄고 침대에 걸터앉아 컴컴한 어둠의 한 점을 바라봤다. 암막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어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유희진은 그 막막함이 좋았다.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것. 팔과 다리가 저릴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죄책감으로 마음이 움츠러들 때마다 이유를 모르겠는 희열을 느꼈다. 편해지지 않는 것. 쉽게 잠들지 않는 것. 한순간도 안락을 누리지 못하는 것. 그렇게 매 순간 죽음 곁을 배회하는 것.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유희진을 살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다. (139~140쪽)

길을 벗어나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낙엽이 쌓여 바닥이 짐작되지 않는다. 푹푹 발은 잠겼고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와 튀어나온 뿌리가 발목을 잡아챘다. 넘어지고 구르기도 했지만 계속 나아갔다. 숨과 함께 하얗게 피어나는 하얀 입김.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종아리는 욱신거렸다. 나무 몸통을 밀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잡아 날카로운 침엽수 낙엽을 헤치고 얼음처럼 차가운 돌멩이와 바위를 손과 발로 짚고 기어가는 동안 손바닥은 찢어지고 팔목엔 핏물이 맺혔다. 그림자 속을 헤매는 그림자. 숲에 어둠이 내리면 나무와 동물과 사물과 풍경은 모두 어둠이 된다. 그때까지 최대한 멀리 달아나자. 멀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것. 어디선가 박기정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3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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