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는 송안나(본명:송숙자)의 기구한 운명을 1970년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진한 남도 사투리와 거친 욕찌거리로 사람 냄새 짙게 풍기는 이야기다. 속칭 양갈보로 살아온 송안나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한 생애에서 암초를 만나는 주요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 따뜻하게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작가의 열망이 작품 제목 ‘순결한 여인’으로 승화되고 있다.
몸을 파는 여자로서 ‘고정간첩 공모자’로 찍혀 감당하기 힘든 고문과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는 현장 묘사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야만에 눌려 불행이 오는 방식이 야속하상만, 우리 인생에서 불행은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시대의 초상’이라는 아픔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불행이 불행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삶의 방식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송안나의 삶을 통해 당대 정치사회적 상황과, 주변에까지 확대되는 불행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하도록 조명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소재의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걸쭉한 남도 사투리와 욕찌거리를 의도적으로 대화에 끼워넣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것들이 당대의 서사구조에 가감없이 소화되는 매력도 지니고 있다.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군인에 관한 인물전기를 많아 쓴 작가의 장점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미5공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천년 고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국 공군 전투조종사의 모습을 실제 전투를 하는 듯한 실감나는 표현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냉정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가난한 나라의 당대 군대 모습을 그대로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 소설은 장지동과 김영대라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균형 축을 이루는 주변 인물들을 개성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군인이라는 직분에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들이 전쟁을 통해 ‘민족장교’로서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펼쳐나가는 웅혼한 기상도 살펴볼 수 있다.
미5공군이 북한군이 들어왔다는 첩보를 접하고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우리의 정신사가 응축된 ‘팔만대장경’이 소장돼있고, 이 문화재가 소실되면 안된다는 절박감으로 끝내 명령을 거부한 두 한국 공군 장교의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를 가슴 여미게 한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조국의 아픈 현실과 이를 극복해가는 의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나라의 전통적·문화적 인식없이 단순히 전투 승리의 목표달성주의에만 매몰된 외국군의 태도야말로 얼마나 해당국의 자존감을 모욕하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비정하고 잔혹한 전쟁 상황에서도 군인으로서의 소명과 우리 것을 지키려는 투철한 민족의식이 젊은 공군 장교들의 혈관에 관류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담대한 서사로 제시하고 있다. 청년 장교들의 애국정신과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군인으로서 ‘사나이’의 기질을 잘 드러낸 작품이지만, 동시에 가슴 따뜻한 휴매니티도 펼쳐져 헌걸찬 군인정신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한국 전투조종사들의 폭격 거부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고스란히 지켜졌으며, 이들의 뜻을 기리는 공적비가 해인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귀국선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가 폭발해 침몰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8천 명이 넘은 사람이 승선했는데 생존자는 불과 이천여 명 밖에 안된다고 전해지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작가는 미군이 설치한 수중 기뢰 때문이든 패전한 일본의 방치와 외면으로 침몰했든, 수천 명이 수장된 사실과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을 매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조선인 일본 육사생도들이 일본 패망과 함께 귀국하는 과정에서 귀국선 우키시마호가 마이스루 군항 앞바다에서 폭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난자를 구하러 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소설적 허구에 논픽션 형식을 취해 현실감을 더해주는 구성 기법을 취하고 있다.
정확한 사망자 명부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고 실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 가운데, 작가는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퍼즐 맞추듯 진상을 맞춰가고 있다. 조국을 잃은 나라의 백성으로 점령국의 나라에서 징용자로, 종군위안부로 힘들게 살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집념이 인물들의 성격이나 묘사를 통해 강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 인물들이 사건의 실체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작가의 탐구정신이 잘 맞닿아있다.
승선자 중에는 북해도 강제 징용자, 해녀, 만주와 사할린에서 종군위안부로 살았던 조선인 처녀들이 있었으며, 작품 속에서 이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패전한 일본의 허무주의적 좌절과, 그로인한 전후 처리의 방임과 무책임으로 귀국선의 항행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런데 일본 연근해 마이쓰루 군항 앞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이때 희망을 품고 귀국하던 조선인들 수천명이 수장되고 만다. 조국은 무정부 상태의 진공상태로 조난자들을 구할 어떤 의지도, 대책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패전으로 폐교된 조선인 일본 육사 생도들이 귀국길에 현장 출동하여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리고 복수극을 벌인다. 조난자들을 대변하는 과정이 실화적 요소와 함께 전쟁의 광기를 고발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지 수사」는 남의 문중 땅에 몰래 묘를 쓴 사람과의 소송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 비판과 냉소의 형태가 현실의 어떤 순응과 체념의 경로를 거치는가를 심도 있는 내면과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의 문중 땅을 무단으로 점령한 자의 묘를 해결하지 못하는 재판 앞에서 패배의식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이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게 결말없이 끝나는데, 그런 가운데 무단 묘는 그대로 주인공의 문중 땅에 그대로 존속된다는 점이다. 상황을 보면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이끌어가는 재판과, 수긍할 수 없는 법에 지배되는 과정, 법적 인과율의 억압적인 상황을 주인공의 ‘독백’으로 폭로하고 있다. 결국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법과 제도라는 장치가 장애물이 되고 마는 윤리적 허무주의를 증폭시킨다는 점을 고발하고 있다.
이계홍 작가의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여러모로 문제적이다. 역사적 사실의 기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조건과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의 정신의 투영과 상처 입은 자들을 함께 보듬고 안아 더불어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푯대로 우뚝하다. 그리고 고통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그것을 허물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길러내는 가쁜 숨결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저자의 말
필자는 십수년 동안 주로 대하 장편소설을 써왔다. 임진왜란 시 충무공 정충신 장군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깃발」 5권(범우사 간행)을 비롯해, 해방공간의 좌우 이념 대결을 그린 대하장편소설 「행군-어느 민족주의자를 위한 변명」 4권(범우사 간행), 역사소설 「소설 장만」 3권(글로벌마인드) 등을 펴냈다. 그리고 틈틈이 중편소설을 썼다. 단편소설은 호흡이 짧아 내용을 다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어서 주로 중편소설을 써왔다. 이번 중편집으로 묶은 「해인사를 폭격하라」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귀국선 우키시마호」 「인지 수사-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도 그 일환이다.
이들 작품은 특이한 소재와 중요한 사건을 만나 묵혀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하여 집필했다. 집필 과정에서 관련 인물 인터뷰, 도서관과 인터넷, 자료 수집을 위한 출장 등 ‘발품’을 팔았다. 역시 문학은 발품에 따라서 좋은 소재를 발굴할 수 있고, 작품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록된 작품들은 그동안 「월간문학」, 「문학저널」, 「소설문학」 등에 발표된 것들이다. 발표될 때마다 특이한 소재 때문인지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작품 중 일부는 제목을 바꾸고, 내용도 수정해 새롭게 내놓는다.
필자는 현재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죽창’을 남도일보에 연재하고 있다. 이 작품도 대하소설로 완성될 것이다. 이미 다른 작가 선배들이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쓴 작품들이 있지만, 내 나름의 역사 해석으로 덤벼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성이 기존의 기득권 구조하에서 편견과 왜곡으로 굴절된 부분이 많아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진실을 복원하고 싶다. 조선조 말 병든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동학농민혁명 주도자 전봉준·김개남·손화중이 체포돼 처형되고, 그후에도 동학농민군이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반외세, 반봉건, 민족자주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럼에도 운동 역량이 배제되었다. 유림의 항일투쟁은 정당화되면서 동학의 반외세 저항 운동은 부정된 것이다. 계급적 신분 질서 때문이다. 이 결과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내부적 대립과 배척의 양상이 결과적으로 식민지 역사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득권 세력이 동학 세력과 함께 연대하여 반외세, 반봉건, 민족자주운동을 강화해왔다면 비극적인 망국은 불러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