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가족, 죽을 때까지 행복하고 싶은
우리가 꿈꿨던 환상
“당신 딸한테 살을 날렸다고. 당신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살煞」, ‘완벽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지키고자 한 사랑에 대해
‘엄마 친구’가 붙은 건 언제나 멋지다. 공부도 잘하고 참하다는 ‘엄마 친구 딸’, 좋은 회사에 들어가 성공했다는 ‘엄마 친구 아들’. 저들은 언제나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살煞」은 ’완벽한 가족’의 균열을 엿보며, 그것을 직면한 개인의 혼란을 훌륭히 묘사한다.
선경의 가족은 완벽하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가정적인 남편과 성격도 좋고 예쁜 스튜어디스 큰딸과 모범적이고 성실한 작은딸을 훌륭하게 내조하는 선경. 선경은 자신이 만든 가족이 자랑스럽다. 큰딸 수영이 원인 없이 앓기 시작한 것을 빼면 말이다. 이웃에게 수영의 상태를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선경은 우연히 만난 무속인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수영에게 살을 날렸다’는 걸 듣는다. 그 순간,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믿고 있던 완벽한 세계가 일그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선경은 공포에 휩싸인다. 더는 서로를 믿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선경은 완벽한 가족을 계속 추구할 거라고 결심한다.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니게 되었어도 ‘우리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선경의 마지막은 압권이다. 결국은 가족. 결국은 우리 집. 이 또한 사랑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날 비난하지 마. (…)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반려할 누군가가 필요했어.”
「반려, 너」, 혼자 살 수 없는 우리 모두가 착각하고 있던 한 가지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 둘을 반복하며 우리는 서로를 책임질 반려를 찾는다. 우연과 운명이 얽혀 이어진 관계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같은 시간에 만나 서로의 마음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은 가끔 신성시되며, 외부자가 끼어들면 안 되는 관계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여러 가치관이 혼재된 이 사회 속에서 이어진 두 사람은 과연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정인과 한치훈은 공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한치훈의 반려견 호두가 이정인의 발목을 문 것이 계기였다. 정인은 온몸으로 미안해하는 치훈의 자상함에, 치훈은 다쳤음에도 호두를 걱정하는 정인의 사려 깊음에 끌린다. 자연스럽게 다음 만남을 기약한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의 속도가 달랐다는 걸 뒤늦게 알아챈다. 정인은 치훈을 거절하고, 치훈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렇게 어긋나려는 둘의 관계는, 치훈의 끈질긴 구애로 질질 이어진다. 예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 선물과 달갑지 않은 연락 등, 치훈이 하는 로맨스는 정인의 공포가 된다. 더는 참을 수 없어진 정인은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무례한 시선들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정인은 묻는다.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냐고.
“내 딸의 안전 확인이 먼저야.”
「준구」, ‘우리 가족’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오해
‘가장’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나 하나 책임지기도 힘든데 사랑의 탈을 쓴 의무가 어깨를 마구 짓누른다. 그래서 가장은 힘을 낸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 여겨지는 기준에 맞춰 강하고 듬직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 역할에 집착할수록 사람의 시야는 좁아지고, 선택은 무모해진다. ‘우리 가족은 내가 책임진다’는 사랑의 말은 가끔 무책임할지도 모른다.
1980년 여름,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준구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부양하는 선량한 시민이다. 1호선 막차를 타며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딸이 납치되며 준구의 가족은 혼란에 휩싸인다. ‘딸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마약 운반책이 되어라’라는 유괴범의 협박 전화를 받은 준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1호선 막차에 오른다. 누가 사복 경찰인지, 누가 유괴범인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준구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딸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준구는 지하철이라는 밀실 속에서 돌발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태어난 순간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
축복의 탈을 쓴 족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해연이 건네는 작은 ‘경고’
정해연은 『우리 집에 왜 왔어?』를 통해 가족에 대한 여러 담론을 던진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완벽한 가족에 집착하느라 스스로의 눈을 멀게 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나를 비난하지 마”라는 말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절대 누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할 수 없는 존재야.”(「살」)라는 명제는 진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입 밖에 낸다. 부성애나 모성애로 포장된 여러 선택들은 어쩌면 이기심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교묘하게 이를 숨기고, 모른 척한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된 사람들이 모인 가족 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쩌면 이를 멋대로 재단하려는 시선들이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가족이라서 더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하고, 가족이라서 더 원망하게 되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정해연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야말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자의 말
나는 그동안 가족의 여러 모습을 참 많이도 다뤄왔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족은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을 갖게 해주는 존재다. ‘애증’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복잡한 존재. (…)
앞으로도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가족이 된다. 가족이라서 더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하고, 가족이라서 더 원망하게 되기도 한다. 가족 때문에 비뚤어지고, 가족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 많은 가족의 이야기로 나는 작은 경고를 담고 싶다. 가족이라도, 혹은 가족이라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경고. (…)
이 후기를 적는 동안 해가 기울었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라는 알림이다. 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간다. 따뜻하고 순수하게 잔인한 내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