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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구자명
누가 그 사랑을 모르시나요|모자|봄은 온다|비루와 남루 사이

김의규
나|늙은 어린왕자|사랑농장|서로에게 그림자일 뿐

김저운
갈 수 없는 나라|엔의 그네|유민(流民)

김 혁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아버지의 어긋난 해방|옛날의 금잔디|제라늄 여인|하트 오브 골드(Heart of Gold)

배명희
시간을 빌리는 사람|개새끼|아내의 바다

송 언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노란색 카트의 운명|시인의 아내

정의연
터럭 다리|고수|작별 연습|산속의 시인

최서윤
삼마치의 전설|노란 부표가 있던 풍경|첫사랑의 맛|침묵의 얼굴

한상준
‘바다’를 품다|밤길, 눈길|설핏, 꽃처럼 피어났다
저자 소개
저자 : 구자명
1997년 계간 《작가세계》를 통해 단편 〈뿔〉로 등단. 소설집 《건달》, 《날아라 선녀》, 연작장편 《건달바 지대평》, 짧은소설집 《진눈깨비》, 에세이집 《바늘구멍으로 걸어간 낙타》, 《기억과 망각 사이》. 한국가톨릭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저자 : 김의규
미국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rsity 졸업. 계원조형예술대학·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전업 화가로, 미니픽션 및 철학동화 작가로도 활동. 철학우화집 《양들의 낙원, 늑대 벌판 한가운데 있다》, 트윗픽션집 《그러니까 아프지 마》, 미니픽션집 《그녀의 꽃》(김의규·구자명 공저) 등. 2022년 제5회 윤동주 신인상으로 시인 등단.

저자 : 김저운
1985년 《한국수필》에 수필, 1989년 《우리문학》에 소설로 등단.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제9회 불꽃문학상 수상. KBS 라디오문학관에서 단편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 〈마지막 식사〉 극화 방송.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공저 《마지막 식사》 등 다수.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저자 : 김혁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길고 긴 노래〉로 등단. 경희대학교 한의대 졸업,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한의원 개업. 《영동신문》을 창간하여 10여 년간 발행인으로 활동. 민예총 충북지회(회장 도종환) 부회장으로 활동. 장편소설 《장미와 들쥐》, 《지독한 사랑》, 《누가 울어》. 미니픽션 〈달걀팔이 소년〉 중 2 국어 교과서(비상교육) 수록.

저자 : 배명희
2006년 중앙 신인문학상 수상. 소설집 《와인의 눈물》, 《엄마의 정원》. 공저로 《소설로 읽는 한국환경생태사 2》, 미니픽션집 《혼자 괜찮아?》,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휴가》, 《선녀와 회사원》, 《술집》 외 다수.

저자 : 송언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그 여름의 초상〉으로 등단. 소설집 《인간은 별에 갈 수 없다》, 장편소설 《천궁 거사》, 《운명의 문》, 《사람을 그린 사람》. 홀연히 동화작가로 변신하여 동화집 《마법사 똥맨》, 《김 구천구백이》 등 수십 권 펴냄.

저자 : 정의연
2004년 소설 무크 《뒷북》 창간호에 〈풀벌레의 집〉, 〈다락방과 나비〉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5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집 《스캔》(필명 강물) 출간. 2020년 단편 〈그 여자〉 현진건문학상 우수작 선정(필명 강물). 2024년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의 트라우마를 다룬 장편소설 《롱빈의 시간》 출간. 2024년 9월~2025년 1월 다음 브런치 스토리에 AI 러브봇 이야기를 다룬 장편 《안나》 연재.

저자 : 최서윤
1996년 문학 계간지 《소설과 사상》에 단편 〈선로 위에서〉로 등단. 창작집 《길》.

저자 : 한상준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로 등단. 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 《푸른 농약사는 푸르다》, 《미완의 귀향》. 장편소설 《1986, 학교》, 산문집 《다시, 학교를 디자인하다》, 미니픽션 창작집 《민규는 ‘타다’를 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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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카페에 들어가서 얘기하자며 그녀를 이끄는 그의 어조는 영락없이 주눅든 채무자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가 요새 좀 몰려 있는 사정이 있어서 그래. 며칠만, 딱 며칠만 더 봐주라, 응?” 하며 눈썹을 팔자로 찌푸린 채 웃어 보였을 때 그녀 자신은 비정한 사채업자가 된 것 같았다. 숙은 그의 비루에 치가 떨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걸 애써 누르며 따박따박 내뱉었다.
- 〈비루와 남루 사이〉 중

내가 이 세상에 온 지 3억 5천만 년 전 식물의 화석이란 은행나무도 내가 있은 지 1억 년이나 뒤에 생긴 아기일 뿐이다. 그리고 나를 하늘의 골목으로 몰아세우는 저 인간이란 것도 바로 엊그제인 10만 년 전에 온 생물일 뿐이다. 내 몸의 알주머니에는 40개의 새 생명이 곧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저들은 모른다. 내 알주머니는 인간이 만든 맛난 독약도 견디는 내성을 내 지금의 기억과 동시에 갖춤을 인간들은 알량한 승리감에 도취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핵 폭발만 일어나도 다 죽고 마는 미물들. 바퀴가 늘 구르듯, 언제나 생명을 부활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나.
- 〈나〉 중

직업상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 여성들을 보면서 한결같은 의문을 품었다. 왜 저들은 저토록 무기력하고 무덤덤할까? 그런 나에게 엔은 답이 되어 주었다. 스스로 무디어지는 연습을 수없이 했으리라. 파도와 모래에 시달려 동글동글해진 조약돌이나 투명한 조개껍데기처럼. 그것이 삶의 한 방편이 되었던 것이다. - 〈엔의 그네〉 중

졸지에 마약사범 누명을 쓴 G 씨는 조사실로 끌려가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약은커녕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다니,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꼭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약 탐지견은 따라오면서 계속 확신에 찬 몸짓으로 킁킁거렸다. - 〈개는 언제부터 개가 되었나〉 중

막상 그와 코를 맞대고 서니, 당혹스러웠다. 어머니와 어떤 사이냐고 물으려던 내가 그렇게 유치할 수 없었다. 지금껏 받은 교육과 상식, 나를 빚어 온 자존과 허위 의식까지 모든 게 나를 공격했다. 이렇게 쉽게 내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나를 마구 흔들었다.
- 〈시간을 빌리는 사람〉 중

“뭐라고? 서-울-대-학-교?”
반장 아줌마의 하마처럼 쩍 벌어진 입을 바라보면서, 오십대 중년의 아줌마들과 육십대 장년의 아줌마들과 칠십대 노년의 할머니들은 일제히 옷 만들기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단체로 징그러운 뱀이라도 밟은 듯 두 눈도 휘둥그레졌다. -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 중

저쪽에서 정확한 위치와 지번을 묻고, 시인이 그 대답을 하고, 저쪽에서 다시 거기까지 출동하는 데 30분이 걸린다고 그때까지 차 출발하지 못하도록 잡아 놓고 있으라고 하는 말이 스피커폰으로 들리고 나서야 시인이 정말로 경찰에 신고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친놈 아냐? A와 B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이 외따로 고립돼 살다 보면 괴팍해진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 〈산속의 시인〉 중

러시아에 있을 때 친구들과 러시아 친구의 시골집에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함께 블리니를 만들었다. 블리니는 ‘젠장!’이란 뜻을 지닌 러시아 단어 ‘블린’의 복수형이다. 얇고 하늘거리는 빈대떡 같은 것이 팬에서 잘 뒤집히지 않아서 찢어질 때 “블린(젠장)!” 하고 내뱉는 말에서 유래된 요리 이름이다. 처음에 만든 블리니는 아직 길들지 않은 팬과 익숙지 않은 솜씨로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 〈첫사랑의 맛〉 중

딴은, 마을 사람들 전답까지 빚보증으로 끌어들여 위기로 내몰리게 하였으니, 마을에서 받은 냉대가 가당찮다고 할 수 없는 경우였다. 마을 피붙이들 빚보증 몫은 아버지가 어찌어찌 풀고 넘어갔기에 그나마 다행이긴 했다. 어쨌거나 마을 사람들로부터 외딴섬처럼 교류를 차단당하기까진 않았지만, 마실 걸음을 꺼리는 건 역력했다. 자식들 떠나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뜬 뒤로 어머니 혼자서 고향집을 지키셨다. 이래저래 겪어야 했을 수모 또한 만만치 않았을 테지만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자식들인들 그 기막힌 사연을 어찌 모르겠는가? - 〈밤길, 눈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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