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그림의 종착지는 집입니다
그녀는 하우스갤러리를 운영하면서 그림의 종착지는 집이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럭셔리한 공간에 있는 대단한 그림보다는 내 옆에 있는 그림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엌 한쪽에 놓인 그림, 아이 눈높이에 걸려 있는 그림이 있는 집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하우스갤러리라는 새로운 형식에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보였다. 미술작가에 국한되지 않고 시인, 건축가, 음악가, 무용가, 디자이너, 그림책작가 들도 문을 두드린다는데, 정작 그녀에게 가장 인상적인 사람들은 그녀와 닮은, 비슷한 연배의 여성 관객들이라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서로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삶의 동지 같은… 초면에도 불구하고 그림이라는 공통의 화제를 놓고 함께 울고 웃기도 했던 그들은 하나같이 하우스갤러리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고 그녀가 한 발을 더 내디딜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우스갤러리를 운영하는 동안 작가에게나 관람객에게나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고, 한 발을 더 내디딜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기를. 그녀는 바란다.
책 속에서
p.30
나는 그림이 있는 공간에 거주하면서, 즉 나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그림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그림보다 훨씬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묘하게 집에서 보는 그림은 어떤 마력이 있었다.
p.31
집을 전시장으로 쓰고, 낯선 이들이 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남편의 첫마디는 “당신 미쳤어? 제정신이야?”였다.
p.31
나의 ‘똘끼와 고집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내 눈에서 조용한 광기를 읽고 마침내 그는 굴복했다. 첫 취업보다 어려운 재취업의 경력 단절을 그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p.35
예술가의 삶, 예술생태계의 작동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제속 가능성이다.
p.46
작가의 삶 자체가 나에겐 감동으로 다가왔다. 끝없이 방황하고 고민하며 하갤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나에게 한 발 더 내딛고 헤맬 용기를 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p.46
어떻게 경력 단절을 극복했느냐는 나의 우문에 작가는 한 번도 단절된 삶을 산 적이 없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p.46
작가는 아이만 바라보지 말고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좋아하는 일에 한 발씩 다가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가 교육이라고 했다.
p.48
삶에 예술을 뺏기지도, 예술에 삶을 희생시키지도 않겠다는 결연한 눈빛의 30년 전 30세의 작가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작가의 모습과 기개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p.58
그래서 나는 부엌에도 그림을 둔다. 집에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p.67
우리는 한동안 새로운 겨울 외투 따위는 살 수 없었다. 옷소매 끝이 해졌지만 우리를 위로하듯 한동안 빈티지 패션이 유행해서 다행이었다. 그림을 보고 뿌둣해하는 남편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가 이 세계에 들어왔다.
p.139
하갤을 통해 만난 가장 인상적인 사람들은 바로 나와 닮은, 비슷한 연배의 여성 관객들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내가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흔이 넘어서도 사춘기 때와 비슷하게 고민이 많은 나와 비슷한 여성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78
미술사 도록이나 미술관의 컬렉션은 분명 좋은 길잡이긴 하지만, 좋은 안목을 가지는 것의 중심은 그럼에도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자신의 눈을 믿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p.212
그러다 그림이 나의 집에 오고 나서야, 나와 눈 마주치는 곳에서 가까이서 나를 위로하고 말을 건네는 진정한 그림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림의 종착지는 집, 결국 우리의 삶 한가운데가 되어야 한다. 삶이 예술로 들어가고 예술이 삶으로 들어올 때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발현된다.
p.213
예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이며,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힘을 준다. 그러나 한편 예술은 물처럼 투명하고 유연해서 사람들에게 가닿는 의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섣불리 확언의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