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그는 마나님이 한국 드라마 삼매경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절대 방해하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지어 올린다며 너스레를 떤다. 중국 남자들이 요리를 잘해서 아내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낭설이 아니다.
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청소년기에 부모를 따라 파리로 이민갔다. 프랑스 육군 병사로 복무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유펜으로 유학 와 컴퓨터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실리콘 밸리에 정착하였다. 노키아에서 일하던 중 10년 전 그가 잠깐 감원 당했을 때 우리는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미국에서 감원 당해 보지 않은 자 인생을 논하지 말지어다). 지금은 잡지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50쪽
북한이 핵무기를 어딘가에 꽁꽁 은닉해 서방의 핵사찰을 피해내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회담을 통해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경제 지원을 끌어내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뒤, 유사시 언제든지 핵 재무장을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비밀 논의를 나누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까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엘리트 정신과의사인 바랏트는 한술 더 떠서 어쩌면 중국이 북한 핵무기를 대리 보관하고, 후일 북한이 궁지에 몰릴 때 북한에서 스위치를 누르면 중국에서 핵무기가 발사될 수 있는 시스템을 허용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무렵 빅터가 입장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세계 1, 2위의 인구 대국이자 최근까지 이어진 국경분쟁으로 상호 감정이 그리 좋을 수만은 없는 사이이다. 당연히 사람들끼리도 미묘한 대결 감정이 흐르고 있을 터. 빅터의 갑작스러운 입장으로 중국을 의심하는 대화를 중단하면 분위기가 오히려 어색해질까 봐 우리는 좀 더 말을 잇다가 나는 먼저 나왔다.
100쪽
이상하다. 3분 거리라고 나오는데 10분이 지나도록 오질 않네.
나는 하염없이 스마트 폰만 내려다본다. 리프트(LYFT) 택시 이야기이다. 화면에 뜬 드라이버 인적 사항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중동계 악센트의 그는 시스템이 문제가 있어 잘 작동이 안 된다며, 미안하지만 다른 드라이버를 이용해 달라고 한다.
아니, 그새 더 선호하는 장거리 손님 정보가 떴나? 하며 다른 운전자 서치를 시작하자니 곧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아직 새 운전자를 안 정했으면 자기가 다시 와도 되냐고. 물론이라고 하니 이내 검은색 포드 포커스를 몰고 2분 뒤 그가 도착했다. 이마에 난 두세 개의 주름살이 그의 나이를 50대 중반이라고 말해준다.
10분 거리의 목적지로 가는 동안,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운전자는 미안하지만 운전하면서 본사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151쪽
저녁해가 지평선에 걸려 넘어가기 직전 안 넘어가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순간의 노을은 정말 아름답다. 이곳 북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해변 습지에서 바라보는 해 진 뒤 한 시간 정도 지난 어두운 하늘, 저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올라오는 검붉은 잔양이 아스라한 이른 밤하늘도 너무 아름답다.
나는 지금 아주 오랜 영원과도 같은 시간 끝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밤하늘에 다시 찾아왔다는 진객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소년처럼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인적 드문 밤 바닷가에 나와 있다. 낮에는 썰물로 바닥을 드러냈던 갯벌 위에는 어느새 깊게 밀물이 들이찼다. 이리저리 일렁이는 검은 물결이 달빛에 반사되니 풀벌레들만 찌륵거리는 고요한 해변에는 적막이 흐른다.
200쪽
또 부지런한 아줌마는 부업에도 하루 종일 열심이라 인정이네, 베짱이네, 용자네 등 재밌는 별명의 초딩 여자 후배네 아줌마들과 함께 양복의 초벌 틀을 꿰매는 ‘가닷 일’로 하루 수십 벌씩 바느질하시며 알뜰히 사셨다.
자연히 동네에서 수도 가설도 철제 캐비닛도 닐 세다카의 ‘유 민 에브리띵 투 미’가 흘러나오던 전축도, 텔레비전도 제일 먼저 장만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집이 되었다.
중딩이던 내가 불과 세 살 차라 만만했던 누나와 철없는 일로 투닥투닥하던 끝에, 누나가 비닐로 곱게 싼 내 교과서 몇 권을 마당으로 내팽개치며 내 가슴에 결정적인 못을 박으면, 그만 육박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번지며 동네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밑에 집의 종모 아줌마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후다닥 달려 오셔서는 “앗따, 고만하랑게?” 하시며 싸움도 뜯어말려 주셨다. 보험회사에 다니시던, 열 살 정도 위의 우리 엄마가 파김치가 돼 저녁에 귀가하시면 “형님, 은영이 저것, 오메, 썩발이 같은 년, 싸납등그~.” 하시며 주로 누나의 비리를 엄마에게 일러바쳐 내 편을 들어주곤 하셨다.
오늘 출근해 주차장을 걷자니 오동잎이 한 잎 쓸쓸히 길 위에 구르며 가을이 왔음을 내게 알려준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우리에게 그렇게 잘해 주시던 아주머님을 생전에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한 불효에 후회막급이다.
250쪽
시월이 되면 고국에서는 국군의 날(1일)로 시작해 개천절(3일)이 있고, 9일이면 성군 세종대왕께서 집현전 학자들을 모아 연구시킨 끝에 세계 문명사에 길이 빛나는 한글을 창제한 지 576돌이 되는 한글날(9일)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5년, 나는 동대문 야구장 앞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몇 가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중 하나는 바로 1년 위 선배들이 쉬는 시간에 각 반을 돌면서 각자 속한 특별활동반을 소개하면서 우리 신입생들의 가입을 권유하러 다니던 일이다. 상업학교답게 주산반, 부기반은 물론 원예반, 문예반, 밴드부 등의 다양한 특활반의 선배들이 쉬는 시간마다 들어와서는 저마다 자신들의 반으로 가입하라며 열심히 광고하는 내용을 흥미 있게 들었다.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