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세포의 발견』, 세포설을 다시 묻는 과학사의 결정판
『세포의 발견』은 세포설이라는 과학 개념의 형성 과정을 교과서 밖의 시선으로 되짚는 탁월한 과학사 저작이다. 흔히 슐라이덴과 슈반, 피르호 등 몇몇 과학자의 업적으로 단순화되는 세포설의 역사 뒤편에는, 국가 간 경쟁, 학회 정치, 발표 시점의 줄다리기, 그리고 잊힌 과학자들의 치열한 연구와 실패가 얽혀 있었다. 저자 존 해리스는 50년에 걸쳐 방대한 원전 자료를 추적하며, 세포설이 단순한 ‘합의’의 산물이 아닌 과학계 내부의 ‘충돌’과 선택의 결과였음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논문의 문체부터 발표 순서, 학회 내부의 알력까지 치밀하게 분석된 이 책은 과학사에 숨겨진 긴장과 서사를 복원해낸다.
이 책은 생명과학의 출발점을 이해하려는 전공자에게는 깊이 있는 학술서이자, 과학의 본질을 성찰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는 탁월한 교양서가 된다. 『세포의 발견』은 단순히 세포를 ‘생명의 기본 단위’로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역사적 맥락과 함께 풀어낸다. 과학은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시대적, 인간적 조건 안에서 구성되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 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과학을 '외우는 것'이 아닌 '다시 읽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진정한 앎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훅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식물체는 즙으로 채워져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코르크의 얇은 단면에서 그가 현미경으로 관찰했던 것이, 세포벽과 이전에 적어도 하나의 세포가 존재했을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빈 공간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코르크의 미세 구멍에 대해 ‘이전에 그것에 대해 언급한 어떠한 작가나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최초로 발견한 또는 최초로 나에게 보인 진정한 현미경적 미세 구멍’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코르크에서 보았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석화되거나 타버린 나무에서 이전에 관찰했던 구멍과 같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라틴어 cella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가 작은 공간 또는 작은 방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작은 구멍을 기술하기 위해 ‘cell’이라는 단어를 훅이 사용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p.24)
"1866년 쾨니히그레츠의 전투와 1871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 제국의 선언 후에 독일인의 우월성은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나왔던 독일어로 된 과학 논문은 어떤 때보다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았다. 논문에서 인용할 때도 독일 과학자들에 의한 발견은 부각시키고, 프랑스 논문들은 불필요하게 비방을 받거나 모두 삭제되었다. 이와 같이 나라 사이의 상호 적대적인 예가 종종 있었다." (p.56)
"그 당시 널리 읽힌 교과서를 검토하면 1838년 이전의 과학계는 살아있는 개체 내에 세포들이 도처에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 명확하다. 식물은 대개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로 여러 동물 조직 내에서 세포들이 관찰된다. 그러나 식물과 동물 세포가 서로 일치한다고는 어느 누구도 제안하지 않았다. 또한 세포가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일치된 견해도 없었다. 이분법이 설명되긴 했지만 그것은 식물들 중에서 일부 하등한 형태에서만 나타나는 세포 증식의 예외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푸르키녜와 슈반의 업적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그 당시의 지식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다." (p.110)
"바그너는 양의 그래피언 여포(Graafian follicle)를 관찰하면서 알의 배아 소포 내부에 노
란색으로 굴절하는 어두운 반점을 감지하고 “한때 나는 한 개가 아닌 두개의 서로 가까이 놓여 있는 작은 반점을 본 적이 있다.”라고 기술하였다. 나는 이 반점을 다른 동물에서도 관찰하였으므로 이 반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나는 아직도 이것이 모든 척추동물에 항상 존재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주머니쥐(Phalangium opilio)에서도 관찰했다면 명백해질 것이다.” 실제 인은 이 논문에 곁들여진 도해의 여러 그림에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 (p.162)
"푸르키녜 자신의 경우에 그의 업적은 한 단원 내외 정도의 분량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여전히 그의 이름이 포함된 용어의 수가 그의 생산적인연구 활동의 충분한 증거가 된다. 푸르키녜 소포, 소뇌의 커다란 푸르키녜 세포, 골수의 푸르키녜 혈구, 심장의 내피하층의 근육섬유인 푸르키녜 섬유, 푸르키녜 입자층, 어떤 상태의 조명 하에서 망막의 혈관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어두운 푸르키녜 상, 그리고 동공에서 보이는 세 쌍의 푸르키녜 상 등이 있다. 푸르키녜는 미세해부학 분야에서는 물론 프라하로 돌아온 후 시각생리학 분야에서도 평생에 걸쳐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명명하였다." (p.180)
"슐라이덴은 네겔리의 견해를 신랄하게 비평하였다. 그러나 네겔리는 자신의 견해가 옳음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또 슐라이덴의 비판에 대해 적절히 대항할 근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사상조류의 세포 증식은 하나의 세포 안에 다른 작은 세포들이 형성되는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네겔리는 포자의 형성이나 화분 모세포의 경우에는 일차 핵이 이차 핵을 형성하고, 이후 이차 핵으로 흡수된다고 믿고 있었다. 네겔리의 세포 분열 방법에 대한 견해는 1844년 논문의 마지막에 잘 나타나 있다." (p.225)
"슈반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조직학적 소견을 갖고 있었으며 푸르키녜의 관찰을 확장시켜 일반화시킨 것은 오늘날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단행본에서 주장한 내용에 의해 야기된 혼란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슈반 스스로 연구의 정수라고 말한 ‘세포 형성의 일반 원리’는 후
대의 과학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혼란스럽게 하였다. 배아세포가 수정란의 난할을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은 1855년 레마크에 의해 척추동물의 발생에 관한 위대한 저술을 통해 비로소 정착된다." (p.250)
"마이젤의 두 번째 보고서는 다른 많은 종에서의 상피세포 재생에 관한 연구를 담고 있었
는데 조류, 포유류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연구 범위를 넓혔다. 그가 다룬 유사 분열에 대한 설명은 주로 뷔칠리와 슈트라스부르거에 의해 설명되었던 중기와 후기에 관한 것이었다. 방추사로 보이는 것에 대해 독일어로 쓴 그의 표현은 다음과 같다. “비스킷 모양 또는 섬유로 만들어진 모래 시계를 닮은 …” 취리히의 병리학 교수였던 에버스는 1876년 그의 논문에서 뷔칠리, 슈트라스부르거 그리고 에베츠키의 것을 인용했으며, 그 역시 1873년과 1874년 상피세포의 재생에 관해 연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p.290)
"1880년대 초기에 비로소 몇몇 학자들이 유전 형질의 전달을 세포 수준에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760년대에 이루어진 콜로이터(Kolreuter)의 식물 육종 실험들은 최소한 Nicotiana에서는 난자와 정자가 유전적으로 동등하게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난자의 원형질이 정자의 원형질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자명한 관찰이 네겔리로 하여금 당시에 많은 주목을 받은 상상력이 가득한 유전에 관한 이론을 도출하게 하였으나 곧 허구로 밝혀지게 된다." (p.328)
"20세기 초반부에 세포론(cell doctrine)에 대한 기본적인 윤곽이 설정된다. 동물과 식물 조직 모두 근본적으로 세포로 이루어졌으며, 세포는 이분법에 의해서 증식하고, 세포는 막으로 둘러싸인 원형질과 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염색체는 핵에 저장되어 있으며 염색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 가시화되어 세로로 갈라진다. 그리고 염색체가 유전 형질의 운반체이며, 각 염색체는 특정 형태와 특정 기능을 갖는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선택설3과 융합하여 모든 현대 생명과학의 근본 바탕이 되었다." (p.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