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나는 이 책을 만든 좋은여름의 발행인이자 저자다. 처음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2020년,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다. 이동이 차단되고 만남이 멈춘 그 시기에, 독자들은 책을 통해 오히려 낯선 세계로, 마음껏 멀리 떠났다. 이 책의 배경인 스반홀름도 그중 하나였으리라. 눈이 시릴 듯 선명한 자연의 색, 북유럽 특유의 한가로움, 낯설지만 아름다운 밭에서의 노동, 그리고 우연이 빚어낸 인연들까지. 직접 가볼 수 없기에 그 풍경은 더욱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신비롭고 이상적인 은신처로 자라났다.
그 2~3년 동안 나는 마치 동방에서 돌아온 마르코 폴로처럼, 스반홀름에서의 체류기를 한국 독자들에게 전했다. 사적인 체험이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공감과 상상력의 연결고리가 되어, 이제는 “저도 그 책을 읽고 다녀왔어요”, “곧 스반홀름으로 떠나요”라는 소식을 듣는다. 누군가의 여름 계획에 내 이야기가 작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준다.
더는 나만의 비밀 장소가 아닌 스반홀름(물론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경험하길 바란다)은, 1970년대에 설립된 덴마크의 생활공동체다. 약 150명의 사람들이 집, 식당, 차량 등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간다. 농번기에는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자원봉사자(게스트)를 모집해 숙식을 제공하고, 봉사자는 일종의 공동체 구성원이 되어 그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한다.
잡초 한 포기 뽑아본 적 없는 ‘완전 도시형 인간’이었던 나는, 매일 아침 노란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8시까지 밭에 나가, 6시간씩 흙바닥을 기며 일했다. 일은 콩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호박을 나르는 등 단순하지만 매일 달랐고,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밭일’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고된 농사일과는 달랐다. 비교적 쉬운 일을 하면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아름다운 작물들의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온 감각으로 농부의 생활을 익혀가던 어느 날, 넝쿨과 잡초가 뒤엉킨 로즈마리 밭에서 지난한 풀 뽑기를 하며 ‘잡초와 밭, 경험과 인간’에 대해 혼자 사유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조금 달라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연과 가까워졌고, 내 몸을 쓰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스반홀름의 나날은 나의 삶을 실제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과언이 아니다.
그 변화를 가능케 한 힘은 ‘삶을 구성하는 조각들을 다르게 바라보게 해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만들어준 장소, 사람들이었다. 이 책을 덮을 즈음, 독자 여러분이 스반홀름의 풍경 속으로 뛰어들어 낯선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몸으로 일하고, 지금을 만끽하는 생활을 상상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별 다섯 개짜리 리뷰다. 그리고 언젠가 여러분만의 스반홀름 추억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준다면, 그건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후속편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는 음악가 김목인 님과의 협업이 더해졌다. 목인 님은 무려 18년 전인 2007년에 유럽 여행 중 스반홀름에 머물며 나처럼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당시 그는 그곳에서의 며칠을 조용히 관찰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볼펜으로 직접 노트에 쓴 손글씨 일지! 지금처럼 누구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하지 않던 시절, ‘보고, 듣고, 적어서’ 남기는 방식이었다. 그 일지가 주는 감동은 각별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담백한 단어들이 왜 이토록 평화롭고 또 왜 이토록 일렁이는지!
일상의 기록이 가진 힘, 아날로그가 주는 그리움, 조용한 마음의 떨림을 독자들도 함께 즐기길 바란다. 흔쾌히 일지를 공유해주신 김목인 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