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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로 살아간다는 것

1부 침묵을 여는 법
피해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나는 인권 변호사가 아니다
그 폭력엔 이름이 없다
피해의 언어
아이의 세상이 언제나 따뜻하진 않다
가짜니까 괜찮아
거절을 생각하는 변호사

2부 존재를 증명하는 말들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변호사도 가끔은 피해자가 된다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고 나는 그 왕이 끔찍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재미’가 되었다
희생으로 만들어진 법
버텨낸 자들의 이야기
법이 놓친 시간, 정조에 관한 죄

3부 정의가 닿지 못한 자리에서
망치로 머리를 때려도 집행유예
국민참여재판은 피해자에게 유리할까?
왜 사과를 안 할까?
그는 사라졌고, 나는 남겨졌다
통쾌한 복수가 있을까?

4부 서로를 지키는 말들
소진, 하다
저는 피해자를 변론하는 변호사입니다
법률에는 마음이 있다

나가며 | 말이 닿는 자리까지, 사람을 지키는 일
저자 소개
저자 :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법률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범죄 피해자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향했다. 특히 사회적 발언권이 약한 젠더폭력 피해자들, 아동·청소년과 함께하며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을 다수 맡아왔다.
고은, 이윤택, 안희정,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한국 사회에 중대한 질문을 던진 사건에서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법정 안팎에서 쉽게 지워지는 이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지금도 변론을 계속하고 있다.
법률 전문성을 사회적 약자 보호와 성평등 의식 확산에 쓰기 위해, 피해자 지원과 제도 개선에 힘써왔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아동청소년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여성가족부 여성폭력방지위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심의위원,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실, 법무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성인지 감수성 향상을 위한 강의 및 강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20년에는 양성평등 조직문화 조성과 성희롱·성폭력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법무부장관 표창, 2023년에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공로로 서울특별시장 표창을 받았다.
tvN <알쓸범잡2>, KBS <스모킹 건> 등 다수의 방송에 출연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공론화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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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가

2023년 한 해에만 성폭력 44,238건, 아동학대 48,522건, 가정폭력 44,524건이 접수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신고된’ 수치일 뿐이다. 목소리를 내지 못한 피해자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의 규모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하다. 피해자의 고통, 2차 피해, 불완전한 판결, 제도의 무관심 같은 단어들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아졌지만, 그 익숙함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
“혹시 내가 가해자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우리도 누군가의 상처를 외면하거나 덧나게 했을지 모른다. 가해는 의도하지 않아도 발생할 수 있고, 피해는 입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 경계 속에서 물어야 한다.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야 하는가? 이 책은 단순히 그 물음에 답을 주기보다, 질문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말한다. 정의란 법정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어디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응답할지를 선택하는 순간마다 다시 쓰여야 한다고.

과거의 관성이 현재의 고통을 만든다

오늘날에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낡은 사고의 잔재’들은 피해자의 존엄을 위협한다.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판결의 언저리에서 여전히 작동하는 기준들(피해자다움, 정조관념, 가족주의, 공소시효)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구조를 만든다. 가해자 중심의 서사가 피해자 중심으로 많이 옮겨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는 울고 도망치고 약해야만 ‘진짜’로 받아들여진다. 신고 시점이 늦거나 피해 감정을 예상과 다르게 표현하면 ‘가짜’로 의심받는다. 일례로 「정조에 관한 죄」는 폐지됐지만, 피해자의 성적 이력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말로 축소되고, 침묵 끝에 꺼낸 진실은 공소시효 앞에서 무력해진다. 심지어 가해자가 자살하면 공소권 없음으로 즉시 사건이 종결되니, 피해자의 고통은 ‘증명 불가능한 감정’으로 밀려나 버린다.
과거의 도덕 기준과 제도적 관성은 지금도 피해자를 배제한다. 『법정 밖의 이름들』은 그 잔재들이 남긴 균열을 피해자의 눈으로 들여다보며, 우리가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 무엇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지를 차분하게 묻는다.

지금 틀린 것이라면 그때도 틀린 것이다. 여성의 신체 안전과 권리보다 정조와 순결이 우선되는 과거가 정말 괜찮았을까? 물론 현재의 잣대로 모든 과거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반세기 전에 일어난 일을 정당하다고 평가하는 게 옳은가? 그렇게 한 인간을 대해도 괜찮을까? 피의자든 피고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린아이이든 어른이든, 인간에 관한 배려는 당연하다. _102쪽

1부에서는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사회적 통념과 자기검열 속에서 어떻게 침묵을 깨는지를 다룬다. 교제폭력,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직장 내 괴롭힘 등 법률이 관심을 두지 않는 폭력이 어떻게 심화되고 수많은 피해자를 만드는지를 설명한다.
2부에서는 침묵을 깬 피해자들이 다시 한번 입증을 요구받고, 끊임없이 검증당하는 법의 구조 속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폭력을 다룬다. 최말자 사건으로 불리는 혀 절단 사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윤택에 대한 미투, 김태현 살인 사건 등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 제기가 된 사건들을 통해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회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3부에서는 법과 제도가 피해자의 곁에 머물지 않을 때를 기록한다. 국민참여재판의 맹점, 가해자 자살로 인한 공소권 없음, 가해자 고발 후 도리어 고소당해 피해자가 피의자가 되는 경우, 피해자가 아닌 판사를 향한 형식적인 사과 등 자신의 전부를 걸고 싸워야 하는 피해자의 현실을 짚는다.
마지막 4부에서는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들이 무엇을 지키고자 하고, 소진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책은 법은 우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임을 상기시키며, 법의 허점 또한 해석하는 ‘사람’의 영향이 더 크다고 말한다. 법만을 탓하기보다 나부터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회복은 정말 개인의 몫일까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 있는가? 내 말이 무시당하고, 침묵이 강요되고, 고통을 이야기했지만 도리어 의심만 돌아온 적이. 『법정 밖의 이름들』은 바로 그 익숙하고도 서늘한 감각에서 출발한다. 피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말해지지 못한 감정, 회복되지 못한 관계, 응답받지 못한 시간까지도 모두 피해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회복은 누구의 몫인가?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피해자의 회복은 결코 개인의 몫이 아니다. 제도와 법, 사회와 공동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회복은 시작되기도, 지연되기도, 영영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말할 수 있는 권리, 믿어주는 사회, 존재를 지우지 않는 시스템이야말로 회복의 최소 조건이다.
그래서 이 책은 ‘누가 옳은가’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들을 것인가’, ‘어떻게 응답한 것인가’를 묻는다. 저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돕고, 연대자에게는 듣는 법을, 우리 사회 전체에는 함께 회복할 수 있는 감각과 책임을 제안한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단지 피해자만의 것이 아니다. 존중받지 못한 기억을 지닌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며, 그 기억에 이름 붙이고 다시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회복의 언어이자 변화의 언어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법은 언제나 우리 뒤에 있다. 사람이 움직일 때, 비로소 법도 움직인다. 『법정 밖의 이름들』은 그 움직임의 첫 걸음을 함께 내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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