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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처음 마주한 빛

우리가 비롯될 수 있다면
떨면서 영화에 응수하기
독립-연결-슬픔
차선의 직업

영화의 가장자리에 서서

한 권을 만드는 여러 사람 중 하나
누가 당신을 필요로 할까요?
영화, 다른 방식으로 보기
영화 유랑 예찬
인터뷰어가 계단을 오를 때
멀어서 가까운
정면을 바라보기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응달에서 살아남기

좋아하는 일
실패 지점까지
초심자의 경유지 - 칸영화제 취재기 1
살아 있는 사람의 부끄러운 실수
구워지고 식혀지기
외롭고 씩씩한 모임
엉성하게 치밀하게

어둠을 기다리는 사람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이야기에 관한 뜬금없는 지지
토템의 필요
잠드는 영화
앞면과 뒷면의 이중인화
여권이 필요 없는 국가 - 칸영화제 취재기 2
잠적을 위한 장소
키메라 효과 - 칸영화제 취재기 3
저자 소개
저자 : 김소미
1991년생. 보고 쓰는 사람. 영화 주간지 《씨네21》 취재팀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부터 영화잡지 《anno.》의 편집진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매주 목요일마다 기사를 마감하고 활자 밖에서는 관객과 영화를 잇는 발화자로서 GV와 방송 등 다양한 대화 현장에 참여한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모은 삶의 파편을 이정표 삼아왔다고 믿으며, 첫 책으로 산문집 『불이 켜지기 전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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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엔딩크레디트에 대한 존중
‘나’의 작업을 완성하는 ‘우리’의 협업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김소미 기자는 2013년 영화잡지 《anno.》의 창간호에 에디터로 참여하면서 영화를 직접 만들기보다는 영화의 가장자리에 서서 비평의 언어를 더하는 작업을 커리어로 삼게 된다.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잡지를 만들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판매하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에게 집중됐던 시선의 방향이 차츰 타인에게로 확장된다.

저자는 《씨네21》 기자가 된 뒤 마감이 동료들의 협업에 힘입어 이뤄진다는 것을 거듭 깨닫는다. 숱한 고민 끝에 최종 원고를 송고하면 그 원고는 교열·편집 기자에 의해 다듬어져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동료’라는 말은 잡지를 함께 만드는 이들을 넘어서 인터뷰 혹은 취재의 대상인 상대까지도 포괄한다. 2020년 세상을 떠난 고故 송재호 배우의 부고 기사를 쓸 때는 송재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고 봉준호 감독 등 그와 작업했던 이들이 남긴 메시지를 살피면서 글을 완성한다. 저자에게 기사를 쓰는 것은 곧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동료’들은 실수를 품어주기도 한다. 저자는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청탁해서 받은 진은영 시인의 시작詩作 노트 중 절반을 실수로 누락하지만, 진은영 시인은 “10년이 지나도 견디기 힘든 일” 앞이기에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다독인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는 마음, 잡지를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는 눈길은 곧 사랑이다. 저자는 영화의 곁에 서서 영화를 바라봄으로써 그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를 보는 일은 엔딩크레디트에 익숙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주연은 아니지만 주인인 사람들을 위한 흑백의 이미지인 엔딩크레디트는 무언가의 완성에 예상보다도 많은 사람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보존된 시간이다.
―본문에서

‘여권이 필요 없는’ 영화라는 국가의 시민들
나란한 고독에 잠겨 각자의 영화를 완성하다

흔히 영화 보기는 암전된 공간에서 홀로 고독에 잠겨 영화와 만나는 행위로 인식된다. 김소미 기자는 이 책에서 ‘보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경험한 사적인 역사와 영화기자가 되어 마주한 풍경을 경유하면서,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 보기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의 경험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관객으로서의 연대기는 대구에 있는 ‘둘리비디오’에서 주인 아저씨가 추천해준 영화 〈주온〉을 보면서부터 시작된다. 공포영화의 으스스함으로 도피하면서 어린 시절의 슬픔을 달래던 저자는,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와 아녜스 바르다처럼 삶과 영화를 나란히 엮어낸 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영화에 보다 깊이 다가간다. 이때부터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영화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영화 보기의 경험을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영화는 그 어떤 예술보다 “자신의 감상을 집단의 경험 속에 투영해보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매체인 것이다.

영화기자가 되어 스크린과 객석 사이에 서서 영화를 해설하는 자리에 선 저자는 직접 관객과 마주하면서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형성되는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목도한다. 『우정 도둑』을 쓴 유지혜 작가와 함께한 영화 〈클레오의 세계〉 GV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새벽 1시, 100명이 넘는 관객들이 아직 남아 있는 오픈 채팅방의 알람이 울린다. 모두가 잠든 밤, 어느 관객이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문을 두드린 것이다. 관객의 노크는 다정한 답신으로, 음악을 전하는 한 줄짜리 링크로 퍼져간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즐기는 축제인 영화제 역시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다. 취재차 칸영화제에 간 저자는 칸으로 넘어가기 직전 비행기 안에 여권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칸에 체류한 기간 동안 여권이 없는 채로 다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저자는 자신이 칸에 머물 때 “여권이 필요 없는” 영화라는 국가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스크린을 등지고 객석을 향해 선 사람에게 관객은 어느새 심장과 가까워진 목소리를 들려준다. 범람하는 영화 행사가 낳는 일말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감정은 때로 선물처럼 남는다. 한 편의 영화로 모인 낯선 타인들에게 새벽녘 도움을 청하는 사람과 그에게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극장은 유지될 것이라고 낙관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극장에서 못다 한 말을 이어나가고 싶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두드리는 소리를 구령 삼아 닫힌 내 방에서 열린 방으로 나아간다.
―본문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왜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을 사랑하는지 묻는 저자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며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효율을 중시하는 이 시대에 굳이 극장에 가서 꼼짝없이 자리에 붙잡힌 채로 두 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건 시간 낭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시대에 뒤처진’ 이들에게 『불이 켜지기 전에』는 속 깊은 대화 상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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