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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옥의 평화
진영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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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정적

해설 | ‘더 나은 실패’를 위하여_소유정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염승숙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 「없는 미래와 굴착기의 속도」가 당선되어 평론가로 등단했다.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여기에 없도록 하자』 등을 펴냈다. 제45회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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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새 소설집을 소개하며 책의 가장 뒤에 놓인 ‘작가의 말’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인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에서 작가의 미래 또한 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2005년 데뷔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작가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과 20년이 흐른 지금의 작가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언뜻 많은 것이 달라져 보이기도 하지만, 극단의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어쩌면 현재의 염승숙 작가는 20년 전 많은 이의 기대 속에 등장했던 신인 작가 안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20년을 넘어서는 그의 소설가로서의 시간이 특별한 이유 역시, 쌓여온 시간이 가진 가치를 넘어 쌓여갈 시간에 대한 기대에 실리는 무게감에 있는 듯하다.

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에서 독자들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와 거짓 없이 마주하면서, 인간에 대해 그리고 우리에 대해 진실한 자세로” 써내려간 여섯 편의 이야기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작가가 “무해한 각오”로 펼쳐 보이는 ‘미래’를 담아낸 세계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그러나 거짓 없이 혹독한 오늘이다.

“미지의 가능성을 만드는 모든 현재에
염승숙의 소설이 계속 쓰일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미래를 말하지만, ‘모든 일’은 그보다 앞서 벌어진 상태이다. 확언 불가능한 시간을 가리키면서도 사건의 발생을 전제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들에겐 당면한 위기가 있고 그로 인한 불안이 점점 커져가는 탓이다. 또 다른 가정을 하기 위해서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미지의 시간이 아닌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모르고 싶은 지금 이 순간으로. 염승숙의 소설에서 미래에 대한 예감은 현재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
―소유정 해설, 「‘더 나은 실패’를 위하여」에서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에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발표된 여섯 편의 작품이 발표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애초에 소설집의 구성을 이처럼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하나의 객체가 아닌 전체의 일부로서, 내게서 천천히 흘러나왔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이 순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힌다. 게다가 이러한 흐름은 각각의 소설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인물들이 직장과 주거지 등의 장소를 공유하거나 다양한 요소들로 연결되면서 이 소설집 전체가 마치 “원 테이크로 촬영한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소유정)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소설 속 배경과 그 안에서 그려지는 삶의 모습이 서울 한구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나 혹은 나의 지인이 작품 속 어딘가에 놓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프리 더 웨일」과 「믿음의 도약」은 2021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발표된 작품으로, 코로나19 시국을 배경으로 한다. 팬데믹 상황의 단절과 불안 속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불평등과 차별, 배제와 갈등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프리 더 웨일」의 수경은 남편 우상우의 죽음 이후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오직 아이를 잘 길러내는 책임만을 생각하며 사는 인물이다. 뒤늦게 들어간 회사에서 자리보전을 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수경은 회사의 부조리에 눈감고, 동료들로부터 받는 수치와 모욕을 견뎌내며 무리에서 동떨어진 삶을 이어간다. 그런 수경에게 “대책 없는 낙관과 무방비한 희망이었대도” 내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비루한 다정함”의 모습을 한 소설은 멀어진 지 오래다.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무정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남편 우상우의 부재 이후 더는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느꼈던 이상한 아름다움을 육아에서도 발견한 그의 모습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완전히 다른 노래를 부르려는 고래”를 떠올리게 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처럼, 그 노래가 닿게 될 곳이 희망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믿음의 도약」은 전세 만기가 돌아와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은 철과 영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이들 부부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언제 감염이 될지 모르는 펜데믹의 불안과 공포는 이들의 삶 저변에 늘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에 다름 아니다. 영은 수십 개의 영양제를 챙기며 그것만이, 아니 최소한 그것이라도 있어야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불안과 공포에서 서로를 염려하고 챙기는 것은 오직 철과 영 그리고 아이뿐이라고 수시로 상기하면서. 하지만 그렇게나 많이 챙겨 먹은 영양제가 결국 제대로 흡수되지 못하고 빠져나가 또 다른 약을 추가해야 되었던 것처럼, 고민 끝에 마련한 자신의 아파트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연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돌연 험하고 매서워지려는” 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은 그들 앞에 선 아이였다.

「구옥의 평화」에서 구옥은 남들과 다른 외모, 명예롭지 못한 교사로서의 명예퇴직 과정 등 모욕의 시간을 견디며 살다가 조금씩 무언가를 잊어가는 노년으로 접어든 여성이다. 하나뿐인 딸도 기약 없는 안부만 물을 뿐 더는 집에 찾아오지 않는, 쓸쓸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혼자 죽더라도 빨리 발견되면 좋”지 않냐며 먼저 다가와준 유자이다. 그러나 “나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유자는 차별과 배제가 극으로 치달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었고,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러한 유자의 신념이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면서 구옥도 연루가 되기에 이르는데, 구옥은 평생 자신을 지켜왔던 “아무렇지 않아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는 믿음으로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진영의 논리」는 구옥의 딸 진영의 이야기이다. 「프리 더 웨일」에서 수경에게 모욕을 주곤 하던 ‘전’의 연인이기도 한 진영은 평범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전이 실은 “이제껏 기피하고 경멸해왔던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눈치채지만, 내심 바랐던 평범한 미래로 다가가기 위해 그런 것들을 짐짓 모른 척한다. 그것은 구옥에 의해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지 않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길러진 탓이기도 했다. 엄마인 구옥과 연인인 전은 진영에게 같은 방식의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진영은 결국 이렇게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앗아간 사람들과의 결별을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뱃속의 아이를 잃고 온라인상에서 타인들의 비난을 받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진영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어깨에 무거운 택배 박스 두 개를 지고 2리터짜리 여섯 개들이 생수 묶음까지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채 문을 잡아주는 택배 배달원이다. “타인에게 우연히 내보인 선의의 태도를 두고두고 곱씹”던 진영은 그러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자신의 논리로 배척하는 사람들을 또한 확인하면서 이 세계의 불균형에 비뚤어지고 만다.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각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그들은 인물들의 삶을 더욱 혹독하게 만드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자 삶의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아이’가 작품 속 인물들의 미래에 작가가 보내는 다정한 상상의 씨앗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고등학교 때 함께 꿈을 꾸며 우정을 쌓았던 친구 셋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둘이 되고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다른 길의 삶을 살다가 우연히 같은 건물에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북극성 찾기」도 내 아이와 친구의 아이 이야기로 옮겨가고, 올해 봄 발표한 최근작「한낮의 정적」 역시 아이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부조리 앞에 무기력에 빠졌던 엄마 주이가 남편과 아이 곁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은 “염승숙의 소설에서 모든 시작과 끝은 현재에 새겨진다”고 해설에서 밝히고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염승숙의 소설에서 특별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여기는 미래 역시 그것을 알아차리는 건 그때의 현재일 테니까. 결국 미래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지금 여기에서 시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라는 현재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지금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답을 찾으며 미래를 상상해가는 우리에게 다정한 시선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있다고. 서로를 무조건 믿고 의지하는 가족, 대가 없이 선의를 베푸는 타인, 지난날의 상처를 공유하며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친구……그러니 불안과 공포에 스스로를 가두고 너무 오래 앓지 말고, 세상의 모욕을 그저 견디지 말고, 침묵을 택하지 말고 빛으로 나와도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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