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라니를 처음 보러 온 카야는 잠이 덜 깨 비몽사몽이었다. 난생처음 외박을 해서 잠을 설쳤단다. 이제 언니지만 아직 아기인 카야는 동생보다는 하루 동안 보지 못한 엄마를 더 그리워한 듯 보였다. 아기처럼 엄마 품에 폭 안겨 나름대로 안정을 찾은 뒤에야 라니를 마주했다. 며칠 전까지 배불뚝이던 엄마의 배가 쏙 들어가고 아기가 태어난 게 신기한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항상 고팸의 주인공이던 카야가 서운하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우와! 언니가 되었구나. 카야, 축하해!”, “우리 카야 닮아서 아기가 너무 예쁘네.” 프리티 할머니와 광덕킹덤 할아버지도 들어오며 카야의 기분부터 살폈다. 모든 어른이 카야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부단히 애썼다. 평소에도 카야에게 다정한 패밀리지만, 오늘은 더욱 신경 쓰며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울 카야에게 조심스럽게 축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 pp.34-35 「배불뚝이 엄마 그리고 동생」 중에서
우리 집 둘째 라니, 사실 괜히 이름을 ‘라니’라고 지었나 싶을 때도 있다. 예전부터 예쁘다고 생각해왔던 이름이라 둘째가 딸이라는 걸 알자마자 현규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현규가 “고라니?”라고 되묻는 순간, 한국에서는 이름보다 성을 먼저 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고라니’라는 조합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한동안 다른 이름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름 자체가 예쁘고 호주에서 생활하면 고라니라고 놀림받지 않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이번 장의 포인트를 고라니에 둔다. 이름보다 더 고라니 같은 건 바로 라니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정말 고라니처럼 운다. 좋아도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싫어도 “으앙!” 하고 울고, 부끄러워도 고라니 소리를 내며 찡찡거린다. 둘째라서 그런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이런 아이의 모습이 부모로서 웃길 때도 있고 솔직히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가끔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 pp.52-53 「‘고찡찡’이라고 불러주세요」 중에서
나는 호주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그래서 나와 아이들은 호주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아이들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란다. 문화는 부모가 어떤 언어로 말하고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만큼은 한국어만 사용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카야는 누가 국적을 물으면 “I am Australian. But I have Korean blood(저는 호주인이에요. 하지만 저에겐 한국인의 피가 흘러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유튜브도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어릴 적 카야는 ‘팬’이라는 단어를 ‘편’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내 편이 진짜 많아”라고 말하곤 했다(나름 말이 되는 뉘앙스다). 이제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독자코 이모, 삼촌이라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 p.92 「호주, 그리고 한국」 중에서
명절이면 보통 한국인들은 친가와 외가를 번갈아 방문하거나, 요즘엔 아예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고팸은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비행기를 열 시간 가까이 타야 닿을 수 있는 호주에 살고 있다. 그것도 한국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형태의 대가족으로 말이다. 사돈총각과 밥을 먹는다든가, 시누이의 시누이 가족과 친하게 지낸다는 낯선 전제를 누가 믿을까? 그 어려운 것을 우리 고팸은 아주 자연스럽게 해낸다.
--- pp.108-109 「지구 반대편의 K-명절」 중에서
2025년 1월 3일 오후 10시 31분, 고팸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어줄 셋째가 태어났다. 누군가는 구성원이 꽉 채워져 우리 가족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하지만, 살다 보니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셋째의 한글 이름은 고운, 영어 이름은 카이(Kye)다. 첫째 카야와 이름이 비슷해 고민했지만 태어나 보니 아이에게 카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렸다. 호주에서 ‘Kye’라는 스펠링을 가진 남성들을 보면 외형도, 성격도 멋진 사람들이 많다. 우리 막내도 ‘외면도 내면도 멋진 사람으로 자라라’는 마음을 담아 이름을 정했다.
--- pp.182-183 「마침표 그리고 새로운 시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