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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고래는 얼굴이 없고 경계도 없다

1 차별의 언어, 차이의 몸짓
2 편견에, 갇히다
3 경계에 선 사람들
4 함께이지만, 혼자
5 시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에필로그 - 진정한 분별은 ‘차이’를 깨닫는 것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자 : 박천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KBS 방송 프로듀서로 입사해 시사 정보 교양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해 왔다. 특히 KBS 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FM 104.9Mhz)에서 장애인과 이주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소수자들이 겪는 일상적 차별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시각장애인의 삶을 다룬 실험 다큐 <소리로 보는 세상>으로 한국 PD 대상 실험정신상과 New York Radio Festival 금상을, 장애인을 향한 편견의 시선을 다룬 <장애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으로 한국 방송대상 라디오 부분 최우수상을 각각 수상했다.
지독한 세상의 소음을 견뎌 내기 위해 매일 걷고, 쓰고, 생각하며 별일 없이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주요 저서로는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쫓겨난 권력자』, 『크게 라디오를 켜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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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차이를 지우면 차별이 사라질까?

‘오른’은 ‘옳은’이 그 어원이고 ‘왼’의 원래 뜻은 ‘그르다’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right와 left의 어원 역시 비슷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많이 유연해진 사회 분위기이지만, 꽤 오랜 세월 동안 왼손잡이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오른손에 창을 들고 왼손에 방패를 들던 오른손잡이들이 왼쪽에 심장을 보호하기에는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는 설이 있다. 반대로 왼손에 창을 들고 오른손에 방패를 들던 왼손잡이들은 상대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계통의 유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른손잡이의 빈도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신빙성 있는 자료인지는 모르겠으나, 태생적 특질로 나누어지는 다수와 소수라는 지극히 단순한 구분이, 옳고 그름의 의미로 변질되어, 왼손을 경시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독사는 먹잇감을 마취시키는 맹독을 가지고 있고, 독이 없는 뱀은 먹잇감의 몸통을 휘감아 숨통을 조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같은 종의 동물임에도 진화의 방식이 다른 이유는,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윈과 장자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그들을 지금까지 자연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유전형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차이가 차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오른손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는 왼손이 터부시 되었듯. 차이의 사이에는, 때로 비상식적인 도덕적 명분이 자리하고 있거나, 때로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공허한 양해의 명분만이 나뒹군다.

책 속에서

사람 몸에 있는 여러 가지 호르몬 가운데 멜라닌(melanin) 색소가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멜라닌 색소는 검은 색소를 의미한다. 여기서 mel은 검다 혹은 어둡다는 의미로 남태평양 멜라네시아(Mela-nesia)도 이곳 사람들의 검은 피부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라틴어 ‘malus’에서 유래한 접두어 ‘mal’은 대체로 ‘어둡다’와 ‘나쁘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영어 단어에서 mal-을 접두어로 쓰는 단어 대부분은 ‘악’, ‘불량’, ‘부전’, ‘이상’ 등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 p.5

사회심리학자들은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사회적인 정보 처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실제로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고 어떻게 교묘하게 괴롭혀야 하는지 알려면 상당한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약자를 괴롭힐 때는 주로 자존감이 낮은 상대를 표적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자신은 지위를 유지하며 자존감을 비현실적으로 높이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잔기술에는 능하지만 정작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상대가 괴롭힘을 당할 때는 일부 가학적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 p.27

‘자신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는 지옥보다 나을 게 없다’라는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말처럼, 인간의 존엄성은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혹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와 같이 타인과의 관계에 근거하지만, 결국 자신이 자신을 대하는 국면, 자신과의 대면에서 결정적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이것을 존엄의 첫걸음이라 규정한다. -p.44

칸트 철학의 대가인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中島義道)는 이런 상황을 두고 과연 나는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라는 신념을 품고 있는가? 나는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인 것은 아닌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며, 이런 사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으니 자신은 쓰레기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은 아닌가?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라고 권한다. 자기기만에 능숙한 인물이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차별과 편견의 덩어리들을 쉽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p.73

누군가는 가축의 내장과 근육을 자르고, 쏟아지는 분변의 악취를 온몸으로 참아야 하고, 또 누군가는 이들의 노고 덕분에 맛있고 영양가 있는 고기를 식탁에서 마음껏 맛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살생의 업보를 감내하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도 견뎌 내야 하는 이들을 불가(佛家)에서 말한 보살들이라고 생각한다. -p.129

80년대 초반까지 집 안에 컬러 TV를 소유하고 있는 집안은 흔치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볼 수 있게 됐는데, 이럴 때는 보편적(general) 보급이라 말한다. 반면에 장애인 화장실이나 교통약자를 위한 이용 시설들은 전화나 냉장고처럼 우리 주변에 ‘보편적인’ 시설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로 수렴되는(uni-versal)’ 유니버설의 기본 정신과 다시 조우(遭遇)하게 된다. -p.141

우리 사회처럼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사회에서는 정서적 양극화도 심화가 된다. 애플의 통계분석가인 입타치 렐케스(Yptach Lelkes)는 심지어 한 쟁점에 관해 실제로 상대 정파와 의견이 거의 다르지 않을 때조차, 당파적 적대감은 상대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정당에 걸친 이른바 ‘교체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파괴한다. -p.145

거짓 교육은 경계 안의 ‘우리’만을 살필 것을 강요하지만, 정작 진정한 교육은 벨 훅스의 말처럼 ‘경계 너머’를 살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다소 힘겹지만, 이해의 근육을 키우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당신의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무모한 분별의 때를 벗으라고 말한다. 경계의 벽을 너머야 진정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p.150
시각장애인들에게 ‘소리로 본다’는 개념은 단순히 문학적인 수사(修辭)가 아니라 과학적 개념이자 실존적 의미를 지닌다.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시각장애인 1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에서도 응답자의 69%는 시각장애인이 정안인(正眼人)에 비해 소리를 더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것이라고 응답했다. -p.154

우리말에 ‘화냥년’이라는 말은 이 ‘더렵혀진 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화냥’이라는 말은 병자호란 때 만주족의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하여 여인네를 겁탈하고 ‘음탕한 계집’을 뜻하는 만주어 ‘하얀(hayan)’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역시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여인들이 오랑캐들에게 만신창이로 몸이 더럽혀진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라는, 다시 말해 환향(還鄕)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피해 여성에 대한 이런 폭력적 시선과 언어들은 순수와 순결을 내세운 남성들의 또 다른 폭력성을 반영하고 있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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