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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1부.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길 위를 걷는 노인
조건의 산물
가불된 애도
나로 남기 위한 결심
쿠키의 위안
목요일의 샴페인 Ⅰ
축제와 죽음
친절한 감옥, 불편한 자유
존재의 우아함에 대해서
세월의 침전물
손끝으로 더듬는 시간
거절의 기술
노인의 침묵
완벽하고 공정한 인생의 룰
목요일의 샴페인 Ⅱ
사랑하는 순간, 이미 애도는 시작된다
죽음보다 더 깊은 사랑
존엄의 무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
기다림이라는 모순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
거미 여인
시골집 추억
시간의 멜랑콜리
벨 메르, 벨 피
사라지지 않는 맛
의존이라는 권력
시간의 맛
아름다운 거리
나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더 또렷해진다
식빵 반죽
아버지의 부고
제페토의 무덤
목요일의 샴페인 Ⅲ
날짜가 정해졌다
목요일의 샴페인 Ⅳ
고요한 결심
마지막 만찬

2부. 똑같은 삶이 없듯, 똑같은 늙음도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행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시간 되감기
아를레트의 레시피
텅 빈집
부재와 존재
청개구리의 울음
슬픈 건 고독한 죽음이 아니다
기억의 정원
벗어날 수 없는 꿈
떠나는 연습
아버지의 전화번호
어머니와 나
혼수 그릇 세트
짜장면에 대한 단상
죽음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들
지상에서 천국으로
어머니의 유언장
피아노 수업
백오 세 생일파티
유품 정리
내가 사랑하는 풍경
진화하는 인류와 관계 맺기
귀한 손님
늙음도 저마다 다른 문을 가진다
이사하는 날
저자 소개
저자 : 이화열
섬세한 시선과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는 필치로 일상을 담아내는 에세이스트.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 중 파리지앵인 현재 남편을 만나 파리에 정착했다. 음악 듣고, 요리하고, 글 쓰는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고요한 결심》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다. 지은 책으로 《서재 이혼 시키기》, 《지지 않는 하루》,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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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저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

작가는 시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조력사 결정을 마침내 존중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은 무척 컸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거주하는 프랑스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안락사(의사의 손을 빌려 죽음에 이르는 것)나 조력사(의사의 도움을 받지만 스스로 마지막 버튼을 누르는 것)가 모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승인 받는 일’과 ‘국경을 넘는 일’을 함께 준비하며 자신이 죽음에 조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도 고스란히 느낀다.
“정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까?”
“이건 삶이 아니야. 너도 알잖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정신이 또렷할 때 이 고통을 끝내는 일이야.”
낯설고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의 시간인 세 달 동안, 시어머니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무척 사랑하고, 무임승차를 하거나 빨간불 한번 무시한 적 없던 그녀가 법을 어기는 일조차 감수하며 국경을 넘어 자기 자신으로 남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결심한 것을 보며, 작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요한 결심》은 조력사나 안락사에 대한 찬반을 묻는 책이 아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자기 삶의 언어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

어떻게 나이 들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살아있는 내내, 우린 ‘과거’ 혹은 ‘젊음’을 기준으로 비교한다. (…) 육체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수정 가능하다는 전지적 환상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늙음을 이해하게 된다. 만약 ‘미래’, 그리고 ‘늙음’을 기준으로 산다면, 매일 조금씩 쇠락하는 느낌을 더 잘 견딜 수 있을까.” _ 본문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살아온 대로 죽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작가는 노년을 맞이하는 다양한 삶의 태도를 지켜보며, ‘늙음도 저마다 다른 문을 가진다’고 말한다. 삶에 부드럽게 조응하는 문, 들어가기 위해 비밀번호가 필요한 문, 단단히 잠긴 문. 어떻게 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더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골몰하지만, 우리는 나이 드는 삶, 이른바 노년에는 관심이 없다. 때문에 똑같은 삶이 없듯, 똑같은 늙음도 없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그러나 누구나 노년에 ‘존엄’과 ‘자유’를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고독사를 걱정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늙음이 닥치기 전에 타인에게 어떻게 의존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결국 이 질문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그날 이후, 아를레트가 말했다.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을 거다.” 그때 나는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 담긴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깐깐한 노인의 고집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말은 의료에 자신을 내맡겨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장치에 매인 채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을 거부하는 선언, 끝까지 자신으로 남겠다는 결심이었다. _30쪽

“나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더 이상 파이를 굽지 못하는 그녀의 부엌은 따뜻한 온기가 사라졌다. 이제 그녀는 간병인과 가사도우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쩌면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_32쪽

사람들은 늙음이라는 불편한 거울 앞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안에 고유한 삶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아이처럼 챙겨주지만, 대화하지 않는다. 배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회피다. 침묵의 방에서 노인을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눈을 맞추고 질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_61쪽

조력사, 말 그대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조력하는 일이다. 머리는 그 고통을 끝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죽음에 동조한다는 죄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이런 고통스러운 절차 없이 아를레트가 모든 시간을 자기 안에 감춘 채, 사랑하는 이들을 밖에 둔 채, 혼자 마지막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죄책감과 두려움은 줄겠지만,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을 거부당한 상실감은 더 컸을 것이다. 이 작별 연습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끝까지 서로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적어도 우리에겐, 배웅할 시간이 있다. _72-73쪽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그 결정을 누가 하느냐보다 어떻게 평온하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그림자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을 맞이하듯,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상을 빌리자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죽음의 가시에서 독을 빼는 일’과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닮아있다. _83쪽

인간이 자신에게조차 소외되는 이유는, 멈추고 존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데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답으로 차 있다. 이겨내는 것보다 느긋해지는 것. 나이가 들면서 소리에 둔해지더라도 고요를 들을 줄 아는 것.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고요함 속에 머물러 본 적 있던가. 창문 너머로 펼쳐진 구름바다를 본다. 이 생은 무엇을 남길지가 아니라, 얼마나 가볍게 떠날 수 있는지를 묻는 여정 같다. _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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