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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의 사랑 007
나의 사촌 리사 043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요 071
하루미, 봄 097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127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 157
미래의 윤리 187
약혼 219
헤일리 하우스 257

해설 | 소영현(문학평론가)
이야기로 저널리즘 하기 289

작가의 말 311
저자 소개
저자 : 박민정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백년해로외전 』 『호
수와 암실 』, 중편소설 『서독 이모』 『작가의 빌라』, 산문집 『잊지 않음』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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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강렬하게 쏟아지는 사랑 속에서 한 번은 반짝였던 사람,
모든 관심과 화사함이 씻은듯 사라지고 이후의 삶이 주어진 사람,
살아가는 것이 곧 실패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
그 모두의 지금을 위한 견결하고 냉연한 아홉 편의 이야기

표제작 「전교생의 사랑」은 풍성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한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 코드를 강력히 환기시키는 박민정 특유의 강점이 발휘된 작품으로, 1990년대에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인물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과거를 재의미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소설의 주인공 민지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생방송으로 지켜본 백호영화상”(13쪽)을 수상하는 등 아역으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중 ‘라이벌’ 세리의 급부상으로 ‘지는 별’이 되어 연예계를 떠난다. 그렇다고 하여 세리가 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나갔느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니다. 세리는 뮤직비디오 주인공부터 광고모델까지 섭렵하며 꽤 많은 주목 속에서 민지보다 오래 성공했으나 “그만큼 더 늦게 실패했기 때문이었다”(16쪽). 더군다나 스무 살에 스캔들이 터지면서 세리는 “실패한 아역의 가장 나쁜 예시”(같은 쪽)로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종류의 실패를 겪었기 때문일까. 성인이 되어 우연히 재회한 그들 사이의 라이벌 구도는 허물어져 있다. 아니, 애초에 그 구도는 그들이 아닌 어른들이 덧씌운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함께 참여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서로에게 의지했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거장으로 칭송받던 감독이 만든 <전교생의 사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었던 이유는 촬영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순진무구하고 예쁘게’ 존재할 것을 강요당했기 때문이었다. 어린 두 사람은 권위를 지닌 감독의 지시에 따라 불유쾌하고 비자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였기에 개봉한 당시에는 보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 그 영화가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상영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때 우리가 방점을 찍어야 하는 단어는 ‘고전’이 아니라 ‘재해석’일 것이다.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여전히 현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고전’이라는 말에는 한편으로는 시간에 의해 생긴 불순물과 더께 또한 달라붙어 있다. 그 불순물과 더께를 벗겨내는 일이 민지와 세리에게는 ‘재해석’의 과정일 것이다.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지금은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소위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메가미’ 연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나의 사촌 리사」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요」 「하루미, 봄」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에서 이어진다. 네 작품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일본의 삼인조 걸그룹 메가미가 해체된 이후 세 멤버의 일상을 따라가며 ‘누군가의 실패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연작의 시작에 놓인 「나의 사촌 리사」에서 소설가인 ‘나’는 글쓰기의 슬럼프를 사촌 리사를 통해 돌파해나가고자 한다.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아버지는 일본인이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기에”(51쪽) 일본 사람인 리사, 일본 최대의 아역 배우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지금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리사, 그러니까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성공과 실패의 낙차가 커다란 리사의 삶은 ‘나’가 느끼기에 글로 쓸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막상 도쿄에 가서 마주한 리사는 ‘나’가 상상한 ‘실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일구어나가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
‘나’의 예상을 벗어난 리사의 ‘진짜’ 삶, 그것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면서 작품은 긴장감으로 팽팽해진다. 인상적인 점은 문학평론가 소영현이 짚어주었듯이 “각각의 소설이 서로의 보완재”(298쪽)가 된다는 것이다. ‘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글의 서사를 위해 부러 외면했거나 미처 보지 못했던 리사의 삶은 「나는 지금 빛나고 있어요」에서 리사가 스스로 화자로 등장하면서 「나의 사촌 리사」에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려지고, 리사가 자세히 알지 못했던 또다른 멤버 하루미와 마나의 삶은 「하루미, 봄」과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를 통해 드러난다. 네 편의 연작은 여러 사람이 마치 배턴을 이어받듯 새로운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돌림노래처럼 입체적인 양감을 소설에 불어넣는다.


“우리에겐 빼앗길 좋음이라는 것도 없어.”

한편으로 박민정은 시대의 풍경이 인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진 만큼 최근 몇 년간 우리를 세차게 휩쓸고 간 ‘팬데믹’의 한복판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은 “감염병 사태가 2차 대유행에서 3차 대유행으로 이동하던 무렵 (…) 강남으로 이사”(167쪽)한 젊은 부부의 모습을 통해 ‘강남’이라는 한국사회의 상징적인 지층이 어떤 방식으로 두터워지고 견고해지는지 살핀다.
「미래의 윤리」는 팬데믹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공간 중 하나인 학교로 시선을 옮기면서, 줌 수업이 새로운 수업 방식으로 자리잡으며 대두한 대학 내 윤리 문제를 다룬다. 지방 출신의 서아는 대학교에 합격한 것을 계기로 부모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에 신축 원룸을 구한다.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이 펼쳐지리라 기대하지만, 미증유의 팬데믹 사태 앞에서 개강은 미뤄지고 서아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엄마도, 아빠도, 사촌언니도 모두 누렸던 3월의 대학 생활을 박탈당했다는 생각”(201쪽)에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던 즈음, 황지우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온다. 황지우는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셀럽’이자 학과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신임 교수로, 자신이 서아의 지도교수라고 밝히며 비대면 수업 기간 동안 전화 상담을 이어가겠다고 알려온다. 그뒤로 정기적으로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으며 어색하게 전화 상담을 이어가던 중 황지우의 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강의 PPT가 형편없는데다 어떤 수업 자료는 다른 교수의 논문을 표절해서 만들었다는 것. 이렇듯 박민정은 팬데믹이 일상의 곳곳에 침입하여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윤리 문제를 심문해왔다는 것을 인상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쇼 비즈니스 업계를 둘러싼 문제부터 팬데믹으로 촉발된 새로운 이야기까지, 박민정은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 한국 내부의 돌출적이고 기형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서사의 겹을 층층이 쌓아나간다. 소설 속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어떤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이야기의 끝이 실패가 아니라고 우리가 믿게 되는 데에는, 그렇게 단단하게 쌓이는 지층 속에서 누군가를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박제하려는 시도가 부서지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써 누군가의 삶을 재현하는 일에 수반되는 찌릿한 고통, 그럼에도 한 발 깊숙이 다가가려는 견결함이 이번 소설집에서 뜨겁게 빛난다.

★

사회파 소설가들에게 박민정은 근거리의 선배다. 『전교생의 사랑』에도 여러 사회 이슈가 등장한다. 아이돌, JR철도노조, AV, 오타쿠, 안아키, 강남 이너 소사이어티…… 키워드를 듣는 순간 당신이 떠올릴 예상을, 그러나 박민정은 깬다. 그러면서도 흥분에 찬 기대는 충족시킨다. 날뛰지 않는 덤덤한 정조만으로. 초반에 놓인 연작소설을 읽으며 인물들에게 편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슬프고 억울하고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울부짖어야 할 텐데 그들은 울지 않고 차분히 편지를 보내온다. 그들이 울음을 참기에,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체념하기에, 내 쪽에서 울 수 있었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 정신, 울지 않고 참기에 더 선명히 느껴지는 인물들의 상처, 깔보기 쉬운 유형의 인간을 복잡하게 바라보는 지성과 관대함. 훌륭한 사회파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확인해보시라. 그거 다 여기 있으니. _이미상(소설가)

비비언 고닉을 빌려 말하자면, 박민정의 소설은 거리 두기를 성취하고 정직한 서사화를 추구하면서 진실을 말하는 신뢰할 만한 화자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전교생의 사랑』의 이러한 행보는 더없이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험들을 통해 더 넓고 보편적인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우리의 시야가 전보다 더 넓어지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한다. _소영현(문학평론가)

두껍고 촘촘한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도 이야기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죽음을 가깝게 통과하면서 그 사실을 뜨겁게 실감할 수 있었다. 목숨도 운명도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으므로,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한숨 섞인 미소 한번 지으며 가볍게 떠들 수 있다면, 그게 우리 삶이라면 정말 좋겠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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