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성민이는 오늘은 물러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찾아뵙지요.”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쓴 『회남자』에 나오는 “실즉투 허즉주”(實則鬪虛則走)와 같았다. “병력이 강하면 싸우고, 병력이 약하면 물러나 후일을 꾀하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주(走)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 물러설 줄 알고, 그칠 줄 아는 건 큰 지혜다. 부족하다 싶으면 채우는 게 순서다. 공을 이루면 한 발 물러서는 게 덕이다. 무딘 칼은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드는 과정인 벼리는 게 우선이다. 급할수록 한숨 고르는 게 지혜다.
성민이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여산으로 피신시킨 후 산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오직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다.
1장 _ 〈2. 괴물 공산주의〉 중에서
“그런데 네 년이 왜 백상을 따라 삼례로 갔느냐 그 말이다.”
“면장님, 저는 술장사 하는 년입니다. 백상 같은 분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건달들에게 시달려요. 일본놈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고, 그저 노리개 취급하니 할 수 없이 삼례로 갔어요.”
“빠가야로! 이 멍청이 같은 년아!” 면장은 욕설을 퍼부었다.
“김상! 보시오. 월선이는 술장사 하러 삼례로 왔다고 하지 않나. 내 사촌동생 석봉이도 삼례로 이사 와서 양조장을 지어서 합법적으로 곡주를 만들어 팔았다네.”
사실, 김영선 면장은 작심하고 술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과거에 묶여있었다. 자신이 면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오직 군수로 승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절친일지라도 자기 승진에 걸림돌이라 생각되면 친일파나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훈장이라도 받으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백석진이었다. 그를 희생양으로 정하고 꼬투리를 잡기 위해 음흉하게 마련한 자리였다.
1장 _ 〈4. 너 죽고 나 살자!〉 중에서
보통 혼인할 때 궁합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미 개화된 두 집안에서는 궁합 보는 절차를 생략했다.
청혼이 성사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혼례 전에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혼수함을 보내는데 이를 납폐(納幣)라 했다. 혼수함에는 혼인을 약속하는 혼서, 청·홍색 비단, 사주단자, 오방 주머니 등을 넣었다. 함을 지고 가는 함진아비는 부부 금실이 좋은 사람으로 정하고, 잡귀를 막기 위해 얼굴에 검댕을 칠했다. 함진아비가 신붓집에 들어가기 전에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은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는 의도다.
전통 혼례 시 신랑은 양이므로 동쪽에, 신부는 음이므로 서쪽에 선다. 폐백 때도 시아버지는 동쪽에, 시어머니는 서쪽에 앉는다.
2장 _ 〈6. 사랑의 불씨〉 중에서
성민 어머니가 동아실방으로 건너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라냐? 신방에 구렁이가 나타나다니! 사람들 말로는 구렁이가 그 집의 재산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하던데….” “발 없는 말이 천 리 길을 간다”더니 구렁이 이야기는 곧바로 처갓집에까지 알려졌다. “새서방이 지혜롭게 잘 처리했네. 성경에서는 뱀이 하와를 유혹하던 사탄이거든? 하필이면 사탄이 우리 막내 덕주의 첫날밤을 망쳐 놓았을까? ”
2장 _ 〈8. 수호신〉 중에서
김매기가 끝나면 어김없이 동네 잔치인 술멕이가 시작되었다. 김매기 후에는 나락에 꽃이 피는데 이때 사람이 논에 들어가면 나락이 열매맺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며칠간 짬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동네의 남녀노소가 어울려 풍악놀이를 한다. 이는 풍년을 기원하며 집집마다 있다고 믿는 동네의 잡귀들을 쫓아내는 축제다. … 술멕이 날은 글자 그대로 ‘술을 멕이는 날’이다. 동네 유지들이 낸 후원금으로 술과 음식을 장만한 후 이틀간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풍악을 울렸다. 태평소부터 꽹과리, 북, 장구, 징, 소고까지 동원하여 10여 명이 신명나게 풍악을 울리면서 가가호호를 돌면 집에 있는 악귀들이 놀라서 도망간다고 한다. 각종 악귀들이 잡신들을 데리고 떠날 때 그 집에 있던 우환과 걱정 근심이 사라진다고 동네 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2장 _ 〈10. 술멕이 잔칫날〉 중에서
잊을 만하면 호수에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 대부분 남녀 문제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무당들이 와서 굿판을 벌이고 위령제를 지냈다. ‘진혼제’(鎭魂祭)라 하여 ‘영혼을 위로하고 망자의 넋을 달래는 굿’이었다. 무속 신앙에서는 사람이 죽어 삶에 미련이 남으면 영혼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돈다고 믿었다. 그래서 원귀가 되지 않도록 한(恨)풀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장 _ 〈12. 여산은 옛고을〉 중에서
“주님, 우리 식이가 훌륭한 목사님이 되게 해주세요.” 그 기도는 하늘로 올라가 식이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별 하나를 만들어 냈다. 그날의 피눈물은 사라졌지만 그 사랑은 자국이 되어 남았다.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줄 사람,
누군가의 상처 난 종아리를 감싸줄 따뜻한 사람,
억센 바람과 비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
어떤 가난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어떤 비난도 품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식이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
3장 _ 〈15. 장롱 속의 뭉칫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