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한 송이 흰 백합화」는 6·25 전쟁 때 대구 피난 시절의 작품으로 작사 김호(金湖), 작곡 김성태로 알려졌으나 김성태의 아호(雅號)가 김호(金湖)이기에 동일인이다.
식이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가슴에 깊이 박혔고, 그 후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당시에는 남녀 합반을 하더라도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성별을 구분해 앉혔다. 식이는 통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천사처럼 보였다. 넓직한 얼굴에 해맑은 웃음을 짓는 모습이 예뻤다. 하지만 함부로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마음만 있다고 남녀 교제가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예배당에서 남녀가 눈이 맞으면 장로님들로부터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4장 _ 〈1. 더 넓은 곳〉 중에서
“식이는 밀린 수업료를 언제까지 낼 수 있지?” 오늘따라 깡마른 담임선생님의 모습이 한국인을 옥죄어 세금을 착취하는 일본 순사같이 보였다. 아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그룹 과외를 하고 있는 당사자였다는 선입견 때문이리라.
“오늘 오후 수업은 빼먹고 집에 가서 수업료를 마련해 갖고 오너라. 종례 시간까지 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무작정 집에 간다고 없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학교에서 식이가 살고있는 평화동 집까지 갔다 오려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잘하면 종례 시간 전에 돌아와 한두 시간은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다 보니 식이 말고도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보통 한 반에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한 아이들이 7~8명은 되었으니….
“할머니이~ 나 왔어요!” “아니! 식이 아니냐?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책가방은 어데 두
고?” 할머니는 반색을 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식이는 수업료 때문에 쫓겨 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무 말도 못했다.
4장 _ 〈3. 돈 없는 서러움〉 중에서
“주여! 기도의 문을 열어주십시오”를 반복한 지 10여 분이 지났을까? 기도의 문이 활짝 열렸다. 기도의 문을 통해 식이가 다른 식이의 참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바울이 말한 ‘내 안의 나’였다(Das ist Ich in mir). 식이 눈앞에 펼쳐진 기도의 활동사진에 보이는 그 자신은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고 바리새인이고 위선자였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오면서 교회 청소를 하여 최 전도사님께 칭찬받은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그 일은 칭찬받기 위해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한 것들이었다. 드디어 자신을 제3자로 볼 수 있게 되었다.
4장 _ 〈5. 회개와 거듭남〉 중에서
“선거는 공정해야 하고 비밀 투표 아닌가요? 선택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누구를 찍으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이 일병! 자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아네만 내 체면을 봐서라고 이번만은 협조해 주게.”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용선이는 끝까지 거부하다가 왕따를 당했고, 군대생활 내내 개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문관 신세였다. 군대에서 ‘고문관’이라 함은 한마디로 바보 취급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부정 선거로 장기 집권한 결과는 죽음이었다. 결국,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 26:52)고 하더니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5장 _ 〈10. 눈감 땡감 선거〉 중에서
안내양들은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며 한 달에 10만 원을 벌었다. 그래도 군대 간 오빠의 월급보다 열 배나 많은 돈이었다. 뼈빠지게 번 돈으로 한 달 밥값 3만 원과 기숙사비 만 원을 제하면 6만 원이 남는다. 자기가 쓸 여윳돈은 만 원 정도다. 그 돈으로 가짜 구르무를 얼굴에 칠하며 살았다. 매달 5만 원은 꼬박꼬박 집으로 보내야 동생들 학비에다 부모님 약값을 할 수 있다.
이들이 은광교회에 드나들면서 「예수님 찬양」을 부르게 된 것은 그나마 교회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안내양들의 입에서 「예수님 찬양」 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이들은 「새마을 노래」 대신 「예수님 찬양」을 불렀다.
5장 _ 〈14. 교회 쥐〉 중에서
매주 식이는 주일 예배 후에 목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주에 인천 모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갔더니 그리 큰 문제가 아니더라고. 나이가 좀 있으신 장로님이 신학교를 갓 졸업해서 부임한 젊은 목사가 버르장머리 없이 인사를 건성으로 했다고 문제를 삼으셨대.”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내가 선배 목사로서 젊은 목사에게 호통을 쳤지. 목회 잘하려면 인사부터 잘하라고.” “장로님께는요? “한국교회에서는 목사가 되면 누구나 영적인 권위를 세우려 한다. 그러니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지 말고 어른답게 너그럽게 넘어가주면 안되겠냐고 달랬지. 교회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네.”
5장 _ 〈15. 지도자의 외길〉 중에서
화장실에 가보니 여자 화장실은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고, 남자 화장실에서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지붕을 향해 오르다가 틈새를 찾아 그쪽으로 새어 나왔다. 식이는 화장실에서 깜짝 놀랐다. ‘아니, 저 놈들은 내 좌석 좌우에 앉아 있었던 신학생들 아냐?’ 그들은 히히덕거리며 담배를 꼬나 물고 있었다. ‘지옥에나 갈 놈들 같으니! 하나님을 믿는 신학생들이 염생이처럼 담배를 꼬나 물고 있다니! 오호 말세라! 한국교회 다 망해뿌렸네그려.’ 식이는 이 순간만큼은 앞뒤가 꽉 막힌 거룩 거룩 교회 장로님이 되어 버렸다. 부지불식간에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교회의 극보수 장로님이 되어 있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식이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6장 _ 〈17. 격전지 순례 대행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