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몸은 ‘외투’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50대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가 쓴 몸 에세이
혐오를 벗고 몸을 쓰다
50대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가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주어진 몸을 벗고 다른 몸을 입었지만 어디에도 머물지 못해 끝없이 옮겨 다녀야 했던 긴 시간을 기록한 ≪혼란 기쁨≫은 몸 횡단기(橫斷記)이면서 여행기다. 이 책에서 김비는 몸 가로지르기를 통해 퀴어, 젠더, 늙음, 가난 그리고 글쓰기라는 영토를 누비며 낡고 부서진 한국 사회에 특별한 ‘외투’ 하나를 내어놓는다.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어 평범한 삶을 누릴 권리를 빼앗겨왔지만 도망치거나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맞서면서도 끌어안고자한 김비의 긴 여정은 우리에게 ‘끈질긴 자긍심’이라는 가치를 선물한다. ≪혼란 기쁨≫은 혼란에 빠진 이가 구한 기쁨을 세상 모든 몸에게 건네는 빛나는 헌사다.
“나는 언젠가 ‘우리’라는 이름의 생존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비는 오랫동안 ‘트랜스젠더 시민권’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에 대한 요구는 ‘트랜스젠더로 자연사(自然死)’ 하기라는 작은 꿈을 실현하는 걸음과 이어져 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어 헤맴과 떠남을 되풀이 했던 긴 여정을 빼곡하게 담은 이 책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가로지르는 당당한 몸짓이다.
≪혼란 기쁨≫은 소설가 김비가 그 동안 어디에도 쓰지 않았던 몸 이야기로만 채웠다. 성전환 수술 후 마주한 혼란과 새로운 삶을 펼칠 수 있었기에 숨통 트였던 시간은 1부 ‘패인 몸’에 고스란히 담았다. 2부 ‘갇힌 몸’은 주어진 몸과 싸워온 긴 투쟁기로 읽을 수 있다. 김비는 육체적 디스포리아(불일치감)가 심한 트랜스젠더 가운데 한 사람으로, 누구보다 자신의 지정 성별을 거부해왔지만 몸에 대해 쓰며 ‘물러나며 가까워지기’를 시도한다. 이 두 이야기는 특정 성별의 몸을 거부하거나 버리기가 아니라 끝내 마주하고 껴안을 수 있는 방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패인 몸’과 ‘갇힌 몸’은 성 확정 수술 이전과 이후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로 나뉘지 않으며 스스로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저마다의 욕망이 모두에게 주어진 성별보다 강하고 끈질기다는 걸 말한다.
누구에게나 감춰진 몸이 있다. 부끄러운 몸이기도 하고, 소외된 몸이기도 하고, 잃어버린 몸이기도 하다. 3부 ‘접힌 몸’은 그 어떤 몸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존중과 사랑에 가 닿고자 하는 도약에 관해 쓴 글이다. 김비가 오랫동안 연재한 신문 칼럼 제목이 ‘달려라 오십호(好)’였던 까닭과도 이어진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있다. 부둥켜안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한 몸에 여럿이 함께 어울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떤 몸도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길로 나아간다면 혼란과 기쁨도 한 몸이다. 김비는 말한다. ‘나’는 ‘우리’로 살 수 있다고. 그리고 자연사를 꿈꾸는 50대 트랜스젠더 몸으로 증명하려 한다. ‘나’는 언젠가 ‘우리’라는 이름의 생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