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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재고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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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휜 나무
물그릇
여름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꽃을 흘리는 나무
왼쪽 어깨
야행성
수확
요양원
밤과 피아노
염소와 아이들
취침 전에 먹는 약이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슬리퍼는 축축하고
의자를 빌려주는
4월 14일
조각구름
마지막 주머니

2부 이 빠진 계단
꽃을 줍다 봄이 다 갔네
건강한 하루
물을 길어 오는 길
골판지
종이접기 수업 중입니다
생산직
목소리는 왜
멀리서 나비
한 끼 식사
이사한 놀이
외우는 사람
잉크
저녁 무렵 커피는
빠랑게
노랑

3부 금 간 손
가만히
산문이는 벚꽃
물어는 비
운문이는 구름
밤의 소리
다음에는
방울토마토
낡은 개
징
비스킷
소포
부품이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뒤꿈치
망자
지지대

4부 깨진 놀이
조심해야지
밤바치
흰 빨래
먼저 태어난 그는
심천
텃밭
끈적끈적
안개에 속아 여기 왔다
트레킹
보라색
심지어 천 년 후에도
다 쓴 물감

해설 우정의 한 기록 3-K에게 | 이정현(문학기고가)
저자 소개
저자 : 길상호
충남 논산 태어나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왔다갔다 두 개의』 등, 산문집 『거울 속에 사는 사람』 등이 있다.
천상병시상, 김종삼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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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픈 누나의 카메라를 들고
아쉬운 것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날 오후, K의 자양동 집을 나와 인근 카페 까몽에서 시 원고를 건네받았다. 미래의 시집이었다. “6번째 시집(『왔다 갔다』)의 쌍둥이 시집이에요. 제목(『오고가고 수목금』, 이하 『오고가고』)도 이미 정했어요. 시집을 묶고 입에 맴돌던 제목이 『오고가고 수목장』이었는데 어감이 어두워 글자 한 개만 바꿨어요.”(길상호) 일곱 번째 시집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죽은 셋째 누나 ‘길선숙’이다. ‘누나시편’은 모두 합해 14편인데, 결코 적지 않은 게, 시집 전체 1/4 분량이다. 직전 시집 『왔다갔다』(2024)에서 셋째 누나는 ‘병’(「요양원」)과 ‘죽음’(「꽃을 흘리는 나무」, 「심지어 천 년 후에도」) 사이를 오간다. 물론 “봄이 와도 골목은 환해질 줄 모”(「골목의 주인」, 『왔다갔다』)른다거나 “당신은 바빠 봄에 참석할 수 없다고 꿈을 꾸었다”3)(「꽃샘이 심하다」, 『왔다갔다』)며 누나의 부재를 넌지시 알리지만 아직은 미래의 일이다. 일반병실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 마지막 가족여행을 다녀와 쓴 시가 「2024년 1월 1일」(『왔다갔다』)이다. “새해에는 가발을 쓰지 말아요, 가려운 강은 머리를 긁고 그때마다 안개가 자라요, 길게 자라요, 능선이 사라진 만큼, 나무가 지워진 만큼, 당신 얼굴도 투명해졌네요, 새해에는 부디 행복하세요”(「2024년 1월 1일」). 항암치료 탓에 K의 셋째 누나는 가발을 썼던 것 같다. 이파리를 다 떨어뜨린 참나무가 머리 없는 누나를 닮았다거나(「누나는 나무」, 『왔다갔다』) 가발 벗은 봄이 히죽히죽 웃을 때(「꽃을 흘리는 나무」) 시인 K의 마음은 더없이 곡진하다.

우울과 강박을 앓고, 어지럼증과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K의 몸. 그라면 관절염과 골다공증 정도야 ‘덤’이라고 조크에 실어 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덧붙인다. 당뇨는 제 몸 디폴트값이에요. 그가 받은 ‘덤’이란 게 “모두 멍들고 긁힌 것들”(「덤」, 『오늘의 이야기』) 투성이라 무겁고 막막하기만 하다. 내 시선은 다시 「지지대」로 향한다. “바이러스제, 당뇨약, 영양제, 수면제”. 이 약들 말고도 그가 복용하는 몇몇 약을 나는 알고 있다. 오죽 먹는 약이 많으면 “길에 약을 한 알씩 떨어뜨리며 걸었습니다”(「부품이 더는 나오지 않습니다」) 라고 썼을까. 그가 즐겁게 즐겁게 약을 먹는다. 양약, 한약을 즐겁게 즐겁게 복용한다. 내가 분류한 바에 따르면 『오고가고』에 수록된 시 쉰아홉 편 가운데 서른 편이 ‘병시(病詩)’다. 1부 첫 시 「물그릇」(“출렁이는 얼굴을 오래 본다/어지럼증이 잠깐”)으로 시작한 ‘병시’가 4부 마지막 시 「다 쓴 물감」(“오십이 넘어 자꾸 근육이 빠진대요, 몸무게가 또 줄었어요, 고기를 많이 먹으래요”)에 다다를 즈음 독자들은 ‘병상일지’를 방불케 하는 K의 시집에 압도될 것이다. ‘어지럼증’(「물그릇」)으로 문을 연 시집이 ‘당뇨’(「다 쓴 물감」)에게 자신의 열쇠를 건넬 때 초번 보초와 말번 보초의 맞교대처럼 보일 정도니.

작년 여름, K에게 원고를 건네받고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시집 속 핵심 키워드를 뽑는 일이었다. 길선숙. 작년 4월 고인이 된 K의 셋째 누나. 『오고가고』에서 두 번째로 찾아낸 키워드. ‘「노랑」 읽기 4’가 그녀를 호출한 건 자연스럽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K의 시를 이해했던 그의 혈육. “누나의 이름은 비석에 새겨졌고 그녀의 지문 묻은 카메라가 보인다. 오늘도 찰칵찰칵, 나는 이승을 걷는다.”(『거울』, p.170) 저녁을 먹고 당뇨약까지 챙겨 먹은 K가 루틴처럼 자양동 골목 산책을 나선다. K의 어깨에 매달린 캐논카메라는 저 혼자 골똘하다. “동네 허술한 지붕에 고양이가 누웠다가, 바람이 스쳐 가다, 노을이 걸터앉아 이름에 빨간 약을 바르는 저녁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고, 그녀는 한 발 더 멀어진다. 떠난 이름만 슬픈 게 아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어딘지 쓸쓸하다. 풍경 속에 던져진 사물도 조금씩 낡아간다. 세상의 아름다웠던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거울』, p.170-171) “아픈 누나가 준 카메라를 들고” K는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다. 길에서 마주친 “아쉬운 것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싶”어 했고 “커피숍에 들러/야외의 소리들과 맞담배를 피우며/어두워지고 싶”(「저녁 무렵 커피는」)어 했다. 이번엔 대동 골목이다. “찰칵 찰칵, 반쯤 사라진 사람을 찍으며 걷”(「건강한 하루」)는 그가 보인다.

책 속에서

떠나고 싶다 생각을 했다

아픈 누나가 준 카메라를 들고 가
마지막 사진은 행복하게 즐겁게

라떼를 마시면서 저녁을 맞았다
갈아 온 원두에 물을 부었다

불을 올리고서
저녁의 고양이들은 부드러워졌을까

한 번 저으면 이런 무늬가 되고
두 번 저으면 도망을 가고

아쉬운 것들과 함께 돌아다니고 싶었다

커피숍에 들러
야외의 소리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어두워지고 싶었다

수고했다고 처진 등을 다독이면서
들숨 한 번 크게 쉬고

오래된 여관에 들고 싶었다
- 「저녁 무렵 커피는」 전문

옆집 꽃은 우리 집으로 지고 앞집 고양이는 우리 집 텃밭에 와 볼일을 보고 뒷집 불빛은 담을 넘기 일쑤고, 그래, 그래야 사촌이지 이웃이지, 좁은 마당에 민들레 벙글고 저 멀리 냉이가 흘끗 꽃을 피우고, 꽃의 족보를 헤아리다 그만그만 가는 비 내리고, 젖은 상념이 또 지나가고, 담배를 사 와 연기를 만들고, 그 안을 터벅터벅 걷고, 옆집에도 앞집에도 뒷집에도 저녁은 오고, 꽃을 줍던 손이 어둑해지고
- 「꽃을 줍다 봄이 다 갔네」 전문

갈라진 골목을 뒤꿈치라 부른다

새벽도 오래 걸었으니 분명 저런 발을 가졌을 것이다

구름을 잔뜩 바른 오후 하늘이 터벅터벅 북쪽으로 간다

어두운 얼굴로 당신은 갈라진 모란 이불을 걷는다

저 비둘기는 뒤꿈치를 모아 부리를 만들었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는 저기 너무 오래 있었다

햇빛이, 달빛이, 안개가, 비가, 이슬이, 바람이

거쳐서 갔다, 윤회가 앉았다 갔다
- 「뒤꿈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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