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문화는 삶을 담는 그릇
- 충북 보개산 각연사
온 세상이 하얗다. 아마도 올겨울 마지막 눈이리라. 이제 삼월도 중순이니 봄의 여신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하지 않는가. 예정된 답사라 미룰 수가 없어 눈길에 절집을 찾아간다. 큰 도로는 그나마 제설이 되어 있으나, 절집으로 들어가는 초입 4킬로 남짓한 산길이 걱정이다. 산길은 역시나 미끄럽다. 자칫하면, 낭떠러지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속도 20킬로로 엉덩이에 진땀이 날 정도로 설설 기어간다. 두려운 마음과는 다르게 눈앞의 설경은 황홀경이니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어찌하랴.
깊고 깊은 산속으로 이끌리듯 들어선다. 산길로 한번 들어가면 돌아 나오지 못할 듯한 기분이 드는 산사이다. 백설이 형형한 사찰 경내는 고즈넉하다 못하여 적막강산이다. 스님도 사람이 그리운가. 스님은 툇마루에 나와 큰소리로 나그네를 맞이한다. ‘눈길에 어떻게 오셨느냐’라고 묻는 스님에게 합장으로 예를 올린다. 사미승이 자리를 비웠는가. 발목까지 쌓인 눈을 치울 새도 없었나 보다. 눈밭을 푹푹 빠지며 대웅전으로 향한다.
각연사는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보개산과 칠보산 자락에 자리한다. 1,500여 년 전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유일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속리산 법주사보다 창건이 30년쯤 앞서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각연사는 산수가 빼어나 신록의 계절에 두 번, 단풍철에도 다녀간 절이다. 사찰은 그대로지만, 계절에 따라 그 풍경도 다르고, 느낌도 확연히 다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싶은 풍경은 사찰 구석구석의 겨울 자태이다.
제일 먼저 비로전 앞 나목이 된 보리수나무가 보고 싶다. 350년 수령의 보리수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된 한 그루의 나무이다. 하지만, 그 줄기가 여러 줄기로 한 나무가 아닌 듯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람들은 나무를 일부러 보러 오지는 않으리라. 사람들은 대부분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알현하고 나무 앞을 무심히 스쳐 갔으리라.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보리수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전각은 불에 타서 다시 중수되고, 불상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가 제자리를 찾는 경우가 여럿이다. 비로전 동쪽으로 오르면 석조물에서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석조 귀부(충북 유형문화유산 제212호)는 아쉽게도 머리가 없고, 몸통만 남아 있다. 거대한 귀부의 네 개의 다리는 힘차고, 날카로운 발톱은 섬세하여 금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온전하지 못한 귀부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나무는 뿌리째 뽑지 않으면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나무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행태를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말 없는 보리수나무가 사찰의 내력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문화는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시대가 표방하는 사상과 다르다고 그릇을 깬 민족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비로전에 안치된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에 관한 명문과 문헌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의 조성 시기와 조성 목적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팔각대좌와 나룻배 모양의 거신광배擧身光背를 갖춘 화강석 불상으로, 광배와 대좌를 잘 갖추고 있다. 또한, 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의 도상적인 특징인 지권인智拳印 자세를 하고 있다. 조성된 지 천여 년이 넘은 불상임에도 부서진 데가 없이 온전한 상태라 문화재적 가치가 높단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앞으로 다가가 면모를 톺아본다. 오른손으로 왼손 엄지를 잡은 모습으로 석상의 조성된 시기를 알 수 있다. 불상의 인상적인 부분은 땅에 닿을 듯한 양쪽 귀와 붉게 칠한 입술이다. 채색은 후대에 입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염이 있는 입술에 붉은 칠을 한 것이 궁금하다. 순간 충북 음성의 한 석불이 떠오른다. 온몸에 누렇게 칠을 한 불상은,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을 믿고 페인트를 칠했단다. 그 불상은 아직도 경작하는 밭 구석 헛간에 자리하신다.
비로자나불은 온전하게 안치되어 다행이다. 광배 위에 조각된 작은 불상들, 아홉 기의 화불이 크게 와닿는 순간이다. 아마도 화불이 수호자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부분이다. 어리석게도 늘 보고 있다고 믿을 따름이다. ‘깨달음이 연못 속 불상에서 시작되었다’라고 각연사라고 이름하였던가. 부디 언제 어디서나 견자見者의 눈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오늘 산사에서의 깨달음은 돌아가는 산길 위에 있다.
백설이 형형한 무량사
- 충남 부여 만수산 무량사
눈발을 잔뜩 머금은 자욱한 날씨이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기어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내가 걸어갈 산길을 덮고, 이방인이 지나온 발자국을 덮는다. 눈앞에 백설이 형형한 세계가 펼쳐진다. 사천왕문에 들어서서 바라본 장면은 마치 한 폭의 명화를 보는 듯 진기하다.
지난 시절 본 무량사 풍경이 아니다. 눈발로 커튼을 친 듯 거대한 극락전과 오층 석탑 그리고 석등이 몽환적으로 어른거린다. 눈앞에 등 굽은 소나무 줄기는 금방이라도 땅으로 내려와 기어다닐 듯하다. 눈발 속에 서 있는 만물이 새롭다. 눈은 지상의 모든 물상을 하얗게 만들어버릴 태세라 나그네는 감탄사만 남발하고 서 있다. 하얀 것 외에는 다른 색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는 듯한 무량한 세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날이다.
천년 고찰 만수산 무량사는 부여 팔경 중 한 곳이다. 일 년 중 어느 때에 방문해도 사계절 숲이 반겨주고, 계절마다 다른 느낌을 얻는다. 설경 속 사찰 특히, 눈이 내리는 날 사찰의 분위기는 오묘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취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리라. 대한민국은 사계절이 뚜렷하기에 어떤 대상을 한 계절만 보아선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봄에는 묵은 전각이 신록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 싱그럽다. 한여름 기와지붕 처마 끝에서 아수라 밥상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와 빗살이 사찰의 운치를 더한다. 또한, 붉게 피어나는 백일홍은 전각을 더욱 화려하게 수놓는다. 푸른 댓잎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거나 오색 아기 단풍잎이 발치에 붉게 물들이는 사찰의 자연미. 계절이 주는 정취의 묘미를 느끼고자 일부러 사찰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무량’無量은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를 의미한다. 《화엄경》에 나오는 무량에는 부처님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리라. 무량사라는 이름다운 전각에 숨은 이야기가 무량하다. 무량사의 큰 법당인 극락전(조선 중기 목조건물, 보물 제356호)은 우리나라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백제 양식으로 겉보기에는 2층 구조의 전각이나, 내부는 층 구분 없이 하나로 트인 중층 건물이다. 법주사 대웅보전과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에 꼽힌다. 극락전 층고가 높아 국내에서 가장 큰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565호)을 모시고 있다. 그리고 극락전 앞 일직선에 우뚝 선 부여 무량사 오층 석탑(보물 제185호)과 부여 무량사 석등(보물 제233호)이 국가지정문화재이다. 무량사는 문화재의 보고라고 해도 손색없는 명찰이다.
무량사에는 잊을 수 없는 독보적인 분이 계신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 그는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유랑하며 초야에 묻힌 분이다. 전국을 떠돌던 매월당은 설잠雪岑이라는 법호로 출가하였고, 무량사에서 생을 마쳤단다. 영정각에 모신 김시습의 영정(보물 제1497호)의 부릅뜬 눈에서 곧은 정절과 기개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조선 시대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마침, 무량사를 찾아간 날이 12월 21일, 백설이 분분한 동짓날. 사천왕문부터 극락전과 석탑, 부도전 곳곳에 팥죽이 놓여 있다. 고수레는 민간신앙으로 잊혀가는 풍습이다. 이웃과 더불어 들짐승과 날짐승에게도 음식을 나누는 복을 짓는 일로 전한다. 친정어머니가 동짓날이면, 시루떡을 쪄서 떡을 나누기 전에 장독과 담장 등에 떡을 떼어 고수레로 얹어 놓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사찰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김시습 부도 상석에 올린 팥죽을 발견한다. 흰 보시기 안 붉은 팥죽 위에 백설이 내려 유난히 붉게 빛난다. 매월당의 정신이 서린 것인가. 묘한 정취에 휩싸이게 한 동지팥죽은 기억에 오래 남을 장면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강진 만덕산 백련사
붉은 꽃송이가 바닥에 피어 있다. 고개를 드니 하늘에도 꽃송이가 다문다문 붉다. 숲에 동백꽃 천지이다. 하늘과 땅을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다. 선인은 이 공간을 철학의 숲이자 구도의 숲으로 명명한다. 숲을 거닐 때 말없이 사색하며 거닐어야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고승의 무덤인 부도 앞이다. 선인은 어디로 가고 붉은 꽃나무만 남아 반기는가.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 무덤에 숨이 막힐 듯하다. 절로 흐르는 감탄사를 어찌할 수가 없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은 호젓하게 거닐어야 제멋을 느끼리라. 나는 백련사 동백나무 1,500여 그루의 숲(천연기념물 제151호)을 이룬 이 공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강진까지 거리도 멀고 동백꽃이 활짝 핀 시기를 맞춰 답사하기가 어렵다. 올해는 유난히 눈도 많고 추워선지 사월 초에도 흐드러진 동백꽃을 마주한다. 동백나무는 삼백 년 이상을 한자리에 머문단다. 내가 발 디딘 자리에서 다산과 혜장선사(1772~1811), 초의선사가 학문적 교류와 차를 나누었다고 여기니 그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뭉클하다.
다산초당을 들러 마을로 내려오는 산길이다. 나무도 얼마나 억울했으면 뿌리를 드러내고 있으랴. 바닥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나무 뿌리가 당신의 허무한 마음처럼 다가온다. 뿌리를 피하여 발을 내딛고자 이리저리로 뒤뚱거린다. 나 같은 사람은 억울한 상황에 부닥치면, 분노에 어쩌지 못했으리라. 자포자기에 자신을 헤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은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봐야만 알리라. 탐욕의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자 ‘나는 다르다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한탄하며 아우성을 치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그의 민낯이 드러난 글이 떠오른다. 역시 다산도 보통 사람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 초당에는 온갖 새 소리와 뜨락에는 참새 떼가 노닐고 있다. 한바탕 꿈처럼 지나간 날들이 떠오르는 순간이리라.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있듯 다산의 유배 일기가 있다. 강진 유배지에서 적은 일기, 정민이 엮은 《한밤중에 잠깨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단물, 쉬파리, 야비, 탐욕, 시궁창, 아우성’의 단어에서 그의 심란한 마음을 읽는다. 다산은 사람들에게 우롱당한 느낌이 들어 자기의 처신을 탓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기둥에 화려한 단청으로 꾸민 집을 부러워하지 않겠다. 현재의 이 진흙탕 길이 오히려 편안하다. 나는 난쟁이다. 나는 참새다.’라며 한탄했으랴.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고 말했던가. 시간은 흐르고 흘러 후인은 그가 지르밟은 오솔길을 걷고 있다. 다산은 사람이 그리워 홀로 산길을 걸어 백련사로 향했으리라. 그의 마음이 되어 차밭을 지나 동백나무 숲에 잠시 머문다. 풍토병에 시달리던 다산은 자기 위장을 다스려주던 차를 얻고자 대흥사에 머물던 초의선사에게 구걸도 서슴지 않는다. 백련사는 강진만을 한눈에 굽어보기 좋은 만덕산에 자리한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있는 만덕산에는 야생차가 많아 다산茶山이라 불렸단다. 정약용이 이곳에서 유배를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이라고 호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부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백련사이다. 눈앞의 차밭은 다산의 벗과 즐겨한 차〔茶〕의 생산지이지 싶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혜장선사와 차를 나누고 마음을 추슬러 초당으로 돌아왔으리라.
만덕산 백련사는 정녕 십여 년 전 모습이 아니다. 만경루 앞 기품이 넘치는 150년 수령의 배롱나무가 그들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무엇보다 긍정의 힘은 누구도 꺾을 재간이 없으리라. 직장에서 마주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려움 앞에서 회피하려는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하며 안타깝다. 자신의 환경을 절망하지 않고 극복한 다산의 자세를 배워야만 하리라. 다산은 말한다. 차라리 유배지로 쫓겨나길 잘했다고. 예전의 자리를 차고앉아 있었다면, 학문 연구에 몰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다산은 유배지에서 수백 권의 빛나는 문화유산을 남긴다.
산사, 가보면 압니다
-꽃 절, 선암사와 봉정사
사철 머물고 싶은 산사가 아랫녘에 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매번 절집으로 달려간다. 어느 날 어느 시간, 무작정 떠나도 좋은 시공간이다. 오래 묵어 고아한 멋과 꾸미지 않은 고즈넉한 풍경에 심신이 절로 편안하다. 다시 가보고 싶다고 즐거운 후렴이 이어지는 곳. 만인이 사랑하는 산사이다.
최근 한국의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국민으로서 환호한다. 내가 깊이 감명한 산사라 더욱 기쁘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가 바로 그곳이다. 모두 깊은 산속에 천년 넘게 자리한 사찰이다. 세계유산위원회에 한국 불교문화의 고유성과 깊은 역사성, 무엇보다 한국의 산사는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문명이라고 강조하였단다. 사찰을 구성하는 여러 전각과 산사에 이르는 운치 넘치는 산길, 산사를 품은 수려한 산세, 산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정경도 한몫했으리라. 만물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화엄 사상과 일치한다.
지성이면 감천인가. 불교에서 기도할 때 108, 1080, 3000배를 올린다. 공교롭게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번호가 1080번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확정되기 전 사전 심사에선 유네스코 자문 심사 기구는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를 제외한 4개 사찰만 등재 권고한 것이다. 서양인은 규모가 큰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세계유산을 사찰 크기로 선정했다면, 실망은 컸으리라. 선암사와 봉정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일 거다. 때론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무형의 유산도 있다.
부석사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제일 먼저 사로잡았단다. 최순우 선생의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더욱 유명해져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찰이다. 소백산맥 전체가 사찰의 정원인 양 넓게 펼쳐지는 장엄한 위엄이 느껴지는 부석사, 정녕 한국의 산사 중에 내로라한다. 무량수전에서 조금 떨어진 삼층 석탑에서 무량수전의 지붕을 바라보자. 처마 선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광경이 그려지리라. 정녕 산사마다 남다른 멋이 있다. 굳이 마음을 울린 산사를 고르라면, 전각이 자리한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한 멋과 꽃 정취가 좋은 선암사와 봉정사를 손꼽는다.
봄비가 추적거리는 날 봉정사를 찾은 중생을 말없이 품어준다. 사찰의 규모는 작지만, 마치 어머니 품속처럼 안온하다. 극락전 뒷마당 검버섯 핀 긴 돌담 아래 하늘거리는 붉은 매 발톱 군락지가 눈앞에 삼삼하다. 뒤뜰 영산암 오르는 계단도 잊히지 않는다. 곳곳에 오래 묵어 더욱 푸근한 전각과 소소한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에서 얻은 감동을 어찌 글과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으랴. 고금당(보물 제449호) 뒤 산신각 오르는 길목에 선 오래된 참나무가 사찰의 문화와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푸근한 매력을 선사하는 한국 정원의 미학을 대표하는 봉정사, 가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설중매, 이른 봄 매화를 보고자 찾아가는 곳이 바로 순천 선암사이다. 승주읍 조계산 동쪽에 자리한 사찰로, 임제선사 선풍의 대쪽 같은 승풍을 고고하게 지켜온 청정 도량이다. 천년 고찰답게 수행자의 삶과 역사, 한국의 독특한 문화유산을 인정받은 곳이자, 다수의 보물과 국보를 지닌 아름다운 사찰이다. 사월 중순이면, 경내 원통전과 각황전 담장을 따라 무우전 사이에 꽃 마당이 펼쳐진다. 잔설이 녹기 전에 매화가 피어 봄을 알리니 뭇사람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 수령 600년)는 선암사를 대표하는 꽃으로 ‘꽃 절’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선암매는 해마다 어김없이 사람들을 문화유산의 장으로 불러 모은다.
조선의 국토는 산하山河 그대로 조선의 역사며 철학이며 시며 정신입니다. 문자文字 아닌 채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입니다. 조선인의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국토의 위에 박혀 있어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나는 믿습니다.
-최남선의 〈심춘순례尋春巡禮〉 서문에서
남도 기행문 집 『심춘순례尋春巡禮』는 육당 최남선이 몸소 답사한 생생한 국토예찬國土禮讚 기록이다. 육당도 선암매의 자태와 향기를 예찬하였다. 지인에게 봄꽃이 스러진 선암사를 호젓하게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붉은 벚꽃이 기와지붕과 돌담 위에 하르르 떨어져 쌓이고, 꽃잎으로 바닥을 덮은 꽃길을 걸어보라. 차마 그 길을 밟지 못하고 주저하리라. 세상에 그 무엇도 부러울 거 없는 여인의 미소를 지으리라.
선암사에 또 다른 백미는 산사에 이르는 길이다. 산길은 비움과 채움의 경계이자 정화의 숲 터널이다. 한여름 산은 건장하고 숲은 빼곡하고, 무성한 나무 그늘은 깊다. 계곡 물소리는 이방인의 꽁무니를 따라와 귀를 씻고 눈도 씻어주리라. 그렇게 자연을 즐기며 걷다 보면, 고풍스러운 강선루 풍경과 마주하리라. 아름다운 곡선의 승선교 아래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잔잔한 물결 위로 비친 누각의 모습도 꼭 챙겨보기를 바란다. 초록이 짙어지면 ‘초록물’ 들고 울긋불긋 단풍 들면 ‘단풍 물’ 드는 곳. 일주문에 닿기 전 이미 마음은 청량해져 자연과 하나가 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자연의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팍팍한 가슴은 정서적 공간으로 바뀌리라.
자연 지형을 이용한 조형예술의 백미인 한국의 산사. 산지 승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한국은 ‘산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추가한다. 누군가의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한국 문화유산의 자존심을 세운 큰 성과이다. 13개의 세계문화유산을 지닌 나라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한국미가 우리만의 문화유산이 아닌 인류의 문화유산이기에 후인은 보존과 계승이란 과제가 남아 있다. 아직도 여행을 ‘산사로 가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산사, 가보면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