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미선尾扇이란 이름이 붙은 나무 열매는 둥근 부채 모양이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열매에 붉은 물이 들면 그 모습이 어여뻐 절로 걸음이 멈춰진다. 산기슭 산책로에 있던 미선나무를 고택 사내도 눈여겨봐 뒀을 것 같다. 그러다 슬쩍 눈맞춤했던 열매 형상을 안채 입구 판벽에 선물처럼 새기기로 했을 것이다. 이 사랑스러운 문양은 사내의 쑥스러운 고백일지 모른다.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다정한 마음이 사랑으로 둥둥 뜬 자리, 쿵쿵쿵 설레는 사내의 심장 소리가 환청인 듯 귀에 울린다. -15쪽
내 나이 여든 중반이 되자 몸에 병이 깃들었다. 늘 건강했기에 쉬 회복되려니 낙관했다. 내가 병원을 찾던 날, 바로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될 때 간담이 서늘하더라. 급성 백혈병이 나를 벼랑으로 내몰았어. 네 오라비와 너, 그리고 막내가 장거리 병간호를 했지. 나날이 눈도 못 붙이고 지켜봐야 할 만큼 증상은 심해졌다. 너희들 고생 말이 아니었다. 주위의 환자들이 내게 그러더라. “얼마나 좋은 아비였으면 자식들이 저리 잘할까.”라고. 그때부터였을 거야. 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이. 대학병원에 더는 있을 수 없었어. 의사가 나를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구급차에 실려 시골 병원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삶을 움켜잡고 싶었다. 집에 가면 병이 나을 것 같다고 고집부리기도 했지. 물론, 언제 쇼크 상태에 빠질지 몰라 허락되지 않는 바람이었다. 마침내 미뤄둔 숙제를 할 때라는 걸 예감했어. -20쪽
방어진 섬 끝 마을로 간다. 집을 나설 때 먹장구름이 보이더니 바닷가에 도착할 즈음에는 작달비로 내린다. 방파제로 접어들자 바람까지 가세해 우산이 무용지물이다. 돌아설까 망설이면서도 발걸음은 앞으로 내닫는다. 섬과 연결된 다리를 지난다. 슬도瑟島다. 무인 등대를 나선형으로 휘감은 계단 아래에서 비를 피한다. 소리를 찾아 나선 길이 순탄치 않다. 부안의 슬도로 갔다. 전라도 여행을 할 때면 들르곤 하는 매창 쉼터다.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상석床石에 놓자 파란 하늘이 들어와 고였다. 절을 올렸다. 천 리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의 권주勸酒가 초라하지만 와서 한 잔 드시라 그녀를 청했다. -33쪽
흥얼흥얼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몸을 맡긴다. 음치에다가 몸치, 노는 일엔 젬병인 내가 희미한 기억의 창을 열어 자장가와 동요 몇 가락을 꺼낸다. 몸을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다가 발을 살짝 들어 앞뒤로 점을 찍어보기도 한다. 이런 어부바춤에 학창시절에 배운 다이아몬드 스텝을 보탠다. 이쯤 하면 새근새근 꿀잠에 빠진다. 내게서 어설픈 춤과 노래를 불러내고 아기를 달래 잠들게 하는 힘, 나는 이것을 포대기의 마법이라 칭한다. -59쪽
읽고 또 읽어 모서리 닳아 나달거리는 편지 같습니다. 그걸 다시 보려 집을 나섭니다. 태화강 줄기 대곡천 중류쯤에 도형과 그림, 글이 새겨진 암석을 어떤 신라인은 서석書石이라 불렀다지요. 거기가 목적지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맑은 물이 중얼중얼 휘돌아 나가는 골짜기에서 오늘은 할 일이 있습니다. 미뤄왔던 일입니다. 15도쯤 살짝 기울어진 바위가 저만치 보입니다. 마치 등 굽은 노인 같네요. 후덕한 표정으로 쉬어가라 손짓하는 듯합니다. 넓고 편편한 암벽 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선사인이 바위 표면에 쪼고 새긴 기하학적 문양과 쌍쌍의 동물들, 추상화된 인물도 보입니다. 먹거리를 얻기 위한 기원, 종족 번성에 대한 바람 등이 담기니 바위가 신앙이 되었네요. -70쪽
잠을 청할수록 명료해지는 의식 한편에서 갑자기 아버지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집에 가자.” 두 달가량 병상에 계시면서 매일 아이처럼 졸랐다. 건강이 좀 나아지면 돌아갈 수 있다고 나는 앵무새처럼 답변했다. “내가 내 집에 간다는데 왜 안 되노!” 짜증이 폭발해 식사마저 거부하신 아버지. 나는 의료진과 얘기해 보겠다고 둘러댔을 뿐 그 바람을 진심으로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귀가에 대한 갈망을 앓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4년 전 겨울 친정에 다니러 간 내게 아버지가 피부 상태를 내보였다. 이마와 목에 동글 납작한 알약 같은 게 올록볼록 올라와 있다며 이게 뭐 같냐고 했다. 심상찮다는 생각이 들어 등과 가슴까지 살폈다. 놀라서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반응에 아버지가 옷을 끌어내렸다. 가렵거나 아프지 않다면서. -102쪽
서른한 살 젊은 육체에 깃든 병마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예고된 별리였다. 꽃 같은 아내와 자식을 두고 눈 감는 일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한이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덮어 준 이불, 애틋한 마음으로 한지에 써 내려간 편지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서신을 읽으며 때를 기다리는 거였다. 그리고 사백삼십 년이 지나 무덤 이장移葬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편지를 띄웠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남편이었으며 서로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고” 싶은 바람을 품었음을 조곤조곤 들려줬다. 아내가 머리카락으로 짠 미투리도 머리맡에 두었다. 완쾌되면 신으려 했던 신발. 원이 엄마가 애타게 기다렸을 답신을 남자는 이렇게 세상으로 띄워 보냈다. 그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그리움이었다. -124쪽
오래 함께한 김 선생님 수업은 연날리기 기법 같다. 연줄이 팽팽하면 풀어주고 느슨하면 적당히 감아주듯 수업을 이끈다. 운동 강도를 올리다가 벅찰 듯하면 이완 동작을 시킨다. 육체의 좌우 근육을 골고루 강화시켜 준다. 한겨울 찬물 속에서도 땀나게 만드는 김샘. 즐거운 힘듦과 몸이 풀리는 느낌이 교차한다. ‘회원’이란 연이 흡족하게 바람을 타도록 이끄는 것은 실력에서 나온다. 어떤 스포츠든 탄탄한 이론의 바탕 위에서 더 완벽한 기술이 구사되는 법이다. -131쪽
박지원은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까마귀 깃털을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다. 그러면서도 유금乳金 빛으로 무리지고, 석록石綠 빛으로 반짝인다고도 했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아른아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며 푸르거나 붉은 까마귀라 해도 괜찮다고 했다. 까마귀는 검지만, 푸르고 붉은 것이 그 빛깔 가운데 깃든 빛인 걸 그는 깨닫고 있었다.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눈과 가슴으로 세상과 만나라는 연암의 가르침이다. 다시 어린 새를 본다. 나의 바람은 사물이나 일상을 지혜롭게 파악하는 연암 같은 혜안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흰머리 감출 수 없는 나이가 되어도 헤매고 있다. -140쪽
어느 날, 새집에 커튼을 달던 이반 일리치가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창틀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쳤으나 통증이 이내 사라진다. 그러다 가끔 배 왼쪽이 무직하고 입안에 이상한 맛이 도는 걸 느낀다. ‘잘 한다’는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는다. 진단과 치료가 제각각인 가운데 병은 깊어 간다. 어떤 의사는 유주신과 맹장염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다 맹장염이라 ‘찍어’ 고민을 해결한다. 이반 일리치는 적개심을 느낀다. 개인의 생사가 걸린 문제 앞에서 의사는 냉혹할 정도로 무심하다는 사실에. 그러다 깨닫는다. 판사였던 자신이 법정에서 피고를 대할 때 수천 번 넘게 써먹은 방법과 일치한다는 걸. -149쪽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내 시간은 거의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어른의 관심과 손을 빌리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인 탓이다. 이들이 과거의 나이고 미래의 어른이다. 그래서 난 중요한 숙제를 성심껏 해내고 있다. 아이의 맑은 눈 속에 눈부처로 들어앉아 미소 짓는 현재의 나처럼 내 어머니 눈길 속 나도, 외할머니의 눈우물 속 어여쁜 아가였던 어머니도 숨어있다. 그렇게 삶이 이어져 왔으니 세상 모든 어른의 핏속엔 ‘빚’의 유전자가 흐른다. 티 없이 순수한 존재가 무한의 신뢰로 답하는 미소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세대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삶의 밑그림이 되고 있다. 내리사랑이다. -171쪽강릉 여행길에 난설헌 생가에 들렀다. 평일이라 방문객이 뜸했다. 사랑채 쪽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했다. 난설헌이 일찌감치 잃어버린 걸 나는 아직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행운아란 사실을 망각하고 지냈다. “내가 준 것은 잊어버리고, 받은 것은 기억하라.”던 어딘가서 읽은 글귀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때 포르르 날아온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가 스쳐 갔다. 코끝이 찡했다. 난설헌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지 않았다면 시댁 식구들의 냉대도, 성숙하지 못했던 남편과의 삶도 버텨낼 의지가 생겨났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마음을 쓸고 갔다.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