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5월에 신문사 수습기자가 되었다. 한 학년에 다섯이나 여섯뿐이었다. 과는 달랐지만 소수라서 관계는 꽤 끈끈했다. 나는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를 만났다. 위태로운 고비를 넘기고 대학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군부독재의 냉혹한 시절이라 ‘불온서적 소지죄’로 친구 둘이 정학 1개월을 당해 신문사를 떠났다. 신문사 주간 교수도 바뀌었다. 그때부터 나는 겉돌았다. 새로 주간을 맡은 교수님도 좋은 사람인 건 분명했으나, 정이 가지 않았다. 아니 이미 김 교수님 스타일에 익숙해졌다는 게 더 적절하다. 그분과 잘 지내는 건 우리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김 교수님을 배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김 교수님은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는 내 청을 흔쾌히 들어 주셨다. 그러나 오래도록 찾아뵙지 못했다. 겨우 그분의 퇴임식 기념으로 마련한 ‘역대 기자회’에서 잠시 얼굴만 뵈었을 뿐이었다. 그리곤 20년이 또 훌쩍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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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면 뭐 하냐고? 아무 데나 오줌을 갈기는걸. 그건 정말이지 치명적인 약점이야. 기다리던 큰딸이 늦게 퇴근해서, 놀고 싶은데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간식을 안 줘서 등 이유도 다양해. 장소도 마음 내키는 대로야.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머리가 어질어질해. 그러니 내가 이뻐할 수가 있겠어?
얼마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 집사는 다른 식구들보다 일찍 자. 이불을 깔아 두고 텔레비전을 보는 사이, 한쪽에다 미떼가 그만 실례를 한 거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집사가 노발대발했어. 빨아도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는 데다, 한두 번 그러다 보면 거길 화장실로 인식하는 게 우리 고양이들 습성이야. 이건 비밀인데, 작은언니가 이번 여름에 대청소하면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파를 버렸어. 미떼가 싼 오줌 냄새를 없애려고 아무리 약품을 써도 잘 안 되었나 봐. 그러니 집사가 얼마나 화가 났겠어? 안 봐도 비디오지.
집사는 미떼의 주인인 큰언니(큰딸을 나는 이렇게 불러)를 불렀어. 원래 거실에서 큰언니 방에 가려면 긴 베란다를 지나야 해. 그 사이에 우리가 오가는 작은 문이 있는데 미떼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집사가 친히 커다란 문 일부를 톱으로 잘라서 만들어 준 거야. 그런 은공도 모르고 자꾸만 집사 이불에 실수하는 거야. 벌써 몇 번째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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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하나둘 교단을 떠나고 있다. 친한 친구 둘은 작년, 만든 지 30년이 된 ‘미운 오리 새끼’ 모임 일곱 명 중 넷도 몇 년 사이에 명예퇴직했다. 남은 둘도 올해까지만 한다고 선포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이쁘지 않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건강이 나빠져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결국 유일하게 승진한 나만 정년까지 채울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수석 언니와는 만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교직에서 만난 지인 대부분이 몇십 년씩 된 것에 비하면 그리 긴 편은 아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함께 근무한 기간도 짧았으나 생각이 비슷하고, 느린 학습자 공부를 함께하면서 짧은 시간에 꽤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언니조차 정년 2년을 남겨 놓고 퇴직을 신청했다.
언니의 엄마는 몇 년째 투병 중이다. 나란히 아파트를 얻어 한 집엔 자신의 가족, 바로 옆집에는 미혼인 여동생과 엄마가 살았다. 퇴근 후에는 언니가 장을 봐서 저녁을 준비하면, 여동생이 설거지까지 마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살림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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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픈 것을 안 호텔 매니저가 일찍 체크인하게 편의를 봐주었다. 그때부터 낮 투어를 끝낸 딸 둘과 여동생이 돌아온 오후 다섯 시까지 내리 잠만 잤다. 딸들은 낯선 호텔에 혼자 두고 가기가 맘에 걸렸는지 심심하면 보라고 노트북에 담아 온 영화를 이것저것 알려 줬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한국인들이 꿈꾸는 여행지 우유니 사막까지 와서 잠이나 자다니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가 한심하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게 귀찮아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볼리비아에서 페루로 이동하여 다시 멕시코에서 일곱 시간을 체류한 뒤 한국까지 열여덟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우리 집 내 침대에서 눈뜨기를 날마다 소망했다.
마추픽추에서도 그랬다.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페루의 옛 잉카제국 도시 해발 2,437m의 공중 도시로 숨어 있다가 1911년에야 미국인이 세상 밖으로 드러낸 도시. 꿈에 그리던 곳을 실제로 걷고 사진으로나 보던 라마를 만져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으나, 몸이 아프니 만사가 다 귀찮았다. 하루 400명으로 입산을 제한하는 와이나픽추에도 똑똑한 딸이 사전에 예약하여 다녀오는 동안에도 나는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나 구경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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