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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의 문법 : 그 우주에는 인어와 화성인과 주머니고양이가 산다
김영사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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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장 아껴 부르는 이름
2장 수심 12미터
3장 당신의 삼각형: 조각들
4장 바람의 음운론
5장 꿈의 형태
6장 실험의 재구성
7장 테라 인코그니타
8장 다른 우주의 문법
9장 그녀. 가면. 풍경.
감사의 말
주
참고 자료
저자 소개
저자 : 백승주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에서 육지로 불리는 땅으로 건너와서 10년 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시간 동안 한국과 한국어를 타자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익혔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미끄러지는 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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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익숙하고 당연한 세계에 균열을 내는 도끼
― 이상한 세계의 언어학자

우리가 쓰는 언어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세계이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말의 체계를 통해 삶을 시작한다. 이렇게 너무 익숙해서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떨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본 적이 있는가?’ 그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낯선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모어가 외국어가 될 때 우리는 모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깨닫게 된다. 신간 《다른 우주의 문법》은 이 도발적 질문이 던지는 균열의 기록이자, 익숙한 세계 바깥으로 낯선 세계의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인문학 에세이다.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미끄러지는 말들》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재해석해왔던 언어학자 백승주 교수의 실험적 글쓰기는 《다른 우주의 문법》에서 절정에 달한 다. 이 책은 음성학,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 같은 언어학의 핵심 개념들을 골격으로 삼지만, 교과서처럼 딱딱하고 어려운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 대신 언어학에 상상력과 픽션이라는 낯선 장르를 결합한다. 그 결과, 언어학의 지식은 우리 삶에 그대로 투영되어 생생한 서사와 감각으로 재창조된다.

프롤로그에서 백승주 교수는 프리모 레비를 떠올린다. 처절한 경험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원소로 비유했던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처럼 저자 역시 언어학의 개념들을 설명의 도구로 쓰려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난 뒤 저자는 깨닫는다. 이 책은 자신이 언어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자신을 빌려 세상과 삶에 대해 말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다른 우주의 문법》은 사전이나 문법책 속 화석 같은 언어가 아니라 삶에서 끊임없이 분기하는 활화산 같은 언어의 현장을 보여준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는 분홍색 눈의 하얀 토끼처럼 이 책은 독자에게 언어라는 토끼굴을 통해 광대하게 펼쳐지는 새로운 다른 세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처음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 받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여러 표현이 있겠지만 나는 ‘난파당하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다에서 항해하다 난파당한 느낌. 내가 잘 알던 바다는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이 된다.”_〈꿈의 형태〉

언어가 몽상하는 세계와 삶의 이야기
― 영원히 계속되는 변신과 변주

언어는 소리와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소리와 대상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의적이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같은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말하는 각양각색의 언어가 존재한다. 이런 소리와 대상의 관계처럼 《다른 우주의 문법》은 언어라는 의미를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아홉 가지의 이야기는 형식적으로 장르적으로 계속 변신하며 언어라는 ‘기의’와 결합하는 ‘기표’ 역할을 수행한다. 독자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 책이 ‘언어학’에 관한 인문서인지, 흥미진진한 소설를 읽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저자의 글쓰기는 언어를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관점으로 낯설고 흥미롭게 조망한다.

저자의 아련한 유년기 첫사랑 이야기(〈아껴 부르는 이름〉)에서 시작하여 관동대학살과 4·3 사건이라는 굴곡진 역사에서 언어가 어떻게 차별과 혐오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는지 추적하는가 하면(〈당신의 삼각형〉), 주시경의 행적과 〈자유부인〉(정비석, 1954)에 담긴 숨겨진 역사를 통해 한국어 표기법이 형태주의로 확립되는 과정을 살펴본다(〈꿈의 형태〉). 그런가 하면 〈바람의 음운론〉은 인어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단편소설이다. 소설은 언어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어’라는 메타포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파도에 따라 변하는 인어의 언어를 통해 자의적이면서 배타적인, 언어의 유령 같은 본질까지 포착해낸다. 표제작 〈다른 우주의 문법〉은 SF소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소개로 시작해서 종국에는 저자와 소설 속 주인공이 벌이는 가상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사전과 문법만을 달달 외우면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대에게 저자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공유하고 배운다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다른 우주의 문법》은 실재하는 역사와 가상의 픽션을 오가며 카멜레온처럼 다면적인 얼굴을 지닌 언어의 총체적인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문법의 의미는 그 문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수많은 사회적 상호작용, 당신이 숨결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 있습니다. 문법은 결국 그런 상호작용으로 생성된 일종의 사회적 구성물이죠. 그래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질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이것이 진정한 문법의 성질입니다.”_〈다른 우주의 문법〉

끊임없이 순환하는 언어와 세계
- 언어는 세계가 되고, 현실은 다시 말이 된다

관동대학살 당시 일본인 자경단은 아무나 붙잡고 ‘쥬우고엔 고쥬우쎈(15엔 50전)’을 발음해보라고 시킨다. 유성음과 무성음을 구분하지 않는 조선인들이 이 발음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사냥법이었다. 삶과 죽음을 갈랐던 ‘쥬우고엔 고쥬우쎈’은 오늘날 ‘짱깨, 페미, 맘충, 틀딱, 급식충, 영포티’로 부활하여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보통 언어가 현실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언어가 현실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위와 같은 끔찍한 사례를 통해 반문한다. 정말 언어는 도구에 불과할까? 말이 사고를 만들고, 사고가 현실을 결정한다면, 언어란 우리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다른 우주의 문법》은 언어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일 뿐 아니라 세계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틀 자체라고 얘기한다. 언어는 현실을 기록할 뿐 아니라, 현실을 규정하고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 더 나아가 언어는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학벌사회에 대한 농담에서 시작됐던 ‘인서울’은 맥락과 내용이 잊히고 한국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로 불멸의 생명력을 얻었다. 이제 한국은 서울과 비서울로 구성된 나라로 재편되어 ‘인서울’을 충실하게 따른다. ‘인서울’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현실을 추동하여 실제 한국의 지리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고 파괴적으로 세계를 재구축해나간다. 말이 사람들을 통과해 세계가 되고, 세계가 다시 사람들을 통과해 말이 되는 순환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속에서 진짜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언어인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 잠들어 있던 기억과 욕망을 일깨우며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곧 ‘세계가 확장되고 뒤바뀌는 경험’이며, 우리가 가진 언어를 바꾼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도 바꿀 수 있음을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이 우리의 경험과 공명하여 꿈틀거리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 미지의 단어와 문장이 열어젖히는 문 너머에 다채롭고 경이로운 우주의 문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동치는 나의 횡격막과는 달리 물속은 무심한 듯 고요하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내 입속 모든 소리는 결국 나의 폐를 가득 채웠던 숨이었다는 것을.”_〈수심 12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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