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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갓 없는 백열전구 아래서
둘째 날 숨겨둔 달걀
셋째 날 땅 위에 토하다
넷째 날 훔쳐야 했던 것
다섯째 날 잔해를 줍다
여섯째 날 단호한 손
일곱째 날 시합하는 개들, 시합하는 사람들
여덟째 날 모두에게 알려라
아홉째 날 허리케인 전야
열째 날 영원의 눈으로
열한째 날 카트리나
열두째 날 살아남다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제스민 워드 (Jesmyn Ward, 1977~ )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미시시피주 덜라일에서 자랐다. 미시간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피 흘리는 경계선(Where the Line Bleeds)》으로 미국도서관협회 블랙커커스상을 받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바람의 잔해를 줍다》는 한 가난한 흑인 가족을 통해 가족의 사랑과 유대감, 삶에 대한 희망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호평 속에 2011년 전미도서상, 2012년 미국도서관협회 알렉스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세 번째 장편소설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로 2017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면서 전미도서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작가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됐다.
워드는 2017년 맥아서 ‘지니어스’ 펠로십을 수상하고, 2018년 〈타임〉에서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선정됐다. 2022년 미국의회도서관 미국소설상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바람의 잔해를 줍다》 《수확한 남자들》이 2024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 오르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현재 툴레인 대학교 영어과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 황근하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출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제스민 워드의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아니타 무르자니의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대니 그레고리의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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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생사의 경계에 선 어느 흑인 가정의 12일의 기록

미시시피 연안의 가난한 마을 부아소바주. 열다섯 살 소녀 에시는 그곳에서 아빠와 오빠 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빠는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는 게 일상이고, 그 지긋지긋한 가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오빠 랜들은 농구에 전념 중이다. 태어난 날 엄마가 죽어 엄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주니어는 아직 어리광이 익숙하다. 둘째 오빠 스키타의 관심사는 임신한 투견 핏불테리어 차이나뿐. 차이나는 이제 곧 새끼를 낳으려고 한다. 안간힘을 쓰며 새끼를 밖으로 내보내려는 차이나를 보며, 에시는 뱃속의 비밀에 덜컥 겁이 난다. 오빠들과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들 중 하나인 매니의 아이를 가진 것.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컴컴하고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중 아빠는 불현듯 집안 정비를 시작한다. 뉴스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허리케인이 오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일을 시키는 아빠. 하지만 누구도 크게 걱정할 건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바람의 잔해를 줍다》는 거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다가오기 전후 12일의 시간을 하루 단위로 나누어 펼쳐놓는다. 주인공 에시의 일기처럼 조용한 한 소녀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사랑은 물론 먹을 것이나 입을 것,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사춘기 소녀의 치열한 현실과 정답이 없는 고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 등이 흉포한 허리케인과 궤적을 같이하며 역동적으로 흘러간다.

나는 유리와 돌을 줄로 묶어서 내 침대 위에 매달아놓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것들이 반짝이면서 카트리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멕시코만으로 밀려와 모든 걸 살육해버린 한 어머니 이야기를. 그 어머니가 탄 마차는 아주 거대하고 검은 폭풍이었다고, (…) 우리에게 잔해 더미를 뒤지는 법을 가르쳤다고. 다음번 어머니가 그 커다랗고 무자비한 손을, 냉혹한 심장을 가지고 올 때까지 우리는 이 어머니를 기억할 거라고. _430~431면

문학으로 승화된 작가의 숨가쁜 기억

에시는 작가 제스민 워드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미시시피 출신인 작가는 2005년 불어닥쳐 많은 생명을 앗아 간 카트리나를 실제로 경험했고, 그 안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참혹한 경험 이후 2년 이상 글을 아예 쓰지 못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신과 당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와 아픈 기억을 일부러 상기시켜, 스스로 단단해지고 치유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덕분에 소설에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생생한 표현과 글자 그대로 믿게 만들 만한 리얼리티가 가득하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문장은 피가 흥건한 차이나의 투견 장면이나 카트리나에 맞서 온 가족이 지붕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 등에서 절정을 이룬다. 카트리나가 자취를 감춘 후 폐허 속에서 잔해를 뒤적이는 에시와 가족의 모습은 문장 부호들 사이로 오랜 여운을 안겨준다.
“남부 지방의 이야기를, 변두리에 사는 흑인과 빈민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소망은 그녀였기에 가능했던 꿈이었다. 그녀의 특별한 경험은 살아 숨 쉬는 듯한 문장을 통해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아닌,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로 거듭났다. 《바람의 잔해를 줍다》가 흑인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삶의 희망,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찬사

나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아빠의 예상대로 카트리나는 근래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자비했고, 에쉬가 사는 부아 소바주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열심히 허리케인에 대비한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예전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살아남았다. 에쉬도, 가족도, 그리고 에쉬 배 속의 아이도.
믿었던 이로부터의 배신, 예상치 못한 사고,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자연 재해. 작가는 크고 작은 시련을 등장시켜, 이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는 가족이라는 끈과 생명의 강인함,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사랑, 동물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과 살아 있음, 사람과 희망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전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스토리, 여신들에 대한 동경 등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요소들은 에쉬가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대치시킨다. 열다섯 소녀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만큼, 그 표현은 허영이나 거짓 없이 바르고 곧다. 《바람의 잔해를 줍다》가 주는 잔잔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감동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생명을 낳는다는 건― 싸울 가치가 있는 게 뭔지를 안다는 거지. 사랑이 뭔지를. (…) 동물들이 가장 세지는 때가 바로 그때야. 지켜야 될 게 생기니까. 그게 바로 힘이야. _169면

사라진 것보다 남은 것이 더 적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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