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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56년 7월 달링턴 홀 9
첫날 저녁 솔즈베리 38
둘째 날 아침 솔즈베리 74
둘째 날 오후 도싯주, 모티머 연못 178
셋째 날 아침 서머싯주, 톤턴 200
셋째 날 저녁 데번주, 타비스톡 근처 모스콤 220
넷째 날 오후 콘월주, 리틀컴프턴 313
여섯째 날 저녁 웨이머스 351
작품 해설 377
저자 소개
저자 : 가즈오 이시구로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1982년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해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1986년 일본인 화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1989년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해 부커 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2000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발표해 맨 부커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05년 발표한 『나를 보내지 마』가 《타임》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받았다.

역자 : 송은경
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직 생활을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다. 옮긴 책으로 조안 해리스의 『블랙베리 와인』,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인간과 그 밖의 것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노암 촘스키의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 카렌 레빈의 『한나의 가방』, 피터 메일의 『프로방스에서의 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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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930년대 영국의 한 장원을 배경으로 그려 낸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

『남아 있는 나날』은 “한 인간의 삶을 눈앞에 보듯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초상은 독창성, 유머와 부조리가 뒤섞여 있으며, 궁극적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선데이 타임스》), “인간성과 계급과 문화를 가슴 저미게 파고드는 수법이 마술에 가깝다.”(《뉴욕 타임스 북 리뷰》) 등의 평가를 받으면서, 작가에게 본격적인 문학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소설은 영국의 한 저명한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생애 첫 여행을 떠나는 현재와, 그곳에서의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이 짜임새 있게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스티븐스는 여행하는 내내 ‘위대한 집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위대한 집사란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 복종, 이를 넘어선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이 현재까지 헌신해 온 영국 최고의 저택인 달링턴 홀과 그의 주인 달링턴 나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스티븐스가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맹목적인 믿음으로 모셨던 주인은 “선량하고 명예를 중시할 뿐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어두웠기 때문에” 나치에게 이용당했음이 밝혀진 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에 허망함과 상실감을 느낀 스티븐스는 그럼에도 집사라는 직분에 최선을 다한 자신의 직업관을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지난 시절을 정당화하려 든다.

집사의 품위에 앞서 존중되어야 했던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던 스티븐스는 결국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스티븐스와 달링턴 경의 관계는, 영국의 지나간 역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절대적 가치에 매달리는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달링턴 홀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공간을 찾아오는 숱한 정치가들의 시선을 통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있던 격동기의 영국과 세계정세를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다. 또한 대영제국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미국의 현실주의적인 기반으로 넘어가는 상황, 그 변화의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에 얽매이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스티븐스가 고집스레 지키고자 했던 장인정신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꽉 막힌 ‘시대의 잔여’로 상징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젠 나이가 들어 황혼을 여유롭게 맞이할 수도 있는 스티븐스가 작품 말미에서 새 주인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부분이다.
젊은 날 놓쳐 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나,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기에, 그는 변화를 택하기보다는 다시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스의 인생은 어쩌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매우 유쾌하면서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책.”(도리스 레싱), “아름다움과 신랄함을 함께 그려 낸 수작.”(살만 루시디), “스토리, 문체, 작품성, 모든 점에서 놀라운 작품.”(맥신 홍 킹스턴) 등 여러 작가들도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황혼기에 깨달은 사랑,
그리고 엇갈림

1989년에 부커 상을 수상한 『남아 있는 나날』은 1993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국 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에마 톰슨이 스티븐스와 켄턴 양으로 호흡을 맞춰, 황혼 녘에 깨닫는 사랑 이야기로 또다시 화제가 된 바 있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떠난 계기는 새 주인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오래전, 달링턴 홀이 명성을 떨치던 시절 총무로 같이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는 것이다. 여전히 그에게는 ‘미스’ 켄턴인 그녀의 갑작스러운 편지를 받고, 그는 그녀가 다시 달링턴 홀로 돌아오고 싶어 하고 그가 그녀에게 그러한 제안을 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믿게 된다.

육 일간의 여행 내내 스티븐스는 자신에게 각별했던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를 한 줄 한 줄 읊으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켄턴 양은 적극적으로 스티븐스에게 다가섰고 스티븐스 또한 그녀에게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으나, 집사라는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애써 자신의 마음을 외면해 왔다. 결국 그녀는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이 때문에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는 것은 결국 또다시 자신의 감정은 감춘 채 공적인 업무를 전면에 내세우는, 그의 살아온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황혼을 맞이한 지금에야, 달링턴 홀의 전성기에 함께 일한 짧은 시간 동안 실은 그녀를 진실로 사랑했음을 그는 절절하게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재회했을 때조차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가슴에 묻어 둔 채, 그녀를 또 한 번 떠나보낸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사랑마저 외면하며 견고하게 자신만의 성을 쌓고, 황혼기에 이를 깨달아 가슴 아파하지만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변해 버린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스티븐스를 통해 독자는 지나간 사랑의 미열을 앓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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