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고 두 아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던 여름, 포틀랜드의 전나무 숲과 신선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지만,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은 온통 낯섦이었다. 오리건주 한인회 산하의 금요 한국학교 수업에서 한국어 SAT 시험 준비반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국땅에 한국어 씨앗을 뿌리는 자가 되리라 마음 깊이 다짐했다.
포틀랜드 생활에 조금 적응할 때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도착한 캘리포니아주 엘에이에서 또 다른 추운 계절을 맞이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사십 대 중반의 나는 대학생이 되어 밤에는 교육학 강의를 듣고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며 캘리포니아 교사자격증을 받았다.
마침내 미국 공립고등학교의 한국어 교사로 가르치게 되었고 나의 교실은 다시 하나의 작은 봄을 맞이하였다. 한글 자모를 배우며 동요를 부르고 떡볶이 냄새에 매료되어 한국문화에 눈을 반짝이는 외국 학생들, 제기를 차고 윷놀이를 하며 ‘강남 스타일’을 부르고 부채춤을 추던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이 눈앞에 내려앉는다. 한국문화와 언어, 역사를 학생들의 가슴에 심어 주고 작은 씨앗이 자라도록 돌보았던 시절은 학생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한국학교의 교실 문이 닫혔으나 가르침은 멈추지 않았다. 줌(ZOOM)이라는 원격미팅시스템을 통해 화면 속에서 자료를 공유하고 전래동화와 한국 위인들을 소개하며 다시 한국어 씨앗을 뿌렸다. 온라인 교실이 낯설고 힘겨웠지만 함께 했던 교사들의 협력, 기도와 열정으로 힘든 시간을 지켜냈다.
추위에 잠긴 시간 속에서도 나는 한국어 씨앗을 조심스레 심고 아이들의 눈빛에서 봄을 기다렸다. 눈 덮인 들판에서 움트기 시작한 작고 여린 꽃씨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 밭에 내려앉아 오롯한 꽃눈 틔우기를 소원하며 이 책을 세상에 띄운다.
이 책은 미국에서 한국어 교사와 한국학교 교장으로 지내온 27년, 디아스포라로서 흘려온 땀과 눈물, 감사와 믿음의 기록이다. 뒤늦게 뿌린 한국어 씨앗이 이곳에서 싹을 틔우고 눈부신 열매맺기를 소망한다. 내 수업을 기억하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긍심을 품고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여정 속에서 늘 곁을 지켜 준 남편과 두 아들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끊임없이 기도해 주신 목사님들과 성도들, 그리고 친구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 글쓰기는 내 마음 밭에 심은 작은 씨앗이 되어, 자연의 품 안에서 잔잔히 꽃피우고 열매 맺기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합평을 통해 애정 어린 지도를 해주신 ‘가든문학’ 성민희 선생님과‘재미수필 오렌지 방’ 이희숙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분주하신 가운데 세심하게 읽어 주시고 해설을 써주신 존경하는 박덕규 교수님께 마음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2025년 가을날
이현인
책 속에서
나는 토요일 오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은 수분이 뿌리를 적시듯 아이들의 자긍심이 서서히 자라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로, 할머니로, 한국인으로 다시 피어난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작은 줌 화면 속의 교실은 세대를 잇고 두 문화를 품은 숨결이 흐르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아이들의 삶에 따뜻하고 쾌적한 온실로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란다. - '두 문화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에서
사랑과 인내, 희생으로 피어난 어머니의 향이 나를 에워싸고 일으킨다. 그 향기는 내가 지쳐서 쓰러질 때마다 지탱할 힘과 일어설 용기를 준다. 자식을 품었던 어머니의 그윽한 눈길은 그리움의 향으로 다가온다. 나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며 그들과 함께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가꾸어 나가고 싶다. 아이들과 손주들도 언젠가 나를 그리워하며 기도의 향기를 떠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어머니의 향기’에서
수필은 무엇보다 작가와 독자가 ‘인간 대 인간’으로 직면하는 자리다. 글쓴이는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독자는 독자대로 ‘꾸민 글’을 대할 때와는 달리 그 서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늘의 수필가 이현인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서술함으로써 독자와 손쉽게 소통하고 있다. 특히 인생의 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나름대로 큰 결단을 내려 낯선 길을 택해 살아온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것을 마치 본인이 겪는 듯한 느낌으로 수용하게 한다. 때로는 종교적 신념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조용한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를 꾸밈없이 드러내 독자의 감응을 부드럽게 이끌고 있다. - 박덕규(문학평론가)의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