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인이란 존재가 본래 그렇듯, 박중기 시인은 삶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김겸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을 한마디로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시학”이라며 이렇게 얘기한다.
“저마다의 삶의 자리가 수행의 공간이라면 진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누구나 땅을 밟고 살지 하늘을 딛고 사는 것은 아니다. 고단한 일상의 세목에서 떠올리는 ‘한 방울’의 통찰은 통증으로 미만한 우리 삶의 자리를 ‘새살 돋는 상처’(「공감」)로 되먹임한다. 이 작용과 반작용은 삶에 대응하는 미학의 자리이자 시가 일상을 포월(匍越)하는 도약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산다는 건 산부인과에서 장례식장까지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동네 한 바퀴」)과 같고, 그 생애 속에서 우리는 ‘밥값 위해 일개미가 되고/ 밥통 채우기 위해 돼지가 되고/ 밥줄 때문에 허공에 매달린 거미’(「밥」)가 된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사야 하고, 사기 위해서는 벌어야 하는데, 이 ‘살다’의 필요조건인 ‘산다’(「산다와 살다의 상관관계」)를 위해 힘겨운 노동과 반복적 일상을 인내하는 것이다.
이사 떠난 집 앞
미처 챙기지 못한 꽃 화분
타는 목마름으로 시들어간다
지나던 누군가 생수 한 병 붓다 간다
스쳐 지나간다
붓다인 듯
― 「붓다」 전문
이 시에서 주인이 떠난 빈집 앞, 버려진 꽃 화분이 메말라 시들어갈 때 지나가던 누군가가 거기에 생수 한 병을 붓고 간다. 이에 화자는 말한다. ‘붓다(Buddha)’인 듯한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고! 이 작은 꽃송이로 상징되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뜻하는 자비, 중생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를 구제하며 함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심, 이러한 붓다의 가르침은 결국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존재에게 생명수가 되는 일을 행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붓다의 행위가 붓다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현현할 때, 세상은 아직,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믿음을 거두어들이지 않게 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박중기 시인의 시가 ‘시속을 모르는/ 겁이 없는/ 사랑’을 싣고 더 멀리 아득히 질주하길 소망한다. ‘부릉, 부르릉’(「중국집 오토바이 배달맨」)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은유의 힘으로, 냄새나는 똥 굴리는 소똥구리에서 향기 나는 엄마를 떠올리듯, 속(俗)과 성(聖)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천지사방 붓다를 일깨우며…….”
산책을 한다
산부인과 병원 지나 이유식 가게 지나 장난감 가게 지나 소아과 병원 지나 유치원 지나 아이스크림 가게 지나 학교 지나 피시방 지나 학원 지나 성형외과 병원 지나 웨딩하우스 지나 여행사 지나 내과 병원 지나 부동산 중개소 지나 은행 지나 안과 병원 지나 안경원 지나 치과 병원 지나 죽집 지나 이비인후과 병원 지나 보청기 판매점 지나 정형외과 병원 지나 의료기기상점 지나 요양병원 지나 장례식장 지나
산다는 건 동네 한 바퀴 도는 것
― 「동네 한 바퀴」 전문
시집 『산다와 살다의 상관관계』를 통해 박중기 시인은 집요하게 묻는다. 가게를 지나 가게를 지나 끝끝내 가게를 지나 마침내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 산다는 것이라면, 끝없이 소비하는/소비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 던져진 게 지금 우리의 삶이라면. 소비가 삶의 필요조건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과연 우리의 삶은 무엇이냐고.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냐고.
시인의 말
매었다 풀었다
묶었던 매듭
헐겁다
2025년 10월
박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