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약자들을 품에 안은 ‘이민자의 수호성인’
1950년 바티칸은 마더 카브리니를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녀는 자립하기 힘든 가난과 차별 속에 놓인 이민자,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돌보기 위해 고아원과 학교, 병원을 세웠다. 그녀는 단순히 하루 치 양식을 베푸는 식으로는 이민자들의 삶을 바꿀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더 카브리니는 이민자들이 기본적인 생존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뉴욕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 학교와 성인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언어와 직업 교육을 제공했다. 고아원을 세워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했으며, 콜럼버스 병원과 같은 의료 기관을 건립하여 이민자들이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미 ‘여생이 2년’ 정도란 진단을 받을 만큼 병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구보다 강인한 추진력으로 약자들의 공동체를 확장해 나갔다. 낯선 땅에 정착한 이탈리아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정부 기관도 외면했던 그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돌보았다.
‘The World is Too Small’이라는 책의 원제처럼, 그녀의 활동은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카브리니는 어린 시절 운하에 빠진 탓에 물을 무서워했음에도 목표와 사명을 위해 대서양을 20번이 넘도록 건넜다. 그녀가 방문한 많은 지역에 필요한 시설이 보이면, 그녀는 다른 시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설의 설립을 도왔다. 가끔은 종교적, 개인적 불화로 인해 머물던 지역에서 쫓겨나거나 계획이 불발되는 일들도 일어났다. 보통 사람에겐 결의가 꺾일 만한 난관도 마더 카브리니에게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또 다른 기회일 뿐이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굳건한 믿음과 확신으로 전진하는 이에게는 나아갈 길만이 보였다.
67년의 삶, 67개의 시설
미국이 수많은 이민자를 맞이하던 19세기 말, 마더 카브리니는 직접 부르고뉴호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이 전기는 단순히 가톨릭 성인의 생애에 관해 다루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차별을 마주하면서도 끝내 길을 열어간 한 여성의 모험담이자, 한 세기의 사회 운동사다. 마더 카브리니의 업적은 영적 헌신뿐만 아니라, 예수성심선교수녀회를 설립하고 이를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확장한 운영가로서의 탁월한 역량 덕분이었다. 카브리니는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평생 67개의 기관을 설립했는데, 이는 당대의 그 어떤 공공 또는 민간 지도자도 이루지 못한 경이로운 규모였다.
카브리니의 성취는 면밀한 비전과 협상 능력에 기인했다. 그녀는 이민자들에게 절실한 것이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임을 정확히 파악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인 이민 공동체가 밀집된 뉴욕, 시카고, 뉴올리언스 등의 지역과 중남미에 거점을 마련하여 글로벌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자금 조달에 있어서도, 그녀는 냉담한 정치인부터 영향력 있는 자선가들까지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하여 자원을 확보하는 협상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굳건한 믿음과 더불어 철저한 계획, 자원 관리,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행정적 난관들을 극복해낸 ‘여성 리더’로서의 마더 카브리니의 면모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21세기, 마더 카브리니는
여전히 우리의 앞을 비춘다
마더 카브리니의 삶은 단순히 특정 종교의 성인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직면한 현실에 맞선 연대와 돌봄의 상징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민과 난민 문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과제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관련 법안이 폐기되고 제정된다. 이에 관한 입장은 다양하겠지만, 모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를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다. 마더 카브리니와 함께할 때 이민자들은 단순한 구호 대상이 아니라 한 사회에 일조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그녀의 삶 전체가 약자의 가능성과 연대의 힘을 증언한다.
마더 카브리니의 일대기는 우리 현재의 문제를 다시 고찰하게끔 이끄는 질문이자 대답과도 같다. “어떻게 한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거창한 물음 앞에서, 그녀는 그저 자신의 소명과 꿈, 또한 약자를 위해 헌신한다는 일념으로 당장 손 닿는 주위부터 바꿔나갔다.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수녀원 건물이 마련되지 않아 곧바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브리니는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뉴욕 대주교 앞에 ‘여기를 떠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국 마더 카브리니는 그녀의 용기와 그녀에게 감화된 이들의 힘을 합쳐 더 넓은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는 그녀의 여정으로부터 이탈리아와 미국의 이민 역사가 만들어 낸 거대한 흐름을 느끼는 동시에, 그 속에서 이름 없이 살아간 개개인의 얼굴도 마주하게 된다. 먼 나라의 오래된 성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의 낯선 이웃, 화합하지 않는 사회와 어떻게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앞서 탐구했던 이의 발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