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끝없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나로 서는 법, 그 용기를 선물하다”
삶은 수많은 시작과 끝의 연속이다. 이 책은 그 반복되는 ‘시작’ 앞에 설 때마다 흔들리고, 다시 일어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날의 무모한 도전, 타국에서의 고된 생존,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혼자 서야 했던 시간까지…. 이경보 작가는 스스로의 생을 한 덩어리의 진흙처럼 빚어 나가며 “나로 빚어지는 중”이라 고백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갈망, 불씨가 되어 도전으로’에는 결핍과 가난 속에서도 배움의 길을 놓지 않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만과 일본으로 이어진 유학의 시간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한 여성의 도전기를 보여 준다. 스스로에게 ‘공부하고 싶은 이유’를 묻던 어린 시절의 간절함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 “모든 성취의 시작은 갈망이다.”라는 문장이 이 부 전체를 이끈다.
그리고 2부 ‘대만, 나를 다시 빚어낸 시간들’에서는 타국에서의 낯선 생활, 언어의 장벽, 가족과의 관계, 몸과 마음의 한계를 담고 있다. 그 속에서 저자는 ‘타인의 나라’가 아닌 ‘나의 자리’를 세워 간다. 고통을 마주하며 성장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배우는 시간들. 그녀의 기록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이방인의 시선으로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이다.
마지막으로 3부 ‘혼자서 다시, 나로’는 삶의 관계를 정리하고, 상처를 마주하며 ‘나답게 산다’는 의미를 되묻는 장이다.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집을 꾸리고, 글을 쓰며, 삶을 빚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마침내 저자는 깨닫는다. “비우며 비로소 채워지는 삶”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임을.
이 책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닌, 넘어짐과 회복,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인간의 진솔한 초상을 보여 준다. 그녀의 서사는 특정한 시대나 장소를 넘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자신을 잃어버린 순간’과 맞닿아 있다. 글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단단하다. 삶의 언저리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운 문장들이 독자의 마음을 다독이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선물한다. 끝없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응원의 손길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그날 밤, 우리 넷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도로변에 서 있었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커피숍도 아닌 사람들 사이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불쑥 이렇게 말했다.
“대만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계획한 적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말은 마치 오래 준비된 문장처럼 내 안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것은 진심이었다.
그 진심이 닿았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로부터 대만 어학 연수 자료가 도착했다. 입학 원서와 학교 소개 책자. 인터넷도 드물던 그 시절, 유학은 여전히 먼 이야기였지만 나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서를 작성했고, 그해 겨울,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 돌아보면, 그저 물품을 정리하고 판매하던 평범한 하루가 내 삶의 궤도를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기회’라기보다 내 안에 오래도록 눌려 있던 ‘갈망’이 마침내 빼꼼히 열린 문 하나를 알아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을 바꾸는 건, 거창한 계기가 아니다. 그저 마음 깊은 곳의 간절함에 작은 용기를 더한, 아주 사소한 선택 하나일 뿐이다. (19~20쪽)
일본의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말했다.
“인간이 바뀌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그 외의 결심은 의미가 없다.”
내 유학 생활은 이 세 가지 변화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결정체였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누리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젊은 날의 도전 정신은 세월 속에 조금 바랬을지 모르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다. 무언가를 익히지 않으면 마음이 스산해지고,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힘이 빠진다. 그건 어쩌면 내 안의 잠재의식이 조용히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내 학생들에게 말한다. 스스로를 너무 일찍 가두지 말라고. 가능성 앞에서 주저하지 말고, 한계를 미리 정해 두지 말라고. 그건 내가 온몸으로 겪고,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깨달은 말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결핍은 단순한 부족함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의 숨은 선물이라는 것을. 나는 20대의 나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 무모했던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던,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었던 그 젊은 시절의 내게. 그 용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진심을 담아 말하고 싶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85~86쪽)
50대에 접어들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누워 있는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통증 속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죽기 전 한 달쯤, 이 정도의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그러니 지금은 제발 나를 좀 놓아 달라고.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무엇보다 ‘건강’을 삶의 가장 앞줄에 세우겠노라고.
우리의 에너지는 배터리와 같다. 때로는 충전이 필요하고, 때로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그래야 정작 필요한 순간, 온전히 나를 쏟아 낼 수 있다. ‘멈춤’은 결코 정지가 아니다. 그건 다음을 위한 충전이고, 다시 살아 내기 위한 숨 고르기다. 삶에 작은 틈을 내어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유한한 에너지를 가장 지혜롭게 쓰는 방법임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잘 사는 길이라 믿어 왔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묻지 않은 채 그저 앞만 보며 달렸다. 어쩌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일로 메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주인으로 둔 몸과 마음은 늘 무리했고, 버티고 또 버티다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느리게, 조심스럽게 살고 싶다. (228~29쪽)